DAY 01     2020.10.01 10 GLOBAL CURATORS

DAY 01  2020.10.01 10 GLOBAL CURATORS

프란스 할스 미술관 현대미술 큐레이터
Curator of contemporary art
at Frans Hals Museum

팬데믹 이후의 예술
예술 분야, 비평 개념, 우리가 공적인 것이라고 여기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기


내 큐레이터 작품을 살펴보면, 팬데믹은 공교롭게도 지난 해부터 내가 작업해 온 제도적 비평에 관한 프로젝트와 동시에 발생했다. ‘비평의 예술’이란 제목의 이번 프로젝트는 일련의 전시물로 구성되며, 그 첫 번째 전시물인 이미지 파워(Image Power)는 3월에 네덜란드에서 봉쇄령이 내려지기 2주 전에 개장했다. 그 전시 시리즈는 예술계가 보다 광범위한 시각적 경제(visual economy)에 완전히 묻혀 있고 ‘비평’이 어디서든 실행된다면, 오늘 날 제도적 비평 방식을 구성하는 게 무엇인지 묻는다. 주요 공공, 민간 기관들이 점점 더 검열을 받게 된다면 비평에 대한 어떤 다른 접근법이 있을 수 있을까(아니면 이미 우리가 목격하고 있을까)? 그리고 어떤 새로운 접근법은 1960년대 말에 등장하기 시작한 특정 부류의 예술적 관습으로서 제도적 비평과 어떻게 연관될 수 있었을까?

‘비평의 예술’이란 이 세 차례 전시는 각각 다른 측면에 전념하다. 즉, 첫 번째 전시인 이미지 파워는 소셜 미디어와 정치적 동요가 나타나는 이미지 중심의 시대에 예술의 역할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두 번째 전시인 (내년 여름에 열릴) 표상 비평(Representation Critique)은 표상과 정체성에 관한 물음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세 번째 전시인 (다음 가을에 선보일) 구조 비평(Structure Critique)은 예술계를 지탱하는 구조들을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제도적 비평의 역사적인 현대 예술 운동과 연계된 본 프로젝트는 요컨대 오늘 날의 사회에서 예술의 비판적 역할, 박물관의 역할, 예술계 전반의 구조를 성찰한다. 이 프로젝트는 우리의 일상적인 비즈니스를 중단시킨 팬데믹을 거치며 살아가는 동안 매우 구체적으로 파악해야만 하는 이슈들은 물론 예술계에서 새로워진 세력과 함께 시스템적 인종주의의 문제를 제기해 옴으로서 큰 각광을 받고 있는 블랙 라이브스 매터 운동과도 연계한다. 그래서 내가 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우리 분야의 작업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에 몰두하는 동안, 팬데믹이란 현실이 본 프로젝트를 강타했고, 프로젝트 및 프로젝트를 통해 제기한 그런 의문들을 보다 명백히 시급한 것으로 만들었다.

네덜란드에서 봉쇄령 시기 동안, 그리고 매우 현실적으로 말해, 시리즈 중 첫 번째 전시인 이미지 파워 진행 중, 물리적으로 더 이상 방문을 받을 수 없었다. 우리의 PR 부서가 모든 박물관들이 하는 일을 하는 동안 (즉, 박물관의 소셜 미디어 존재감 높이기), 우리는 암스테르담에 있는 예술 아카데미인 Gerrit Rietveld Academy와 함께 그 전시의 디지털 표현에 관한 작업도 했다.

이를 통해, Giulia Bierens de Haan이 디자인한 비평의 예술 웹사이트 (https://theartofcritique.rietveldacademie.nl/)가 만들어졌다. 웹사이트를 만든 목적은 전시를 보여줄 뿐 아니라 프로젝트의 주제를 다룰 온라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이 작업을 하면서 우리는 정보가 관찰자에게 보여지고 전해지는 방식을 살펴보고 싶었다. 웹사이트를 서핑하면서 키워드와 카테고리들 별로 전시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예술작품에 관한 정보가 어떻게 보여지는지, 어떤 정보가 박물관에 적합한지, 카테고리들을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 어떻게 문제가 될지 의문이 들었다. 그 웹사이트는 온라인 전시 포맷에 의문을 품고 예술 박물관에 관한 정보를 배포하는 주류 채널로서 소셜 미디어(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를 넘어서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예술가인 Constant Dullaart가 네덜란드 잡지인 Metropolis M에 실린 한 기사에서 우리에게 상기시키듯, 우리는 이것들이 우리가 빠르게 ‘좋아요'를 누르고 클릭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상업용 플랫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그 플랫폼들은 예술에 대한 좀 더 느리고 비판적인 시각은 장려하지 않는다. 웹을 자신의 매개체로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 예술가인 Dullaart는 인터넷이 철저하게 상업화된 장소가 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여, 전화나 영상 채팅을 통해 어떤 예술가와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누거나 실제로 전시 카탈로그를 읽는 것이 좀 더 생신적이고 의미 있는, 예술과의 조우일지 모른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지적한다.

(티켓 판매, 판매 촉진과 임대로 달성한) 벌어들인 수익이 미국과 유럽 내 박물관들에게 점차 더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상업화된 플랫폼들과 이러한 제도의 연대는 박물관이 비즈니스 전략에 더욱 더 맞춰가야만 하는 사실에 정확히 부합한다. 박물관이 방문객과 직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계속 문을 닫아야 하거나 방문객 규모를 급격히 줄이라고 요청을 받게 됨에 따라, 대중의 참여와 대중 관광에 의존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더 이상 실행할 수 없다. 나는 Mousse Magazine의 최근 기사에서 이런 현실로 인해 우리는 우리가 공공 기관으로서 박물관으로부터 우리가 실제로 원하는 것을 재고해야 하고 박물관의 비즈니스 정신이 박물관이 운영되는 방식, 박물관이 방문객을 상대하는 방식, 박물관이 전시하는 대상에 실제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의문점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ART AFTER PANDEMICS
Questioning the Field of Art, the Notion of Critique and that which We Deem Public


Looking at my own curatorial work, the pandemic coincided eerily with a project on institutional critique that I have been working on since last year. This project, titled the Art of Critique consists of a series of exhibitions, the first of which – Image Power – had been opened two weeks before the lock-down that was instituted in the Netherlands in March. The exhibition series asks what constitutes a practice of institutional critique today, now that the art world is understood to be thoroughly embedded in a broader visual economy and “critique” is practiced everywhere. Can there be (or are we already witnessing) a different approach to critique now that major public and private institutions are under increased scrutiny? And how might any new approach relate to institutional critique as a specific kind of artistic practice that began to emerge in the late 1960s?

The three exhibitions of The Art of Critique are each dedicated to a different aspect: the first, Image Power, questions the role of art in our image-driven age of social media and political unrest. The second, Representation Critique (which will take place in the summer next year) focuses on questions of representation and identity, while the third, Structure Critique (which will be on view next fall), critically reflects on the structures that underpin the artworld.

Linking to the historic contemporary art movement of institutional critique, the project thus reflects on the critical role of art in today’s society, the role of the museum, and the structure of the art world at large. It thus connects to issues that we have been forced to grapple with very concretely as we are living through a pandemic that has put business as usual to a halt, as well as a surging Black Lives Matter movement that has raised the issue of systemic racism with a renewed force, also in the artworld. So, while I have already been engaged with questioning the workings of our field as part of this project, the reality of the pandemic hit and gave the project and the questions it poses an even more pronounced urgency.

During the lock-down period in the Netherlands, and very practically speaking, the first exhibition in the series, Image Power, could no longer be visited physically. While our PR department did what all museums did: amp up the social media presence of the museum, we also worked on a digital representation of the exhibition together with the art academy in Amsterdam, the Gerrit Rietveld Academy.

This resulted in the website The Art of Critique (https://theartofcritique.rietveldacademie.nl/), designed by Giulia Bierens de Haan. The objective was to create an online environment that should not only show the exhibition, but also engage with the topic of the project. In this case we wanted to raise the question how information is displayed and brought to the viewer. By surfing on the website, one can experience the exhibition by keywords and categories. This questions how information about artworks is displayed, which information is relevant for the museum, and how categories can be reductive and problematic. The website is also an attempt to question the format of the online exhibition and to go beyond social media (Twitter, Facebook and Instagram) as the mainstream channels of distributing information about art museums.

As the artist Constant Dullaart has reminded us in a recent article in the Dutch magazine Metropolis M,[1] we should not forget that these are commercial platforms that have been created to quickly draw us in for likes and clicks. They do not, however, encourage a slower, more critical viewing of art. Talking to an artist in person on the phone or through video chat, or actually reading an exhibition catalogue, might be more productive and meaningful encounters with art, the artist Dullaart – who has become known for using the web as his medium – critically points out given the fact that the internet has become a thoroughly commercialized place.

This institutional engagement with commercialized platforms falls neatly into place with the fact that museums have become forced to become more and more attuned to business strategies, with earned income (achieved through ticket sales, merchandise and rentals) becoming steadily more important for museums in the US and Europe.

As museums have either been forced to remain closed or have been asked to reduce the amount of visitors drastically in order to safeguard the health of visitors and staff, the business model that relies on mass attendance and mass tourism is no longer viable. This, I have argued in a recent article for Mousse Magazine[2] forces us to rethink what we actually want from museums as public institutions and to grapple with the question how their business-mindedness actually impacts how they are governed, how they address their publics and what they put on display.


[1] Constant Dullaart, Luidruchtige irrelevantie, Metropolis M, spring 2020
http://www.metropolism.com/nl/opinion/41377_luidruchtige_irrelevantie_door_constant
_dullaart_onzekerheid_1

[2] Melanie Bühler, Are Museums Like Parks? The ‘Public’ in Public Museums, Mousse Magazine, summer 2020
http://moussemagazine.it/are-museums-like-parks-the-public-in-public-museums-melanie-buheler-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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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KOREAN CURATORS

DAY 01  2020.10.01 10 KOREAN CURATORS

울산시립미술관 추진단장
Director at Ulsan Art Museum
Task Force

팬데믹 이후의 예술
예술 분야, 비평 개념, 우리가 공적인 것이라고 여기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기


내 큐레이터 작품을 살펴보면, 팬데믹은 공교롭게도 지난 해부터 내가 작업해 온 제도적 비평에 관한 프로젝트와 동시에 발생했다. ‘비평의 예술’이란 제목의 이번 프로젝트는 일련의 전시물로 구성되며, 그 첫 번째 전시물인 이미지 파워(Image Power)는 3월에 네덜란드에서 봉쇄령이 내려지기 2주 전에 개장했다. 그 전시 시리즈는 예술계가 보다 광범위한 시각적 경제(visual economy)에 완전히 묻혀 있고 ‘비평’이 어디서든 실행된다면, 오늘 날 제도적 비평 방식을 구성하는 게 무엇인지 묻는다. 주요 공공, 민간 기관들이 점점 더 검열을 받게 된다면 비평에 대한 어떤 다른 접근법이 있을 수 있을까(아니면 이미 우리가 목격하고 있을까)? 그리고 어떤 새로운 접근법은 1960년대 말에 등장하기 시작한 특정 부류의 예술적 관습으로서 제도적 비평과 어떻게 연관될 수 있었을까?

‘비평의 예술’이란 이 세 차례 전시는 각각 다른 측면에 전념하다. 즉, 첫 번째 전시인 이미지 파워는 소셜 미디어와 정치적 동요가 나타나는 이미지 중심의 시대에 예술의 역할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두 번째 전시인 (내년 여름에 열릴) 표상 비평(Representation Critique)은 표상과 정체성에 관한 물음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세 번째 전시인 (다음 가을에 선보일) 구조 비평(Structure Critique)은 예술계를 지탱하는 구조들을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제도적 비평의 역사적인 현대 예술 운동과 연계된 본 프로젝트는 요컨대 오늘 날의 사회에서 예술의 비판적 역할, 박물관의 역할, 예술계 전반의 구조를 성찰한다. 이 프로젝트는 우리의 일상적인 비즈니스를 중단시킨 팬데믹을 거치며 살아가는 동안 매우 구체적으로 파악해야만 하는 이슈들은 물론 예술계에서 새로워진 세력과 함께 시스템적 인종주의의 문제를 제기해 옴으로서 큰 각광을 받고 있는 블랙 라이브스 매터 운동과도 연계한다. 그래서 내가 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우리 분야의 작업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에 몰두하는 동안, 팬데믹이란 현실이 본 프로젝트를 강타했고, 프로젝트 및 프로젝트를 통해 제기한 그런 의문들을 보다 명백히 시급한 것으로 만들었다.

네덜란드에서 봉쇄령 시기 동안, 그리고 매우 현실적으로 말해, 시리즈 중 첫 번째 전시인 이미지 파워 진행 중, 물리적으로 더 이상 방문을 받을 수 없었다. 우리의 PR 부서가 모든 박물관들이 하는 일을 하는 동안 (즉, 박물관의 소셜 미디어 존재감 높이기), 우리는 암스테르담에 있는 예술 아카데미인 Gerrit Rietveld Academy와 함께 그 전시의 디지털 표현에 관한 작업도 했다.

이를 통해, Giulia Bierens de Haan이 디자인한 비평의 예술 웹사이트 (https://theartofcritique.rietveldacademie.nl/)가 만들어졌다. 웹사이트를 만든 목적은 전시를 보여줄 뿐 아니라 프로젝트의 주제를 다룰 온라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이 작업을 하면서 우리는 정보가 관찰자에게 보여지고 전해지는 방식을 살펴보고 싶었다. 웹사이트를 서핑하면서 키워드와 카테고리들 별로 전시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예술작품에 관한 정보가 어떻게 보여지는지, 어떤 정보가 박물관에 적합한지, 카테고리들을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 어떻게 문제가 될지 의문이 들었다. 그 웹사이트는 온라인 전시 포맷에 의문을 품고 예술 박물관에 관한 정보를 배포하는 주류 채널로서 소셜 미디어(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를 넘어서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예술가인 Constant Dullaart가 네덜란드 잡지인 Metropolis M에 실린 한 기사에서 우리에게 상기시키듯, 우리는 이것들이 우리가 빠르게 ‘좋아요'를 누르고 클릭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상업용 플랫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그 플랫폼들은 예술에 대한 좀 더 느리고 비판적인 시각은 장려하지 않는다. 웹을 자신의 매개체로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 예술가인 Dullaart는 인터넷이 철저하게 상업화된 장소가 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여, 전화나 영상 채팅을 통해 어떤 예술가와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누거나 실제로 전시 카탈로그를 읽는 것이 좀 더 생신적이고 의미 있는, 예술과의 조우일지 모른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지적한다.

(티켓 판매, 판매 촉진과 임대로 달성한) 벌어들인 수익이 미국과 유럽 내 박물관들에게 점차 더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상업화된 플랫폼들과 이러한 제도의 연대는 박물관이 비즈니스 전략에 더욱 더 맞춰가야만 하는 사실에 정확히 부합한다. 박물관이 방문객과 직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계속 문을 닫아야 하거나 방문객 규모를 급격히 줄이라고 요청을 받게 됨에 따라, 대중의 참여와 대중 관광에 의존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더 이상 실행할 수 없다. 나는 Mousse Magazine의 최근 기사에서 이런 현실로 인해 우리는 우리가 공공 기관으로서 박물관으로부터 우리가 실제로 원하는 것을 재고해야 하고 박물관의 비즈니스 정신이 박물관이 운영되는 방식, 박물관이 방문객을 상대하는 방식, 박물관이 전시하는 대상에 실제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의문점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ART AFTER PANDEMICS
Questioning the Field of Art, the Notion of Critique and that which We Deem Public


Looking at my own curatorial work, the pandemic coincided eerily with a project on institutional critique that I have been working on since last year. This project, titled the Art of Critique consists of a series of exhibitions, the first of which – Image Power – had been opened two weeks before the lock-down that was instituted in the Netherlands in March. The exhibition series asks what constitutes a practice of institutional critique today, now that the art world is understood to be thoroughly embedded in a broader visual economy and “critique” is practiced everywhere. Can there be (or are we already witnessing) a different approach to critique now that major public and private institutions are under increased scrutiny? And how might any new approach relate to institutional critique as a specific kind of artistic practice that began to emerge in the late 1960s?

The three exhibitions of The Art of Critique are each dedicated to a different aspect: the first, Image Power, questions the role of art in our image-driven age of social media and political unrest. The second, Representation Critique (which will take place in the summer next year) focuses on questions of representation and identity, while the third, Structure Critique (which will be on view next fall), critically reflects on the structures that underpin the artworld.

Linking to the historic contemporary art movement of institutional critique, the project thus reflects on the critical role of art in today’s society, the role of the museum, and the structure of the art world at large. It thus connects to issues that we have been forced to grapple with very concretely as we are living through a pandemic that has put business as usual to a halt, as well as a surging Black Lives Matter movement that has raised the issue of systemic racism with a renewed force, also in the artworld. So, while I have already been engaged with questioning the workings of our field as part of this project, the reality of the pandemic hit and gave the project and the questions it poses an even more pronounced urgency.

During the lock-down period in the Netherlands, and very practically speaking, the first exhibition in the series, Image Power, could no longer be visited physically. While our PR department did what all museums did: amp up the social media presence of the museum, we also worked on a digital representation of the exhibition together with the art academy in Amsterdam, the Gerrit Rietveld Academy.

This resulted in the website The Art of Critique (https://theartofcritique.rietveldacademie.nl/), designed by Giulia Bierens de Haan. The objective was to create an online environment that should not only show the exhibition, but also engage with the topic of the project. In this case we wanted to raise the question how information is displayed and brought to the viewer. By surfing on the website, one can experience the exhibition by keywords and categories. This questions how information about artworks is displayed, which information is relevant for the museum, and how categories can be reductive and problematic. The website is also an attempt to question the format of the online exhibition and to go beyond social media (Twitter, Facebook and Instagram) as the mainstream channels of distributing information about art museums.

As the artist Constant Dullaart has reminded us in a recent article in the Dutch magazine Metropolis M,[1] we should not forget that these are commercial platforms that have been created to quickly draw us in for likes and clicks. They do not, however, encourage a slower, more critical viewing of art. Talking to an artist in person on the phone or through video chat, or actually reading an exhibition catalogue, might be more productive and meaningful encounters with art, the artist Dullaart – who has become known for using the web as his medium – critically points out given the fact that the internet has become a thoroughly commercialized place.

This institutional engagement with commercialized platforms falls neatly into place with the fact that museums have become forced to become more and more attuned to business strategies, with earned income (achieved through ticket sales, merchandise and rentals) becoming steadily more important for museums in the US and Europe.

As museums have either been forced to remain closed or have been asked to reduce the amount of visitors drastically in order to safeguard the health of visitors and staff, the business model that relies on mass attendance and mass tourism is no longer viable. This, I have argued in a recent article for Mousse Magazine[2] forces us to rethink what we actually want from museums as public institutions and to grapple with the question how their business-mindedness actually impacts how they are governed, how they address their publics and what they put on display.


[1] Constant Dullaart, Luidruchtige irrelevantie, Metropolis M, spring 2020
http://www.metropolism.com/nl/opinion/41377_luidruchtige_irrelevantie_door_constant
_dullaart_onzekerheid_1

[2] Melanie Bühler, Are Museums Like Parks? The ‘Public’ in Public Museums, Mousse Magazine, summer 2020
http://moussemagazine.it/are-museums-like-parks-the-public-in-public-museums-melanie-buheler-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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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 이후 사회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이 팬데믹 이후의 예술의 역할과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팬데믹은 우리 사회에서 경험한 적 없는 매우 큰 충격이다. 보편적으로 사회는 하나의 어려움을 겪을 때 처음에는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이타적인 활동이 많이 이루어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의 이기적인 성향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실례로 20세기에 ‘세계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사회는 ‘불균형’, 즉 선진국 위주의 경제 헤게모니, 불균형의 세계화라는 문제를 안게 되었으며, 이번 팬데믹 이후에는 이와 반대로 ‘반세계화 현상’, 즉 지역주의가 우선시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이것을 넘어서는 ‘메타 세계화’이다. 문화의 다양성 그리고 각 민족, 지역의 공존성이 보장되고 서로 수평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메타 세계화의 개념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어떤 예술이 어떤 역할을 해야 될 것인가가 굉장히 중요한 논점이라 할 수 있다. 정치나 이념, 종교, 자본으로부터 탈피해서 독립적으로 행할 수 있는 예술만의 큰 힘으로부터 예술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과거 모더니즘 시기에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꿈꿨던, 예술로써 사회를 변화시키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꿈의 역할을 20세기에는 매스미디어가 흡수해버렸으며, 예술은 이념과 자본에 종속되었다. 하지만 21세기의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매스미디어가 가져가버린 예술의 기능과 역할, 영역을 회복하고 있다. 더불어 현재 우리가 속해있는 디지털 시대는 소통의 민주화와 접속 평등의 사회가 되며 예술의 공공적 역할에 대한 가능성이 증폭되었다. 실제로 많은 예술가들이 온/오프라인을 병행하여 예술을 통한 사회 치유적, 사회 공공적 활동을 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예술이 다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때가 된 것이다.

또한 미술관이라는 장소 역시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9세기 루브르 박물관으로부터 시작된 공립미술관과 MoMA로 대표되는 20세기 유미주의와 상업주의 미술관을 지나 새로운 사회적 기능이 도입된 21세기 ‘미래형 미술관’이 출현하게 되며, 이곳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적 영역’, ‘공적 영역’, 그리고 ‘성전화된 미술’의 영역이 모두 해체되고 융합되는 하나의 공공과 공론의 장이 될 것이다. 위계가 없는 학제간, 다계층 간, 다세대 간 등 제4의 영역을 아우르는 것이 바로 미래형 미술관의 전형이다.

지금의 디지털 시대는 이러한 미래형 미술관의 가능성에 보다 가깝게 만들어주었다. 또한 팬데믹 이후에 예술의 공적 가치가 다시 한번 주목을 받으며 예술 작업들이 물질에서 탈 물질성으로 전환되고 또 가속될 것이다. 우리에게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는 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나은 사회, 미술관, 예술의 기능과 역할은 우리의 선택에 따라 지향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시대가 지니고 있는 양극의 가능성 - 공동체 형성, 유기적 소통, 수평적 소통의 가능성, 그리고 자신을 사회로부터 고립한 채 자기만의 영역을 만드는 가능성 - 이 함께 증폭되었다. 이 중 어떠한 선택을 하고 추구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이 정해질 것이다. 우리는 유토피아가 되느냐 디스토피아가 되느냐, 기술의 종속된 인간이 되느냐 공존하는 인간이 되느냐, 자연과 기술이 수평적으로 공존하는 융합사회로 가느냐 등 다양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이 속에서 우리가 더 나은, 밝은 미래를 선택하기 위한 과정에는 바로 예술이 중요한 매개체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Society has undergone major changes since the advent of COVID19.
I’d like to discuss the role and direction of art after the pandemic.


The pandemic came as a huge, unprecedented shock to our society. In general, when a society goes through difficulties, altruistic activities are initially carried out with a focus on the community; but as times goes by, the selfish tendencies of individuals inevitably surface. For instance, in the process of achieving ‘globalization’ in the 20th century, societies encountered problems of imbalance, specifically uneven globalization based on an economic hegemony driven by developed countries. Since the pandemic, a phenomenon of anti-globalization prioritizing localism has emerged. Nonetheless, what is needed right now is a ‘meta-globalization’ which goes beyond such a phenomenon. We must proceed towards an idea of meta-globalization which guarantees cultural diversity and coexistence, along with horizontal communication, between ethnic groups and regions. This is precisely where the point at issue lies—what kind of art can we have and what role will it serve? The role of art is derived from its great strength of being able to exert itself independently—away from politics, ideology, religion, and capital.

Art’s role as dreamt up by Russian avant-garde artists during the age of modernism—of changing society and making it better through art—was absorbed by the mass media in the 20th Century and subordinated to ideology and capital. However, advances in digital technology in the 21st Century are restoring the functions, roles, and domains of art that had been taken away by mass media. Furthermore, as the digital era we currently live in has become a society of democratized communication and equal internet access, it has amplified the potential for the public role of art. In reality, many artists are engaged in socially therapeutic, public activities both on and offline. Following the pandemic, the time has come when art can again exert power.

Furthermore, art museums are serving an important role in our society. 21st Century ‘futuristic art museums’ with new social functions have emerged, surpassing the sorts of public art museums originating from the Louvre in the 19th Century as well as the aesthetic and commercial art museums represented by the Museum of Modern Art. These futuristic museums will become a place of community and public discourse, where the ‘personal domain’, the ‘public domain’, and the domain of ‘canonized art’ are deconstructed and then fused. What encompasses the nonhierarchical 4th domain—specifically the interdisciplinary, the inter-hierarchical, and the intergenerational—is none other than the archetype for the futuristic art museum.

The current digital age has brought such a futuristic art museum closer to reality. Moreover, with focus again drawn to the public value of art in the wake of the pandemic, the transition of artworks from being material to immaterial will be accelerated. This is the result of an era with heightened expectations about the social role of art. Nevertheless, the functions and roles of a better society, art museums, and art itself will be oriented toward the choices we make. Developments inherent in the digital era—such as the formation of communities, organic communication, horizontal communication, and the creation of one’s own domain isolated from society—have accelerated too. Our future path will be determined by what we choose to pursue.

We are at a crossroads in terms of whether society becomes a utopia or a dystopia, whether humans become subservient to or coexist with technology, and whether we head toward an inclusive society where nature and technology live on an equal basis. In this heated search for a better, brighter future, I believe art will be a crucial med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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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 이후 사회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이 팬데믹 이후의 예술의 역할과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팬데믹은 우리 사회에서 경험한 적 없는 매우 큰 충격이다. 보편적으로 사회는 하나의 어려움을 겪을 때 처음에는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이타적인 활동이 많이 이루어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의 이기적인 성향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실례로 20세기에 ‘세계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사회는 ‘불균형’, 즉 선진국 위주의 경제 헤게모니, 불균형의 세계화라는 문제를 안게 되었으며, 이번 팬데믹 이후에는 이와 반대로 ‘반세계화 현상’, 즉 지역주의가 우선시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이것을 넘어서는 ‘메타 세계화’이다. 문화의 다양성 그리고 각 민족, 지역의 공존성이 보장되고 서로 수평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메타 세계화의 개념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어떤 예술이 어떤 역할을 해야 될 것인가가 굉장히 중요한 논점이라 할 수 있다. 정치나 이념, 종교, 자본으로부터 탈피해서 독립적으로 행할 수 있는 예술만의 큰 힘으로부터 예술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과거 모더니즘 시기에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꿈꿨던, 예술로써 사회를 변화시키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꿈의 역할을 20세기에는 매스미디어가 흡수해버렸으며, 예술은 이념과 자본에 종속되었다. 하지만 21세기의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매스미디어가 가져가버린 예술의 기능과 역할, 영역을 회복하고 있다. 더불어 현재 우리가 속해있는 디지털 시대는 소통의 민주화와 접속 평등의 사회가 되며 예술의 공공적 역할에 대한 가능성이 증폭되었다. 실제로 많은 예술가들이 온/오프라인을 병행하여 예술을 통한 사회 치유적, 사회 공공적 활동을 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예술이 다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때가 된 것이다.

또한 미술관이라는 장소 역시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9세기 루브르 박물관으로부터 시작된 공립미술관과 MoMA로 대표되는 20세기 유미주의와 상업주의 미술관을 지나 새로운 사회적 기능이 도입된 21세기 ‘미래형 미술관’이 출현하게 되며, 이곳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적 영역’, ‘공적 영역’, 그리고 ‘성전화된 미술’의 영역이 모두 해체되고 융합되는 하나의 공공과 공론의 장이 될 것이다. 위계가 없는 학제간, 다계층 간, 다세대 간 등 제4의 영역을 아우르는 것이 바로 미래형 미술관의 전형이다.

지금의 디지털 시대는 이러한 미래형 미술관의 가능성에 보다 가깝게 만들어주었다. 또한 팬데믹 이후에 예술의 공적 가치가 다시 한번 주목을 받으며 예술 작업들이 물질에서 탈 물질성으로 전환되고 또 가속될 것이다. 우리에게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는 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나은 사회, 미술관, 예술의 기능과 역할은 우리의 선택에 따라 지향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시대가 지니고 있는 양극의 가능성 - 공동체 형성, 유기적 소통, 수평적 소통의 가능성, 그리고 자신을 사회로부터 고립한 채 자기만의 영역을 만드는 가능성 - 이 함께 증폭되었다. 이 중 어떠한 선택을 하고 추구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이 정해질 것이다. 우리는 유토피아가 되느냐 디스토피아가 되느냐, 기술의 종속된 인간이 되느냐 공존하는 인간이 되느냐, 자연과 기술이 수평적으로 공존하는 융합사회로 가느냐 등 다양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이 속에서 우리가 더 나은, 밝은 미래를 선택하기 위한 과정에는 바로 예술이 중요한 매개체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Society has undergone major changes since the advent of COVID19.
I’d like to discuss the role and direction of art after the pandemic.


The pandemic came as a huge, unprecedented shock to our society. In general, when a society goes through difficulties, altruistic activities are initially carried out with a focus on the community; but as times goes by, the selfish tendencies of individuals inevitably surface. For instance, in the process of achieving ‘globalization’ in the 20th century, societies encountered problems of imbalance, specifically uneven globalization based on an economic hegemony driven by developed countries. Since the pandemic, a phenomenon of anti-globalization prioritizing localism has emerged. Nonetheless, what is needed right now is a ‘meta-globalization’ which goes beyond such a phenomenon. We must proceed towards an idea of meta-globalization which guarantees cultural diversity and coexistence, along with horizontal communication, between ethnic groups and regions. This is precisely where the point at issue lies—what kind of art can we have and what role will it serve? The role of art is derived from its great strength of being able to exert itself independently—away from politics, ideology, religion, and capital.

Art’s role as dreamt up by Russian avant-garde artists during the age of modernism—of changing society and making it better through art—was absorbed by the mass media in the 20th Century and subordinated to ideology and capital. However, advances in digital technology in the 21st Century are restoring the functions, roles, and domains of art that had been taken away by mass media. Furthermore, as the digital era we currently live in has become a society of democratized communication and equal internet access, it has amplified the potential for the public role of art. In reality, many artists are engaged in socially therapeutic, public activities both on and offline. Following the pandemic, the time has come when art can again exert power.

Furthermore, art museums are serving an important role in our society. 21st Century ‘futuristic art museums’ with new social functions have emerged, surpassing the sorts of public art museums originating from the Louvre in the 19th Century as well as the aesthetic and commercial art museums represented by the Museum of Modern Art. These futuristic museums will become a place of community and public discourse, where the ‘personal domain’, the ‘public domain’, and the domain of ‘canonized art’ are deconstructed and then fused. What encompasses the nonhierarchical 4th domain—specifically the interdisciplinary, the inter-hierarchical, and the intergenerational—is none other than the archetype for the futuristic art museum.

The current digital age has brought such a futuristic art museum closer to reality. Moreover, with focus again drawn to the public value of art in the wake of the pandemic, the transition of artworks from being material to immaterial will be accelerated. This is the result of an era with heightened expectations about the social role of art. Nevertheless, the functions and roles of a better society, art museums, and art itself will be oriented toward the choices we make. Developments inherent in the digital era—such as the formation of communities, organic communication, horizontal communication, and the creation of one’s own domain isolated from society—have accelerated too. Our future path will be determined by what we choose to pursue.

We are at a crossroads in terms of whether society becomes a utopia or a dystopia, whether humans become subservient to or coexist with technology, and whether we head toward an inclusive society where nature and technology live on an equal basis. In this heated search for a better, brighter future, I believe art will be a crucial med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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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02     2020.10.02 10 GLOBAL CURATORS

DAY 02  2020.10.02 10 GLOBAL CURATORS

독립 큐레이터
Independent Curator

현재에 관해

스크린 상에서 서로만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까?

터치에 대한 매우 생물학적 개념으로, 그것의 모드는 디폴트에서 정지로 이동했다. 이는 우리가 당연시 여겨온 다른 여러 가지 것들과 같은 것이다. 나의 예술가 친구는 Zoom이 최근에 인간이 되는 꿈을 꿨다. 나는 기술적 스펙트럼의 끝인 ‘가상’을 향해 가속되는 순간에, 가상으로 그리고 민감하게 그녀를 진지하게 느낀다.

예술을 정보와 시스템으로 생각하는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인 Jack Burnham은 자신의 에세이인 ‘시스템 미학’에서 ‘현 시대의 우선순위가 조직의 문제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묘사하곤 했으며, 더 나아가 그는 하나의 시스템 관점이 유기물과 무기물 간의 지속적인 관계들을 중심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강조했다. 그는 기술과 예술의 옹호자이자 낙관론자였지만 뉴욕에서 그가 기획한 전시가 ‘파산’하고 ‘혼란스럽다는’ 논평들을 받았을 때 역사는 그를 ‘실망시켰다’.

나는 역사가 되풀이되는지 확신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Burnham이 그의 시대에 마주쳤던 논점들의 진화된 혹은 반복된 버전과 마주치고 있다고 느낀다. 전 세계적 팬데믹이라는 정지된 캡슐(suspended capsule) 안에서, 우리는 기술적 모체들 중 자연, 시간, 죽음이란 테마를 돌이켜봐야만 한다. 만일 Burham이나 Bertalanffy의 ‘시스템’이 치료법이 아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협력’하기는 아마도 목표 지향적이기 보다는 (아니면 우리는 ‘목표’의 의미를 재평가 해야할까?), 방법 및 개념 지향적일 것이다. 서펜타인은 최근 ‘미래의 예술 생태계’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 보고서에서 ‘선진 기술들’은 고유의 내부 논리(로직)을 통해 관객의 상호작용을 저장 및 처리하는 ‘생생한 물질’로 묘사된다. 오늘 날 협력은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 이진법적이거나 아니면 여러 선택지들 사이를 어떻게 탐험하는지에 관련해 은유적일 수 있다. 즉, 우리는 여러 기관들, 기술적 당사자들, 생생한 혹은 살아있는 물질들이라는 활동적 요소 즉, 기술 회사들,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으로서, 여러 논의들을 중심으로 조직화될 수 있는 공동들과 함께 살아간다. Jack Burnham의 말을 빌리면, 이것들은 지리적 의미에서의 이웃이 아닌, 지식, 생각, 행위의 지도 안에 있는 이웃들이다. 우리의 탐험은 그런 이웃을 식별하는 데서 이뤄진다. 서로의 장소로 가는 물리적 계단이 막혀 있음에도 우리가 이웃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새로운 개념과 방법, 즉, 직설적으로 말하는 디지털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인공두뇌 및 시스템 이론이 60년대와 70년대에 눈에 띄었을 때 비물질성에 관한 논의는 이미 시작됐지만 오늘 날의 디지털 전략들의 유의미성은 디지털 환경의 특성이나 심지어 고립의 상황뿐 아니라 ‘스스로 일상의 직물과 구별이 안될 만큼 엮여있는’ (Mark Weiser) 기술들 즉, 우리 삶의 구별되지 않는 부분인 조용한(silent) 기술들의 존재의 위급함에서 비롯된다. 어떤 종류의 전략들이 그런 기술들의 소프트하고 심리적인 부분을 다룰 수 있을까?

1992년에 Paul Sermon은 비디오 카메라들, 쌍방향 인터랙티브 비디오, 오디오 라인으로, 텔레마틱 꿈이라 부른 작품을 창작했다. 여러분이 침대에 누울 때, 여러분은 바로 옆에서 자고 있는 누군가의 투사를 보게 될 것이다. 2020년에 내가 자주 협력하고 있는 Microsoft Xiaoice는 가상의 남자친구/여자친구를 만들기 위한 프레임워크를 출시했다. 그 봇(bot)은 여러분이 그/그녀에게 보낸 논문들로부터 학습을 할 수 있고 여러분과 함께 머물 수 있다. 28년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들 (하나는 예술가가, 하나는 기술 회사가 만든 작품들)은 뭔가를 즉, 존재의 느낌을 본질적으로 비슷하게 다룬다. 아마도 이것이 본질적으로 Burham의 시대와 다른 점일 것이다. 즉, 우리는 보다 소프트하고 미묘한 디지털 전략으로 우리의 ‘이웃들’을 식별하며,투사된 이미지든, 심지어 유령 이미지든, 알고리즘에 의해 ‘학습된’ 그리고 생성된 라인이든 혹은 여러 기술들의 이식 등 어떤 형태로든 우리는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 우리는 존재한다.



On Presence

How can we collaborate when we can only see each other on the screen? The very biological notion of touch has switched its mode from default to suspension - same as many other things that we’ve taken from granted. An artist friend of mine dreamed of Zoom becoming a human being recently, I feel her sincerely - at a moment of acceleration towards the “virtuality” end of the technological spectrum, virtually, and vulnerably.

A notable figure in the history of thinking art as information and systems, Jack Burnham, used to described in his essay System Aesthetics, that “[t]he priorities of the present age revolve around the problems of organisation,” and he further underscored how a system point of view revolves around a set of on-going relationships between the organic and the non-organic. He was an advocate and optimist of technology and art, but history “failed” him when the exhibition he curated in New York went “bankrupt”, and received comments of being “confusing”.

I’m not sure if history is recursive, whilst I do feel that we’re encountering an evolved or iterated version of the issues encountered by Burnham in his times. In the suspended capsule of global pandemic, we are forced to revisit amongst technological matrices the themes of nature, time, and death. If Burnham or Bertalanffy’s “System” wasn’t the antidote, what would be? To “collaborate”, is perhaps less goal driven (or do we need to re-evaluate what a “goal” means?), but more method and concept driven. Serpentine recently released a report on “Future Art Eco-Systems” in which “advanced technologies” are described as “lively materials” that store and process audience interactions or through their own internal logic. Collaboration nowadays can be metaphorical in regards of how we navigate among all seemingly binary or even multiple choices - we live with active factors of institutions, technological parties and lively, or perhaps, living materials: tech companies, open-source softwares, and mostly importantly communities that can be organised around the discussions, which, back in Jack Burnham’s quote, is the neighbourhoods - not in the geographical sense, but neighbourhoods in the map of knowledge, thoughts and actions. The navigational lies in the identification of such neighbours. If we are to become neighbours even the physical stairway to each other’s place is blocked, we should develop new concepts and methods - or digital strategies, straightforwardly speaking.

The discussion of immateriality already started when cybernetics and system theory came into sight in the sixties and seventies, yet the significance of digital strategies nowadays not only come from the nature of digital environment or even the situation of isolation, but also the urgencies of the existence of technologies that “weave themselves into the fabric of everyday life until they are indistinguishable from it.”(Mark Weiser) - the silent techs, the indistinguishable parts of our life. What kind of strategies can deal with the soft and psychological part of them?

In 1992, Paul Sermon created a piece called telematic dreaming, with video cameras, a two-way interactive video and audio line. When you lie down on the bed, you will see the projection of someone else, sleeping right next to you. In 2020, Microsoft Xiaoice, whom I often collaborate with, launched a framework for people to create virtual boyfriend/girlfriends, the bot can learn from the articles you sent to him/her, and stay with you. Albeit in 28 years of difference, the two works - although one from an artist, one from a technology company, address something quintessentially similar: a feeling of presence. Perhaps this is what’s essentially different from Burnham’s times - we identify our “neighbourhoods”, with a digital strategy that is more soft and subtle, and we become present for each other: no matter in the form a projected image, a phantom image even, a line “learned” and generated by an algorithm, or any possible implantation of technologies. We are 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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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KOREAN CURATORS

DAY 02  2020.10.02 10 KOREAN CURA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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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 관해

스크린 상에서 서로만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까?

터치에 대한 매우 생물학적 개념으로, 그것의 모드는 디폴트에서 정지로 이동했다. 이는 우리가 당연시 여겨온 다른 여러 가지 것들과 같은 것이다. 나의 예술가 친구는 Zoom이 최근에 인간이 되는 꿈을 꿨다. 나는 기술적 스펙트럼의 끝인 ‘가상’을 향해 가속되는 순간에, 가상으로 그리고 민감하게 그녀를 진지하게 느낀다.

예술을 정보와 시스템으로 생각하는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인 Jack Burnham은 자신의 에세이인 ‘시스템 미학’에서 ‘현 시대의 우선순위가 조직의 문제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묘사하곤 했으며, 더 나아가 그는 하나의 시스템 관점이 유기물과 무기물 간의 지속적인 관계들을 중심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강조했다. 그는 기술과 예술의 옹호자이자 낙관론자였지만 뉴욕에서 그가 기획한 전시가 ‘파산’하고 ‘혼란스럽다는’ 논평들을 받았을 때 역사는 그를 ‘실망시켰다’.

나는 역사가 되풀이되는지 확신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Burnham이 그의 시대에 마주쳤던 논점들의 진화된 혹은 반복된 버전과 마주치고 있다고 느낀다. 전 세계적 팬데믹이라는 정지된 캡슐(suspended capsule) 안에서, 우리는 기술적 모체들 중 자연, 시간, 죽음이란 테마를 돌이켜봐야만 한다. 만일 Burham이나 Bertalanffy의 ‘시스템’이 치료법이 아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협력’하기는 아마도 목표 지향적이기 보다는 (아니면 우리는 ‘목표’의 의미를 재평가 해야할까?), 방법 및 개념 지향적일 것이다. 서펜타인은 최근 ‘미래의 예술 생태계’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 보고서에서 ‘선진 기술들’은 고유의 내부 논리(로직)을 통해 관객의 상호작용을 저장 및 처리하는 ‘생생한 물질’로 묘사된다. 오늘 날 협력은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 이진법적이거나 아니면 여러 선택지들 사이를 어떻게 탐험하는지에 관련해 은유적일 수 있다. 즉, 우리는 여러 기관들, 기술적 당사자들, 생생한 혹은 살아있는 물질들이라는 활동적 요소 즉, 기술 회사들,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으로서, 여러 논의들을 중심으로 조직화될 수 있는 공동들과 함께 살아간다. Jack Burnham의 말을 빌리면, 이것들은 지리적 의미에서의 이웃이 아닌, 지식, 생각, 행위의 지도 안에 있는 이웃들이다. 우리의 탐험은 그런 이웃을 식별하는 데서 이뤄진다. 서로의 장소로 가는 물리적 계단이 막혀 있음에도 우리가 이웃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새로운 개념과 방법, 즉, 직설적으로 말하는 디지털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인공두뇌 및 시스템 이론이 60년대와 70년대에 눈에 띄었을 때 비물질성에 관한 논의는 이미 시작됐지만 오늘 날의 디지털 전략들의 유의미성은 디지털 환경의 특성이나 심지어 고립의 상황뿐 아니라 ‘스스로 일상의 직물과 구별이 안될 만큼 엮여있는’ (Mark Weiser) 기술들 즉, 우리 삶의 구별되지 않는 부분인 조용한(silent) 기술들의 존재의 위급함에서 비롯된다. 어떤 종류의 전략들이 그런 기술들의 소프트하고 심리적인 부분을 다룰 수 있을까?

1992년에 Paul Sermon은 비디오 카메라들, 쌍방향 인터랙티브 비디오, 오디오 라인으로, 텔레마틱 꿈이라 부른 작품을 창작했다. 여러분이 침대에 누울 때, 여러분은 바로 옆에서 자고 있는 누군가의 투사를 보게 될 것이다. 2020년에 내가 자주 협력하고 있는 Microsoft Xiaoice는 가상의 남자친구/여자친구를 만들기 위한 프레임워크를 출시했다. 그 봇(bot)은 여러분이 그/그녀에게 보낸 논문들로부터 학습을 할 수 있고 여러분과 함께 머물 수 있다. 28년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들 (하나는 예술가가, 하나는 기술 회사가 만든 작품들)은 뭔가를 즉, 존재의 느낌을 본질적으로 비슷하게 다룬다. 아마도 이것이 본질적으로 Burham의 시대와 다른 점일 것이다. 즉, 우리는 보다 소프트하고 미묘한 디지털 전략으로 우리의 ‘이웃들’을 식별하며,투사된 이미지든, 심지어 유령 이미지든, 알고리즘에 의해 ‘학습된’ 그리고 생성된 라인이든 혹은 여러 기술들의 이식 등 어떤 형태로든 우리는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 우리는 존재한다.



On Presence

How can we collaborate when we can only see each other on the screen? The very biological notion of touch has switched its mode from default to suspension - same as many other things that we’ve taken from granted. An artist friend of mine dreamed of Zoom becoming a human being recently, I feel her sincerely - at a moment of acceleration towards the “virtuality” end of the technological spectrum, virtually, and vulnerably.

A notable figure in the history of thinking art as information and systems, Jack Burnham, used to described in his essay System Aesthetics, that “[t]he priorities of the present age revolve around the problems of organisation,” and he further underscored how a system point of view revolves around a set of on-going relationships between the organic and the non-organic. He was an advocate and optimist of technology and art, but history “failed” him when the exhibition he curated in New York went “bankrupt”, and received comments of being “confusing”.

I’m not sure if history is recursive, whilst I do feel that we’re encountering an evolved or iterated version of the issues encountered by Burnham in his times. In the suspended capsule of global pandemic, we are forced to revisit amongst technological matrices the themes of nature, time, and death. If Burnham or Bertalanffy’s “System” wasn’t the antidote, what would be? To “collaborate”, is perhaps less goal driven (or do we need to re-evaluate what a “goal” means?), but more method and concept driven. Serpentine recently released a report on “Future Art Eco-Systems” in which “advanced technologies” are described as “lively materials” that store and process audience interactions or through their own internal logic. Collaboration nowadays can be metaphorical in regards of how we navigate among all seemingly binary or even multiple choices - we live with active factors of institutions, technological parties and lively, or perhaps, living materials: tech companies, open-source softwares, and mostly importantly communities that can be organised around the discussions, which, back in Jack Burnham’s quote, is the neighbourhoods - not in the geographical sense, but neighbourhoods in the map of knowledge, thoughts and actions. The navigational lies in the identification of such neighbours. If we are to become neighbours even the physical stairway to each other’s place is blocked, we should develop new concepts and methods - or digital strategies, straightforwardly speaking.

The discussion of immateriality already started when cybernetics and system theory came into sight in the sixties and seventies, yet the significance of digital strategies nowadays not only come from the nature of digital environment or even the situation of isolation, but also the urgencies of the existence of technologies that “weave themselves into the fabric of everyday life until they are indistinguishable from it.”(Mark Weiser) - the silent techs, the indistinguishable parts of our life. What kind of strategies can deal with the soft and psychological part of them?

In 1992, Paul Sermon created a piece called telematic dreaming, with video cameras, a two-way interactive video and audio line. When you lie down on the bed, you will see the projection of someone else, sleeping right next to you. In 2020, Microsoft Xiaoice, whom I often collaborate with, launched a framework for people to create virtual boyfriend/girlfriends, the bot can learn from the articles you sent to him/her, and stay with you. Albeit in 28 years of difference, the two works - although one from an artist, one from a technology company, address something quintessentially similar: a feeling of presence. Perhaps this is what’s essentially different from Burnham’s times - we identify our “neighbourhoods”, with a digital strategy that is more soft and subtle, and we become present for each other: no matter in the form a projected image, a phantom image even, a line “learned” and generated by an algorithm, or any possible implantation of technologies. We are 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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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두기의 공간정치 : 팬데믹 이후 도시공간과 공공영역

불과 몇 달 전까지 저가항공으로 국경을 쉽게 가로지르고, 물류 시스템을 통해 온갖 상품이 물리적 경계를 넘나든 동시대에 있어, 새로운 바이러스는 사람들 사이, 지역 간, 국가 간 경계에 보이지 않는 빗장을 쳐두었다. 이렇듯 일상의 많은 부분이 과거와 같지 않지만, 한편으로 디지털 기술을 통해 큰 무리 없이 작동되고 있기도 하다. 코로나 이후의 삶은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재편되고 있으며, K-방역으로 주목받은 한국의 경우 정부 대응력, 의료진의 헌신, 시민의식과 더불어 기술기반의 방역 시스템이 결정적이라 평가받는다. 이미 각종 멀티미디어, 디지털기기, CCTV로 대표되는 도시통제기술이 익숙한 한국 사회에 있어, 이번 팬데믹은 현실에서 활용하지 못한 기술력을 광범위하게 적용했을 뿐이다.

이제 공간을 통치하고, 장소와 시민을 재배치하는 일에 정부와 경찰이 직접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송도로 대표되던 스마트시티는 우리 모두의 일상 곳곳에 네트워크망과 같이 촘촘히 침투한 모습으로 변화되고 있다. 장소와 도시를 조직하는 것은 건설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로서의 인프라 스트럭처이다. 코로나 사태를 통해 전세계가 지각한 것은 IT 기술을 기반으로 한 정보네트워크가 사실상 ‘도시사회’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이러한 도시정보 공유시스템이 간과하는 데이터 인권문제, 공간통치와 감시 등 중앙집권적 권력의 문제는 여전히 공론화의 과정에 있으며, 민주적 합의로 사회에 자리 잡아야 하는 과제가 남겨져 있다. 정보가 투명해진 사회에서 이 ‘투명성’은 훈육 장치, 즉 사회적 낙인으로 인한 통제 효과가 되어 사람 사이의 관계망을 새로이 작동시킨다. 이러한 뉴노멀의 사회에서 우리의 도시공간과 공공영역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 것일까? 더불어, 장소를 살아가는 인간의 신체는 어떠한 모습으로 재배치되고 있는 것일까?

위기 속에서 등장한 재난자본주의에 있어, 공간의 문제는 계급, 자본, 권력의 층위에 따라 더 극단적인 방식으로 분리되는 양상을 보인다. 정보에 덜 연결되고, 덜 동참할수록 마이너리티의 장소는 네트워크의 구조에서 배제된다. 팬데믹의 상황에서 저소득 노동자의 삶은 더 위태롭기만 하다. 한국의 물류센터의 집단 감염을 비롯해 세계 각지의 육류가공공장, 택배, 배달 업체, 광산, 농장 등에서 피해는 전세계의 만연한 불평등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인다. 불평등의 세계는 코로나 이후 도시네트워크 밖에서 비가시적 영역으로 남겨진다. 이렇게 세계가 재편되는 시점에 있어 예술은 어떠한 방식으로 공공영역과 민주적으로 관계 맺으며 지속해나갈 수 있을까? 도시학의 창시자인 패트릭 게데스(Patrick Geddes)는 “도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참여와 실천 운동이 필수”적임을 강조하였으며, 여러 스마트시티 전문가들 또한 “도시를 작동시키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람들”이라 역설한다. 시민은 도시공간의 능동적인 행위자이자 공유시스템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능동적 행위자로서의 참여는 역설적으로 기술통치 정보 생산에 일조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성숙한 시민의식, 자발적인 사용자의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이 변화의 본질을 사유하지 못한 채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온라인 콘텐츠로만 집중된다면, 유통-소비의 휘발적 네트워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공공영역이 온라인에서 도모되고, 오프라인 문화공간이 폐쇄되는 상황에서 예술은 허용된 공간과 주어진 규범에 순응하며 마냥 대기할 수만은 없다. 이 지점에서 예술은 우리 사회를 재편하는 힘의 구조가 사유화된 것은 아닌지, 혹은 예술이 그러한 힘의 장에 공모하고 있거나 공공성을 은폐하고 축소하지 있지 않은지 또한 점검해 나가야 한다. 또한, 네트워크를 사적으로 소유하려는 움직임을 경계하고, 공간을 재편하는 권력에서 밀려난 불평등의 영역과 교류해나가며 민주적인 소통망을 넓혀나가야 한다. 그러한 소통의 과정으로부터 예술은 기술이 지시하는 획일화된 경험을 경계하고, 차이와 다름을 포용하면서 포스트-코로나의 삶이 상실해가는 감각들을 점차 회복해 나가야 할 것이다. 가령, 디지털 백색지대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아날로그 소통에 주목하여 네트워크에서 소외된 사회구성원과 교류할 수도 있다. 한편, 물리적 장소가 폐쇄된 시기에 온라인이 대체하는 공공영역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연대체와 개방적인 문화공유지로서 역할을 도모할 수도 있다. 예술은 시민커먼즈(civic commons), 시민실험의 장과 접속하고 연대해 나가는 과정에서 보다 민주적인 확장을 꾀해나가야 한다. 뉴노멀의 규범에서 누락된 인간관계를 회복하면서, 개방적인 문화예술 네트워크를 어떻게 생성해 나갈지는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할 부분이다.



The Spatial Politics of Distancing:
Urban spaces and the public domain since the pandemic


Just a few months ago, travel across borders was easily accessible through low-cost carriers, and all sorts of products traversed physical boundaries through distribution systems. Now, a new virus has closed the borders between people, regions, and countries. Although many aspects of everyday life have changed, the world still functions without much of a hindrance thanks to digital technology. Life since the Coronavirus has been reshuffled based on digital technology, and in South KoreaN, which has been praised for its K-quarantine, a technology-based quarantine system is as critical as the government response, devoted medical staff, and civic consciousness. For South KoreaNn society, which was already familiar with the urban control technologies represented by multimedia, digital devices, and CCTV, the pandemic was but a widespread application of technologies that hadn’t been employed yet.

Now, the government and the police don't directly intervene in the work of governing spaces, rearranging places and people. Smart cities, represented by Songdo just a few years ago, are undergoing change by densely infiltrating every part of our daily lives, just like a network. Infrastructure as software, rather than construction, is what structures places and cities. The Coronavirus pandemic has allowed the whole world to recognize the fact that IT-based information networks actually form ‘urban societies'. However, issues of centralized power overlooked by urban information sharing systems, such as human rights issues, spatial governance, and surveillance, are still in the process of being publicized and remain as tasks that must take root in society through democratic consensus. Such ‘transparency' in a society where information is transparent becomes a disciplinary device or, in other words, produces a controlling effect as a result of social stigma and thus newly activates a network between people. How are our urban spaces and the public domain changing in a society with this new normal? Furthermore, in what form is the human body living in places that have been rearranged?

The issue of space with regard to the disaster capitalism appearing amidst the crisis shows signs of splintering into more extreme forms depending on levels of class, capital, and power. Lesser connection to and participation in information leads to minority places being excluded from the structure of networks. The lives of low-income workers during the pandemic are even more precarious. Group infections in KoreaNn distribution centers as well as those in meat processing factories, parcel service centers, delivery service centers, mines, and farms around the world clearly reveal rampant inequality of a kind which remains in the invisible domain outside the urban network. At a time when the world is being reshuffled, how can art be sustained while democratically forming relationships with the public domain? The founder of urban studies, Patrick Geddes, emphasized how “a movement of participation and practice by the people is necessary in order for a city to develop”, and various smart city experts have stressed how people are what ultimately activates a city. Citizens must become the active agent in urban spaces as well as the main agent behind systems of sharing. However, participation, as active agents, paradoxically carries the irony of contributing toward the production of information for technological governance. At this very moment, we are witnessing a paradoxical situation involving a mature civic consciousness and voluntary users.

In such circumstances, if art concentrates solely on online content in response to the demands of the era while failing to contemplate the essence of change, it won't be able to break free from the volatile network of distribution-consumption. When the public domain is planned increasingly online while enclosed in offline cultural spaces, art can't simply wait in conformity to permitted spaces and given norms. At this point, art must also start asking whether the power to reconfigure our society has been privatized and whether art itself is conspiring with centres of power to conceal and minimize “publicness”. Furthermore, it must be vigilant against movements that attempt to privately own networks, and must expand democratic networks of communication while interacting with the domain of inequality, which has been ousted in turn from the power of reconfiguring spaces. From such a process of communication, art will guard against regimented experiences ordered by technology and gradually restore the sensibilities lost in life post-coronavirus, as it embraces differences and being different. For instance, a critical consciousness with regard to digital white zones can enable attention to analogue communication, thereby making it possible to interact with society members who have been marginalized by a network. On the one hand, public domains existing online at a time when physical places have been closed can promote their role as bodies of solidarity that are impossible in reality and as open, cultural commons. Art must attempt more democratic expansion in the process of logging into and banding together with the civic commons and places of civic experimentation. All of us must contemplate how to create open networks for culture and art while restoring the human relationships that are excluded from the new norm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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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두기의 공간정치 : 팬데믹 이후 도시공간과 공공영역

불과 몇 달 전까지 저가항공으로 국경을 쉽게 가로지르고, 물류 시스템을 통해 온갖 상품이 물리적 경계를 넘나든 동시대에 있어, 새로운 바이러스는 사람들 사이, 지역 간, 국가 간 경계에 보이지 않는 빗장을 쳐두었다. 이렇듯 일상의 많은 부분이 과거와 같지 않지만, 한편으로 디지털 기술을 통해 큰 무리 없이 작동되고 있기도 하다. 코로나 이후의 삶은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재편되고 있으며, K-방역으로 주목받은 한국의 경우 정부 대응력, 의료진의 헌신, 시민의식과 더불어 기술기반의 방역 시스템이 결정적이라 평가받는다. 이미 각종 멀티미디어, 디지털기기, CCTV로 대표되는 도시통제기술이 익숙한 한국 사회에 있어, 이번 팬데믹은 현실에서 활용하지 못한 기술력을 광범위하게 적용했을 뿐이다.

이제 공간을 통치하고, 장소와 시민을 재배치하는 일에 정부와 경찰이 직접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송도로 대표되던 스마트시티는 우리 모두의 일상 곳곳에 네트워크망과 같이 촘촘히 침투한 모습으로 변화되고 있다. 장소와 도시를 조직하는 것은 건설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로서의 인프라 스트럭처이다. 코로나 사태를 통해 전세계가 지각한 것은 IT 기술을 기반으로 한 정보네트워크가 사실상 ‘도시사회’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이러한 도시정보 공유시스템이 간과하는 데이터 인권문제, 공간통치와 감시 등 중앙집권적 권력의 문제는 여전히 공론화의 과정에 있으며, 민주적 합의로 사회에 자리 잡아야 하는 과제가 남겨져 있다. 정보가 투명해진 사회에서 이 ‘투명성’은 훈육 장치, 즉 사회적 낙인으로 인한 통제 효과가 되어 사람 사이의 관계망을 새로이 작동시킨다. 이러한 뉴노멀의 사회에서 우리의 도시공간과 공공영역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 것일까? 더불어, 장소를 살아가는 인간의 신체는 어떠한 모습으로 재배치되고 있는 것일까?

위기 속에서 등장한 재난자본주의에 있어, 공간의 문제는 계급, 자본, 권력의 층위에 따라 더 극단적인 방식으로 분리되는 양상을 보인다. 정보에 덜 연결되고, 덜 동참할수록 마이너리티의 장소는 네트워크의 구조에서 배제된다. 팬데믹의 상황에서 저소득 노동자의 삶은 더 위태롭기만 하다. 한국의 물류센터의 집단 감염을 비롯해 세계 각지의 육류가공공장, 택배, 배달 업체, 광산, 농장 등에서 피해는 전세계의 만연한 불평등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인다. 불평등의 세계는 코로나 이후 도시네트워크 밖에서 비가시적 영역으로 남겨진다. 이렇게 세계가 재편되는 시점에 있어 예술은 어떠한 방식으로 공공영역과 민주적으로 관계 맺으며 지속해나갈 수 있을까? 도시학의 창시자인 패트릭 게데스(Patrick Geddes)는 “도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참여와 실천 운동이 필수”적임을 강조하였으며, 여러 스마트시티 전문가들 또한 “도시를 작동시키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람들”이라 역설한다. 시민은 도시공간의 능동적인 행위자이자 공유시스템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능동적 행위자로서의 참여는 역설적으로 기술통치 정보 생산에 일조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성숙한 시민의식, 자발적인 사용자의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이 변화의 본질을 사유하지 못한 채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온라인 콘텐츠로만 집중된다면, 유통-소비의 휘발적 네트워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공공영역이 온라인에서 도모되고, 오프라인 문화공간이 폐쇄되는 상황에서 예술은 허용된 공간과 주어진 규범에 순응하며 마냥 대기할 수만은 없다. 이 지점에서 예술은 우리 사회를 재편하는 힘의 구조가 사유화된 것은 아닌지, 혹은 예술이 그러한 힘의 장에 공모하고 있거나 공공성을 은폐하고 축소하지 있지 않은지 또한 점검해 나가야 한다. 또한, 네트워크를 사적으로 소유하려는 움직임을 경계하고, 공간을 재편하는 권력에서 밀려난 불평등의 영역과 교류해나가며 민주적인 소통망을 넓혀나가야 한다. 그러한 소통의 과정으로부터 예술은 기술이 지시하는 획일화된 경험을 경계하고, 차이와 다름을 포용하면서 포스트-코로나의 삶이 상실해가는 감각들을 점차 회복해 나가야 할 것이다. 가령, 디지털 백색지대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아날로그 소통에 주목하여 네트워크에서 소외된 사회구성원과 교류할 수도 있다. 한편, 물리적 장소가 폐쇄된 시기에 온라인이 대체하는 공공영역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연대체와 개방적인 문화공유지로서 역할을 도모할 수도 있다. 예술은 시민커먼즈(civic commons), 시민실험의 장과 접속하고 연대해 나가는 과정에서 보다 민주적인 확장을 꾀해나가야 한다. 뉴노멀의 규범에서 누락된 인간관계를 회복하면서, 개방적인 문화예술 네트워크를 어떻게 생성해 나갈지는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할 부분이다.



The Spatial Politics of Distancing:
Urban spaces and the public domain since the pandemic


Just a few months ago, travel across borders was easily accessible through low-cost carriers, and all sorts of products traversed physical boundaries through distribution systems. Now, a new virus has closed the borders between people, regions, and countries. Although many aspects of everyday life have changed, the world still functions without much of a hindrance thanks to digital technology. Life since the Coronavirus has been reshuffled based on digital technology, and in South KoreaN, which has been praised for its K-quarantine, a technology-based quarantine system is as critical as the government response, devoted medical staff, and civic consciousness. For South KoreaNn society, which was already familiar with the urban control technologies represented by multimedia, digital devices, and CCTV, the pandemic was but a widespread application of technologies that hadn’t been employed yet.

Now, the government and the police don't directly intervene in the work of governing spaces, rearranging places and people. Smart cities, represented by Songdo just a few years ago, are undergoing change by densely infiltrating every part of our daily lives, just like a network. Infrastructure as software, rather than construction, is what structures places and cities. The Coronavirus pandemic has allowed the whole world to recognize the fact that IT-based information networks actually form ‘urban societies'. However, issues of centralized power overlooked by urban information sharing systems, such as human rights issues, spatial governance, and surveillance, are still in the process of being publicized and remain as tasks that must take root in society through democratic consensus. Such ‘transparency' in a society where information is transparent becomes a disciplinary device or, in other words, produces a controlling effect as a result of social stigma and thus newly activates a network between people. How are our urban spaces and the public domain changing in a society with this new normal? Furthermore, in what form is the human body living in places that have been rearranged?

The issue of space with regard to the disaster capitalism appearing amidst the crisis shows signs of splintering into more extreme forms depending on levels of class, capital, and power. Lesser connection to and participation in information leads to minority places being excluded from the structure of networks. The lives of low-income workers during the pandemic are even more precarious. Group infections in KoreaNn distribution centers as well as those in meat processing factories, parcel service centers, delivery service centers, mines, and farms around the world clearly reveal rampant inequality of a kind which remains in the invisible domain outside the urban network. At a time when the world is being reshuffled, how can art be sustained while democratically forming relationships with the public domain? The founder of urban studies, Patrick Geddes, emphasized how “a movement of participation and practice by the people is necessary in order for a city to develop”, and various smart city experts have stressed how people are what ultimately activates a city. Citizens must become the active agent in urban spaces as well as the main agent behind systems of sharing. However, participation, as active agents, paradoxically carries the irony of contributing toward the production of information for technological governance. At this very moment, we are witnessing a paradoxical situation involving a mature civic consciousness and voluntary users.

In such circumstances, if art concentrates solely on online content in response to the demands of the era while failing to contemplate the essence of change, it won't be able to break free from the volatile network of distribution-consumption. When the public domain is planned increasingly online while enclosed in offline cultural spaces, art can't simply wait in conformity to permitted spaces and given norms. At this point, art must also start asking whether the power to reconfigure our society has been privatized and whether art itself is conspiring with centres of power to conceal and minimize “publicness”. Furthermore, it must be vigilant against movements that attempt to privately own networks, and must expand democratic networks of communication while interacting with the domain of inequality, which has been ousted in turn from the power of reconfiguring spaces. From such a process of communication, art will guard against regimented experiences ordered by technology and gradually restore the sensibilities lost in life post-coronavirus, as it embraces differences and being different. For instance, a critical consciousness with regard to digital white zones can enable attention to analogue communication, thereby making it possible to interact with society members who have been marginalized by a network. On the one hand, public domains existing online at a time when physical places have been closed can promote their role as bodies of solidarity that are impossible in reality and as open, cultural commons. Art must attempt more democratic expansion in the process of logging into and banding together with the civic commons and places of civic experimentation. All of us must contemplate how to create open networks for culture and art while restoring the human relationships that are excluded from the new norm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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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03     2020.10.05 10 GLOBAL CURATORS

DAY 03  2020.10.05 10 GLOBAL CURATORS

ZKM 수석 큐레이터
Head of curatorial department at ZKM

임계지대를 위해 시의적절하게 발생한 바이러스?

위기 이후의 시간을 성찰하고 팬데믹 이후 예술이 어떤 역할을 할지 상상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COVID-19 대란 이후 세상이 어떻게 될지 확실히 예측하는 것은 시기 상조이다. 이곳 유럽에서 우리는 여전히 위기의 한복판에 있으며 특히, 3월부터 5월 중순까지 혹은 몇몇 나라에서는 7월 중순까지 이뤄졌던 완전 봉쇄령 이후 지난 몇 주간 제약이 완화된 탓에 확진자 및 감염 횟수가 엄청나게 증가해 왔다. 우리가 언제 어떻게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예측이 불가능한 탓에, 정상적인 삶이란 어떠해야 하는지도 점점 더 불명확해지고 있다. 단순히 위기 이전의 우리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사회와 자본주의 시스템을 개선하고 우리 주변의 자연 혹은 지구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진심으로 통감할 기회의 순간이나 지속적인 변화의 순간을 말하는 것일까?

이것들은 우리가 ZKM | 칼스루에 예술과 미디어 센터에서, 임계 지대 프레임워크 안에서 스스로에게 제기하는 질문들이다. ‘지상 정치의 관측소(Observatories for Earthly Politics)’는 프랑스의 철학자인 Bruno Latour가 예술가이자 미디어 이론가이며 ZKM의 CEO인 Peter Weibel와 함께 주도했던 전시 및 연구 프로젝트이다. 이 전시회를 통해 우리는 지구의 임계 상황을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고 지구상의 온갖 형태의 생명 간의 새로운 공존 양식을 탐험한다. 이 전시회에서 내세우는 가설은 지구를 ‘임계 지대들’의 네트워크로 봐야 하며, 이 임계 지대들은 영겁의 시간에 걸쳐 다양한 생명 형태들에 의해 생성된다는 것이다. 이런 임계 지대는 생명이 태어날 수 있는 불과 수 킬로미터에 불과한 지구의 표면을 형성한다. 인류는 지난 세기 동안 이 지대를 급격히 변화시킴으로써, 존재적 위협을 초래했고 그중 지구 온난화는 하나의 위협에 불과하다. 이 프로젝트는 코로나가 발생하기 오래전부터 구상되었지만, 마치 현 상황을 위해 만들어진 듯 보이는 이유는 바이러스의 등장 때문에 보다 시급해지고 눈에 띄는 근본적인 물음들을 다루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데 필요한 위생 규제에 대한 응답으로, 5월에 임계 지대가 ZKM에서 디지털을 통해 처음 문을 열었다. 이 행사는 며칠간 스트리밍 되었고 실제 공간과 가상 공간에서 비국지적 이벤트들을 연결하는 디지털 전시 플랫폼(https://critical-zones.zkm.de)에 의해 보완되었다. 여기서 디지털은 물리적 공간의 대체물이 아니라, 고유의 가능성을 지닌 공간이며, 거의 모든 전시 작품들이 디지털 덕분에 새롭게 이해되고 실현되었다.

1980년대 이래로, Peter Weibel은 19세기와 20세기의 발명품들 (전보, 전화 혹은 팩스, 마지막으로 인터넷)이 우리를 원격 통신의 시대로 진입하게 했고, 근접 사회를 가상적, 비국지적, 탈 육체적 통신 및 교류에 의해 결정되는 원격 사회로 전환시켰다고 말해왔다. Weibel은 이런 급변기에 우리가 우리의 경제, 사회, 문화적 시스템들의 근본적인 개혁을 위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전에는 불가능해 보이던 것이 이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ZKM에서 2년 전 우리의 연구 및 교육 프로젝트인 오픈 코드 진행 중 예측했던 삶과 디지털의 완전한 융합은 널리 수용되고 포용되는 새로운 현실이 된 듯하다. 봉쇄령은 컴퓨터 기반 기술의 확산 속에 엄청난 도약을 초래해 왔다. 근접 사회에 조상으로부터 유래된 특정 의식들처럼 Peter Weibel은 온갖 종류의 개인적인 만남이 인간인 우리에게 여전히 중요하며 가까운 미래에 Zoom이나 다른 화상회의 서비스로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지금은 기술에 대한 우리의 관계 면에서 역사적인 순간일지 모른다.

이런 현상이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팬데믹 이후 세상과 예술은 틀림없이 보다 복합적이게 될 것이며 미디어 예술가들이 수년간 당면해온 문제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미래에 예술은 필연적으로 박물관서만 볼 수 있게 될까? 창의성은 언젠가 인공 지역이 처리할 영역이 될까? 디지털 통신 채널들은 새로운 관객들을 개척할까? 이로 인해 여행과 쇼핑이 감소하면서 보다 많은 자원을 절약하는 예술 시스템이 어떻게 유도될까? 가상의 원격 사회는 아마도 우리가 지구에서 거주 가능한 지대의 완전한 파괴를 막을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이런 측면에서, COVID-19는 어쩌면 우리가 지구의 임계 지대에서 보다 연대해 가며 책임 있는 거주자들이 될 새로운 방법을 시의적절하게 재고하게 하고 가르쳐주고 있는지 모른다.



Just in time for Critical Zones, a virus?

It is of crucial importance that we imagine the role art will play in the wake of Covid-19. As yet, it is too early to predict with certainty how the world will look after the current crisis has abated. Here in Europe we are still in the midst of the crisis; in the last few weeks, there has been an increase in case numbers due to the easing of restrictions following the total lockdown from mid-March to mid-May, or, in some countries, even mid-June. Just as it is unclear when and how we will return to normal life, it has also become less clear what a “normal” life should be. Should it merely be a return to life before the crisis, or is this a chance for sustainable change that could mean improving our societies and our capitalist system, truly acknowledging our responsibility towards our natural surroundings and our planet?

These are the questions we are asking ourselves at the ZKM | Center for Art and Media Karlsruhe within the framework of Critical Zones. Observatories for Earthly Politics, an exhibition and research project initiated by the French philosopher Bruno Latour together with the artist, media theorist and CEO of ZKM, Peter Weibel. The exhibition invites us to deal with the critical situation of the Earth in various ways and to explore new modes of coexistence between all forms of life on our planet. The premise of the exhibition is that the Earth should be seen as a network of “Critical Zones” generated over eons of time by various life forms. These Critical Zones form the surface of the Earth on which life is possible and which is only a few kilometers thin. Humanity has drastically transformed this zone, leading to existential threats among which global warming is only one. Even though the project was conceived long before Coronavirus, it seems made for the current situation because it deals with fundamental questions that have become all the more urgent and obvious thanks to Covid-19.

In response to the hygiene regulations necessary to contain the virus, Critical Zones first opened digitally at ZKM in May with a streamed festival lasting several days, complemented by a digital exhibition platform (https://critical-zones.zkm.de), which connects non-local events in real and virtual spaces. Here, the digital is not a substitute for the physical, but rather a space with its own possibilities for which nearly all the works in the exhibition were newly conceived and realized.

Since the 1980s, Peter Weibel has been saying that the inventions of the 19th and 20th Centuries (telegrams, telephone or fax, and finally the Internet) have brought us into the age of telecommunications, transforming us from a society of proximity to a long-distance society determined by virtual, non-local, disembodied communication and transactions. Now, Weibel states, we have the opportunity to fundamentally reform our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systems. What previously seemed impossible is now inevitable.

What we predicted two years ago in our research and education project Open Codes at ZKM, namely the complete fusion of life with the digital, seems to be the new reality. The lockdown has brought about an enormous leap forward in the dissemination of computer-based technologies. Even if certain atavistic rituals associated with a society of proximity (which is how Peter Weibel defines all kinds of personal meetings) are still important for human beings and are not fully replaceable by Zoom or other video conferencing providers in the near future, this might nonetheless prove a historical moment in our relationship with technology.

How this will affect the arts? Certainly, the world and the arts will become more hybrid after the pandemic, and the questions media artists have been dealing with for many years are gaining greater importance. Will the museum still be the place for art in the future? Will creativity one day be the domain of Artificial Intelligence? How will digital communication channels open up new audiences? How will this lead to an art system that saves more resources, especially by reducing travel and shipping? A virtual tele-society perhaps offers the last chance to avoid the complete destruction of habitable zones on our planet. In this respect, Covid-19 may have come just in time to make us rethink how we live, and to teach us new ways of developing solidarity as responsible inhabitants of planet Earth’s Critical Z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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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KOREAN CURATORS

DAY 03  2020.10.05 10 KOREAN CURATORS

더 스트림 디렉터
Director at The Stream

임계지대를 위해 시의적절하게 발생한 바이러스?

위기 이후의 시간을 성찰하고 팬데믹 이후 예술이 어떤 역할을 할지 상상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COVID-19 대란 이후 세상이 어떻게 될지 확실히 예측하는 것은 시기 상조이다. 이곳 유럽에서 우리는 여전히 위기의 한복판에 있으며 특히, 3월부터 5월 중순까지 혹은 몇몇 나라에서는 7월 중순까지 이뤄졌던 완전 봉쇄령 이후 지난 몇 주간 제약이 완화된 탓에 확진자 및 감염 횟수가 엄청나게 증가해 왔다. 우리가 언제 어떻게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예측이 불가능한 탓에, 정상적인 삶이란 어떠해야 하는지도 점점 더 불명확해지고 있다. 단순히 위기 이전의 우리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사회와 자본주의 시스템을 개선하고 우리 주변의 자연 혹은 지구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진심으로 통감할 기회의 순간이나 지속적인 변화의 순간을 말하는 것일까?

이것들은 우리가 ZKM | 칼스루에 예술과 미디어 센터에서, 임계 지대 프레임워크 안에서 스스로에게 제기하는 질문들이다. ‘지상 정치의 관측소(Observatories for Earthly Politics)’는 프랑스의 철학자인 Bruno Latour가 예술가이자 미디어 이론가이며 ZKM의 CEO인 Peter Weibel와 함께 주도했던 전시 및 연구 프로젝트이다. 이 전시회를 통해 우리는 지구의 임계 상황을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고 지구상의 온갖 형태의 생명 간의 새로운 공존 양식을 탐험한다. 이 전시회에서 내세우는 가설은 지구를 ‘임계 지대들’의 네트워크로 봐야 하며, 이 임계 지대들은 영겁의 시간에 걸쳐 다양한 생명 형태들에 의해 생성된다는 것이다. 이런 임계 지대는 생명이 태어날 수 있는 불과 수 킬로미터에 불과한 지구의 표면을 형성한다. 인류는 지난 세기 동안 이 지대를 급격히 변화시킴으로써, 존재적 위협을 초래했고 그중 지구 온난화는 하나의 위협에 불과하다. 이 프로젝트는 코로나가 발생하기 오래전부터 구상되었지만, 마치 현 상황을 위해 만들어진 듯 보이는 이유는 바이러스의 등장 때문에 보다 시급해지고 눈에 띄는 근본적인 물음들을 다루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데 필요한 위생 규제에 대한 응답으로, 5월에 임계 지대가 ZKM에서 디지털을 통해 처음 문을 열었다. 이 행사는 며칠간 스트리밍 되었고 실제 공간과 가상 공간에서 비국지적 이벤트들을 연결하는 디지털 전시 플랫폼(https://critical-zones.zkm.de)에 의해 보완되었다. 여기서 디지털은 물리적 공간의 대체물이 아니라, 고유의 가능성을 지닌 공간이며, 거의 모든 전시 작품들이 디지털 덕분에 새롭게 이해되고 실현되었다.

1980년대 이래로, Peter Weibel은 19세기와 20세기의 발명품들 (전보, 전화 혹은 팩스, 마지막으로 인터넷)이 우리를 원격 통신의 시대로 진입하게 했고, 근접 사회를 가상적, 비국지적, 탈 육체적 통신 및 교류에 의해 결정되는 원격 사회로 전환시켰다고 말해왔다. Weibel은 이런 급변기에 우리가 우리의 경제, 사회, 문화적 시스템들의 근본적인 개혁을 위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전에는 불가능해 보이던 것이 이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ZKM에서 2년 전 우리의 연구 및 교육 프로젝트인 오픈 코드 진행 중 예측했던 삶과 디지털의 완전한 융합은 널리 수용되고 포용되는 새로운 현실이 된 듯하다. 봉쇄령은 컴퓨터 기반 기술의 확산 속에 엄청난 도약을 초래해 왔다. 근접 사회에 조상으로부터 유래된 특정 의식들처럼 Peter Weibel은 온갖 종류의 개인적인 만남이 인간인 우리에게 여전히 중요하며 가까운 미래에 Zoom이나 다른 화상회의 서비스로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지금은 기술에 대한 우리의 관계 면에서 역사적인 순간일지 모른다.

이런 현상이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팬데믹 이후 세상과 예술은 틀림없이 보다 복합적이게 될 것이며 미디어 예술가들이 수년간 당면해온 문제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미래에 예술은 필연적으로 박물관서만 볼 수 있게 될까? 창의성은 언젠가 인공 지역이 처리할 영역이 될까? 디지털 통신 채널들은 새로운 관객들을 개척할까? 이로 인해 여행과 쇼핑이 감소하면서 보다 많은 자원을 절약하는 예술 시스템이 어떻게 유도될까? 가상의 원격 사회는 아마도 우리가 지구에서 거주 가능한 지대의 완전한 파괴를 막을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이런 측면에서, COVID-19는 어쩌면 우리가 지구의 임계 지대에서 보다 연대해 가며 책임 있는 거주자들이 될 새로운 방법을 시의적절하게 재고하게 하고 가르쳐주고 있는지 모른다.



Just in time for Critical Zones, a virus?

It is of crucial importance that we imagine the role art will play in the wake of Covid-19. As yet, it is too early to predict with certainty how the world will look after the current crisis has abated. Here in Europe we are still in the midst of the crisis; in the last few weeks, there has been an increase in case numbers due to the easing of restrictions following the total lockdown from mid-March to mid-May, or, in some countries, even mid-June. Just as it is unclear when and how we will return to normal life, it has also become less clear what a “normal” life should be. Should it merely be a return to life before the crisis, or is this a chance for sustainable change that could mean improving our societies and our capitalist system, truly acknowledging our responsibility towards our natural surroundings and our planet?

These are the questions we are asking ourselves at the ZKM | Center for Art and Media Karlsruhe within the framework of Critical Zones. Observatories for Earthly Politics, an exhibition and research project initiated by the French philosopher Bruno Latour together with the artist, media theorist and CEO of ZKM, Peter Weibel. The exhibition invites us to deal with the critical situation of the Earth in various ways and to explore new modes of coexistence between all forms of life on our planet. The premise of the exhibition is that the Earth should be seen as a network of “Critical Zones” generated over eons of time by various life forms. These Critical Zones form the surface of the Earth on which life is possible and which is only a few kilometers thin. Humanity has drastically transformed this zone, leading to existential threats among which global warming is only one. Even though the project was conceived long before Coronavirus, it seems made for the current situation because it deals with fundamental questions that have become all the more urgent and obvious thanks to Covid-19.

In response to the hygiene regulations necessary to contain the virus, Critical Zones first opened digitally at ZKM in May with a streamed festival lasting several days, complemented by a digital exhibition platform (https://critical-zones.zkm.de), which connects non-local events in real and virtual spaces. Here, the digital is not a substitute for the physical, but rather a space with its own possibilities for which nearly all the works in the exhibition were newly conceived and realized.

Since the 1980s, Peter Weibel has been saying that the inventions of the 19th and 20th Centuries (telegrams, telephone or fax, and finally the Internet) have brought us into the age of telecommunications, transforming us from a society of proximity to a long-distance society determined by virtual, non-local, disembodied communication and transactions. Now, Weibel states, we have the opportunity to fundamentally reform our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systems. What previously seemed impossible is now inevitable.

What we predicted two years ago in our research and education project Open Codes at ZKM, namely the complete fusion of life with the digital, seems to be the new reality. The lockdown has brought about an enormous leap forward in the dissemination of computer-based technologies. Even if certain atavistic rituals associated with a society of proximity (which is how Peter Weibel defines all kinds of personal meetings) are still important for human beings and are not fully replaceable by Zoom or other video conferencing providers in the near future, this might nonetheless prove a historical moment in our relationship with technology.

How this will affect the arts? Certainly, the world and the arts will become more hybrid after the pandemic, and the questions media artists have been dealing with for many years are gaining greater importance. Will the museum still be the place for art in the future? Will creativity one day be the domain of Artificial Intelligence? How will digital communication channels open up new audiences? How will this lead to an art system that saves more resources, especially by reducing travel and shipping? A virtual tele-society perhaps offers the last chance to avoid the complete destruction of habitable zones on our planet. In this respect, Covid-19 may have come just in time to make us rethink how we live, and to teach us new ways of developing solidarity as responsible inhabitants of planet Earth’s Critical Z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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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환대(hospitality)의 새로운 가능성

“환대 행위는 시적일 수밖에 없다”_ 쟈크 데리다

환대란 무엇인가. 쉽게 말해 ‘손님(타자)을 맞아 환영'하는 것이다. 즉, 환대는 언제나 ‘주인(주체)’과 ‘손님(타자)’을 설정하고 있다. 주인이 자신에게 찾아온 손님에게 친절을 베풀고 환영하는 것이다. 이 단순한 듯한 환대가 사실은 우리의 다양한 현실적 문제들이 지닌 복합성을 함의하고 있다. 주인은 누구이며, 손님은 누구인가. 또한 주인이 손님을 ‘환영한다’라는 것은 구체적인 현실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이러스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다. 환대를 준비할 시간도 없이 나에게 들이닥친 이방인. 그렇지만 우리는 이 손님을 마주해야 한다. 빠르게 적응하고, 손님에 대해 파악해야 한다. 들이닥친 손님에게 우리는 붙잡힌 인질일 수도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방인인 손님에게 적대심을 가질 수도 있겠다. 나는 또는 우리는 환대(hospitality)와 적대(hostility)가 섞인 이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현실을 마주한다. 데리다는 기쁨의 나눔을 의미하는 미소 없이 환대란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1 환대란 '나'를 타자에게 무한히 확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여기에서 '나'란 한 개인이든, 집단이든, 국가이든 '주인'의 역할을 하는 주체이다.

팬데믹 이후 현재, 나를 확장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갑자기 빠르게 돌아가는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시간이 주어졌다. 두어 달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된 시기 동안 나는 나만의 동굴(연구실)에 나를 가두고 책을 읽거나 온라인으로 관심 있는 작품들을 찾아보면서 연구의 시간을 가졌다. 예술 작품에 대해 뜯어보고 생각하고 비틀어보는 것 말이다. 크게는 예술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어쩌면 좋은 시기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예술을 통해 갖는다는 것 혹은 예술이 그 기능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동시대적인 의미에서 예술은 새로운 관계들의 집합이자 비판적 사유의 종합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예술이 완전히 바깥에서 외부의 시선으로만 관찰되지 않는 세계 안에서 비판성을 향한 지속적인 사유를 권유하고 요청해주길 기대했다. 그래서 예술을 통해 나의 인식적 세계가 확장되기를 기대하면서. 그러나 어떤 불확실한 시점부터 예술은 그 자체로 양적 포화 상태였다. 비엔날레와 전시의 포화는 무수히 많은 개별 예술 작품을 생산해 냈다. 온라인 생태계는 더 다양성을 전제한 복제와 생산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다양성이 질적 변화를 성취하였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일부 예술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모호했고 새로운 사유의 자극이 되지 못하였다. 생각을 환기할 여유조차 없이 다른 작품이 그리고 다시 또 다른 작품이 쏟아진다. 예술이 본래 성취하고자 하는 가치에 대한 기준은 시대별로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윤리적 규범 안에서 미학적 성취를 꿈꾼다. 결국, 예술의 성취는 그것을 창작하고 공유하는 인간 주체에 기대어야만 가능하다.

코로나 위기는 세계적으로 서로 연결된 경제 및 사회 시스템을 멈추게 하고, 역설적으로 그 시스템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견고해 보였던 예술의 가치가 제대로 기능하게 하려면 이제는 환대의 그늘 아래 어떠한 적대가 함께 하는지 세밀히 살펴볼 때인지도 모른다. 나는 예술을 환대하면서도 적대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종종 마주한다. 새로운 예술의 가치와 가능성은 새로운 윤리의 회복을 통해 복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예술이 완전한 환대의 주인으로서 그 가치 회복의 기회를, 잠시 멈춤을 통해 다시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고 우리 삶의 본질을 유지시켜 줄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환대 축으로서 견고해지길 바란다. 자, 이 시간의 진정한 환대, 결론을 섣불리 예단하지 않으면서 몰두하고 참여하는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꿈꿔본다.



A New Possibility for Hospitality in the Present Day

“An act of hospitality can only be poetic’’ —Jacques Derrida

What is hospitality? Simply put, it is ‘receiving and welcoming a guest (the other)’. In short, hospitality always establishes a ‘master (the subject)’ and a ‘guest (the other)’. The master shows kindness to a guest who visits the master and welcomes the guest. Such seemingly simple hospitality implies the complexity of our various, real problems. Who is the master, and who is the guest? Furthermore, what does the fact that the master ‘welcomes’ the guest mean in concrete reality? A virus is an uninvited guest. It is a foreigner who approaches you without even allowing you time to prepare for hospitality. In this situation, we must encounter this guest. We must quickly adapt and comprehend them. We may be held hostage by this invader. Hence, we might be hostile to a guest who is a foreigner. I, or, we encounter reality with complex emotions combining hospitality and hostility. Derrida emphasizes how hospitality is impossible without a smile signifying the sharing of joy. Hospitality must be an infinite expansion of ‘myself’ to the other. Whether ‘I’ am an individual, a group, or a nation, I am the subject who serves as ‘master’.

After the pandemic, how do I now expand myself? It feels like rapidly-flowing time has suddenly stopped. Time has been given. For the first two months when social distancing was intensified, I shut myself up in my cave (office) and spent time researching, reading books and looking for artworks online that I was interested in. In a greater sense, it was time for me to think about what art meant to me. I believed, perhaps, that this was a good time for me to have time for a short pause, to reflect and look inward through art, and perhaps with regard to art serving its function.

In a contemporary sense, art is a collection of new relationships as well as a synthesis of critical thinking. I expected art to recommend and request constant reasoning toward criticism within a world unobserved by an outside gaze alone. I therefore expected my cognitive world to expand through art. However, at an uncertain point, art in itself became quantitatively saturated. The saturation of the biennale and the exhibit produced numerous individual artworks. The online ecosystem will enable duplication and production based on the premise of more diversity. It isn’t easy to determine whether diversity has accomplished qualitative change. The messages of some of the artworks were vague and failed to stimulate new reasoning. Without even a moment or the composure to recall my thoughts, another work and then another came pouring out. The standard for the value that art fulfills is different for each era. Nevertheless, we dream of aesthetic achievements within ethical norms. Ultimately, artistic achievements are only possible when relying on the human subjects who create and share these peaks.

The crisis of the Coronavirus has stopped globally connected economic and social systems, paradoxically revealing how easy it is for these systems to shatter. Perhaps it is time to examine in detail what hostility is with us under the shade of hospitality in order for artistic value—seemingly sturdy—to properly function. I often encounter ironic situations of simultaneously welcoming and antagonizing art. Maybe the new values and possibilities of art must return through the restoration of a new ethic. I hope that art, as the complete master of hospitality, will have a short pause to solidify as the axis of a new form of hospitality capable of maintaining the essence of our lives. Now, I dream again of true hospitality for this time, of a world of new possibilities, of concentration and participation, without rashly prejudging the concl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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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환대(hospitality)의 새로운 가능성

“환대 행위는 시적일 수밖에 없다”_ 쟈크 데리다

환대란 무엇인가. 쉽게 말해 ‘손님(타자)을 맞아 환영'하는 것이다. 즉, 환대는 언제나 ‘주인(주체)’과 ‘손님(타자)’을 설정하고 있다. 주인이 자신에게 찾아온 손님에게 친절을 베풀고 환영하는 것이다. 이 단순한 듯한 환대가 사실은 우리의 다양한 현실적 문제들이 지닌 복합성을 함의하고 있다. 주인은 누구이며, 손님은 누구인가. 또한 주인이 손님을 ‘환영한다’라는 것은 구체적인 현실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이러스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다. 환대를 준비할 시간도 없이 나에게 들이닥친 이방인. 그렇지만 우리는 이 손님을 마주해야 한다. 빠르게 적응하고, 손님에 대해 파악해야 한다. 들이닥친 손님에게 우리는 붙잡힌 인질일 수도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방인인 손님에게 적대심을 가질 수도 있겠다. 나는 또는 우리는 환대(hospitality)와 적대(hostility)가 섞인 이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현실을 마주한다. 데리다는 기쁨의 나눔을 의미하는 미소 없이 환대란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1 환대란 '나'를 타자에게 무한히 확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여기에서 '나'란 한 개인이든, 집단이든, 국가이든 '주인'의 역할을 하는 주체이다.

팬데믹 이후 현재, 나를 확장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갑자기 빠르게 돌아가는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시간이 주어졌다. 두어 달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된 시기 동안 나는 나만의 동굴(연구실)에 나를 가두고 책을 읽거나 온라인으로 관심 있는 작품들을 찾아보면서 연구의 시간을 가졌다. 예술 작품에 대해 뜯어보고 생각하고 비틀어보는 것 말이다. 크게는 예술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어쩌면 좋은 시기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예술을 통해 갖는다는 것 혹은 예술이 그 기능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동시대적인 의미에서 예술은 새로운 관계들의 집합이자 비판적 사유의 종합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예술이 완전히 바깥에서 외부의 시선으로만 관찰되지 않는 세계 안에서 비판성을 향한 지속적인 사유를 권유하고 요청해주길 기대했다. 그래서 예술을 통해 나의 인식적 세계가 확장되기를 기대하면서. 그러나 어떤 불확실한 시점부터 예술은 그 자체로 양적 포화 상태였다. 비엔날레와 전시의 포화는 무수히 많은 개별 예술 작품을 생산해 냈다. 온라인 생태계는 더 다양성을 전제한 복제와 생산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다양성이 질적 변화를 성취하였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일부 예술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모호했고 새로운 사유의 자극이 되지 못하였다. 생각을 환기할 여유조차 없이 다른 작품이 그리고 다시 또 다른 작품이 쏟아진다. 예술이 본래 성취하고자 하는 가치에 대한 기준은 시대별로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윤리적 규범 안에서 미학적 성취를 꿈꾼다. 결국, 예술의 성취는 그것을 창작하고 공유하는 인간 주체에 기대어야만 가능하다.

코로나 위기는 세계적으로 서로 연결된 경제 및 사회 시스템을 멈추게 하고, 역설적으로 그 시스템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견고해 보였던 예술의 가치가 제대로 기능하게 하려면 이제는 환대의 그늘 아래 어떠한 적대가 함께 하는지 세밀히 살펴볼 때인지도 모른다. 나는 예술을 환대하면서도 적대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종종 마주한다. 새로운 예술의 가치와 가능성은 새로운 윤리의 회복을 통해 복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예술이 완전한 환대의 주인으로서 그 가치 회복의 기회를, 잠시 멈춤을 통해 다시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고 우리 삶의 본질을 유지시켜 줄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환대 축으로서 견고해지길 바란다. 자, 이 시간의 진정한 환대, 결론을 섣불리 예단하지 않으면서 몰두하고 참여하는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꿈꿔본다.



A New Possibility for Hospitality in the Present Day

“An act of hospitality can only be poetic’’ —Jacques Derrida

What is hospitality? Simply put, it is ‘receiving and welcoming a guest (the other)’. In short, hospitality always establishes a ‘master (the subject)’ and a ‘guest (the other)’. The master shows kindness to a guest who visits the master and welcomes the guest. Such seemingly simple hospitality implies the complexity of our various, real problems. Who is the master, and who is the guest? Furthermore, what does the fact that the master ‘welcomes’ the guest mean in concrete reality? A virus is an uninvited guest. It is a foreigner who approaches you without even allowing you time to prepare for hospitality. In this situation, we must encounter this guest. We must quickly adapt and comprehend them. We may be held hostage by this invader. Hence, we might be hostile to a guest who is a foreigner. I, or, we encounter reality with complex emotions combining hospitality and hostility. Derrida emphasizes how hospitality is impossible without a smile signifying the sharing of joy. Hospitality must be an infinite expansion of ‘myself’ to the other. Whether ‘I’ am an individual, a group, or a nation, I am the subject who serves as ‘master’.

After the pandemic, how do I now expand myself? It feels like rapidly-flowing time has suddenly stopped. Time has been given. For the first two months when social distancing was intensified, I shut myself up in my cave (office) and spent time researching, reading books and looking for artworks online that I was interested in. In a greater sense, it was time for me to think about what art meant to me. I believed, perhaps, that this was a good time for me to have time for a short pause, to reflect and look inward through art, and perhaps with regard to art serving its function.

In a contemporary sense, art is a collection of new relationships as well as a synthesis of critical thinking. I expected art to recommend and request constant reasoning toward criticism within a world unobserved by an outside gaze alone. I therefore expected my cognitive world to expand through art. However, at an uncertain point, art in itself became quantitatively saturated. The saturation of the biennale and the exhibit produced numerous individual artworks. The online ecosystem will enable duplication and production based on the premise of more diversity. It isn’t easy to determine whether diversity has accomplished qualitative change. The messages of some of the artworks were vague and failed to stimulate new reasoning. Without even a moment or the composure to recall my thoughts, another work and then another came pouring out. The standard for the value that art fulfills is different for each era. Nevertheless, we dream of aesthetic achievements within ethical norms. Ultimately, artistic achievements are only possible when relying on the human subjects who create and share these peaks.

The crisis of the Coronavirus has stopped globally connected economic and social systems, paradoxically revealing how easy it is for these systems to shatter. Perhaps it is time to examine in detail what hostility is with us under the shade of hospitality in order for artistic value—seemingly sturdy—to properly function. I often encounter ironic situations of simultaneously welcoming and antagonizing art. Maybe the new values and possibilities of art must return through the restoration of a new ethic. I hope that art, as the complete master of hospitality, will have a short pause to solidify as the axis of a new form of hospitality capable of maintaining the essence of our lives. Now, I dream again of true hospitality for this time, of a world of new possibilities, of concentration and participation, without rashly prejudging the concl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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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04     2020.10.06 10 GLOBAL CURATORS

DAY 04  2020.10.06 10 GLOBAL CURATORS

타이베이 현대미술관 (MOCA) 관장
Director of Taipei Museum
of Contemporary Art (MOCA)

팬데믹 이후의 예술

요즘 같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정부와 시민간의 협력은 더욱 중요해졌다. 정부와 시민 모두 팬데믹 시대의 예술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우선 순위대로 나열해보면 “예방, 긴급구제, 그리고 활성화”, 이 세가지는 대만 정부기구 감독기관에서 제시한 주요 원칙이다. 우리 문화부 또한 같은 운영지침을 따르고 있다.

2020년 1월에 설립된 중앙전염병관리센터는 상황별 대응하는 지침을 제공한다. MOCA 타이페이를 포함한 모든 예술기관들은 제공된 안전 프로토콜을 따라 움직인다. 우리 정부는 특히 체온확인 및 손 소독을 위한 추가 인력비용과 같은 안전예방 목적을 위한 예산을 투자했다.

긴급구제의 경우, 정부는 예술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예술 및 문화 구호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대만 시각예술협회와 같은 시민 및 단체가 관련하여 피드백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은 창조산업의 몇 가지 문제를 드러내게 된다는 결점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현재 정책이 최신 창조산업 시스템을 따라잡았는지에 대한 여부를 들 수 있다. 긴급구제를 위해 수집된 정보는 리서치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데, 보다 효과적이고 정확한 정책을 알맞게 제시하려면 현재 산업의 특징을 보다 명확하게 파악해야만 한다. 그러나 데이터 보안 및 개인정보 보호도 보장해야 할 것이다.

산업 활성화를 위해 우리 정부는 예술 및 문화소비에 대한 바우처를 발행하여, 시 정부에서 사람들이 박물관을 방문하도록 장려하기 위해 패키지 티켓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반면에, 팬데믹은 작업 환경, 산업구조, 협업 및 큐레이팅 방법 등 예술 생태계의 여러 측면을 새롭게 들여다 보는 계기를 주었다. 이번 발표는 물리적 및 가상적 관계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첫째, 1990년 이전과 이후에 태어난 예술가와 관객 사이에 차이에 주목했다. 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자라면서 디지털 언어를 습득했기 때문에,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없다. 따라서 물리적 미디어에서 디지털 미디어 또는 가상 플랫폼으로 전환하기 위한 “번역 프로세스”를 거칠 필요가 없다. 또한 특정 기관들은 라이브 스트리밍 갖고 있는 대중문화적 의미때문에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운영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반면에 온라인 전시회 혹은 가상투어는 방문객들에게 박물관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하지만 공간과 시점은 미리 설정되어 있어 물리적 경험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이제는 대체할 방법이나 적응하길 기다리는 대신, 미술관의 목적을 평가할 때인 것 같다. 우리 미술관의 목적이 전시라면, 전시, 예약, 연구 및 교육이 중점이 되어야하고,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접근 방식을 찾아야 한다. 앞서 말한 문제들은 예술의 진화과정에서 불가피한 것이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지금의 팬데믹이 이 담론의 진행을 가속화한 것이라는 점이다.



Art after Pandemic

With this time of severe circumstance, corporations between the government and the citizens have become ever more important. Both parts can be active contributors in creating a better place for art during pandemic time. “Prevention, Bailout and Revitalization,” listed by the order of priority, are the main principles proposed by the Executive Yuan of the Republic of China, Taiwan. Our Ministry of Culture also adopts the exact same principles.

The Central Epidemics Command Center, established on January 2020, provides guidelines responding to the situation. All art institutions, including MOCA Taipei, act according to the instructed safety protocols. Our government especially invested a budget for companies’ health precaution purpose, like the cost of extra staff for temperature check and hand disinfection.

On Bailout, the government has proposed Art and Culture Relief to take care of the art industry. Citizens and organizations, such as Association of the Visual Arts in Taiwan, have been giving feedback. The flaws of the program also reveal some issues in the creative industry; for example, whether the current policy has kept up with the modern creativity industry system. Thus, information collected for bailout applications could be put into good use for research; to acquire a clearer picture of the industries’ present feature, so as to tailor policy which is more effective and precise. Yet, we also need to ensure the security of data and personal information privacy. As for revitalization, our government issued vouchers for arts and cultural consumptions. City governments also launched package ticket programs to encourage people to visit museums.

On the other hand, the Pandemic has in fact spotlighted several aspects of arts, such as the working condition and the structure of the industry, ways of collaboration and curating. This talk will be focusing on the physical and virtual relation facet. First, there is a difference between visitors and artist born before and after 1990. As those born after the 90s acquire the digital language growing up, it seems that they do not need to go through the “translation process” for the transition from physical to digital media or virtual platform. Moreover, certain institutions can find it challenging to present them themselves through live streaming because of its connotation to pop culture. On the other hand, online exhibitions or virtual tours do provide visitors a way to access the museum. Yet the space and the perspectives are predetermined. It can hardly replace the physical experience.

Instead of searching for substitutions or adaptations, it is a time to reassess the purpose of museum. If the purpose of art museum is exhibition, reservation, research and education, then the main goal is to find different approaches to fulfill these objectives. These issues which have been highlighted are matters that are inevitable in the evolvement of art, but the Pandemic accelerates this progress of discu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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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KOREAN CURATORS

DAY 04  2020.10.06 10 KOREAN CURATORS

임시공간 디렉터
Director at Space Imsi

팬데믹 이후의 예술

요즘 같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정부와 시민간의 협력은 더욱 중요해졌다. 정부와 시민 모두 팬데믹 시대의 예술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우선 순위대로 나열해보면 “예방, 긴급구제, 그리고 활성화”, 이 세가지는 대만 정부기구 감독기관에서 제시한 주요 원칙이다. 우리 문화부 또한 같은 운영지침을 따르고 있다.

2020년 1월에 설립된 중앙전염병관리센터는 상황별 대응하는 지침을 제공한다. MOCA 타이페이를 포함한 모든 예술기관들은 제공된 안전 프로토콜을 따라 움직인다. 우리 정부는 특히 체온확인 및 손 소독을 위한 추가 인력비용과 같은 안전예방 목적을 위한 예산을 투자했다.

긴급구제의 경우, 정부는 예술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예술 및 문화 구호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대만 시각예술협회와 같은 시민 및 단체가 관련하여 피드백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은 창조산업의 몇 가지 문제를 드러내게 된다는 결점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현재 정책이 최신 창조산업 시스템을 따라잡았는지에 대한 여부를 들 수 있다. 긴급구제를 위해 수집된 정보는 리서치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데, 보다 효과적이고 정확한 정책을 알맞게 제시하려면 현재 산업의 특징을 보다 명확하게 파악해야만 한다. 그러나 데이터 보안 및 개인정보 보호도 보장해야 할 것이다.

산업 활성화를 위해 우리 정부는 예술 및 문화소비에 대한 바우처를 발행하여, 시 정부에서 사람들이 박물관을 방문하도록 장려하기 위해 패키지 티켓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반면에, 팬데믹은 작업 환경, 산업구조, 협업 및 큐레이팅 방법 등 예술 생태계의 여러 측면을 새롭게 들여다 보는 계기를 주었다. 이번 발표는 물리적 및 가상적 관계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첫째, 1990년 이전과 이후에 태어난 예술가와 관객 사이에 차이에 주목했다. 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자라면서 디지털 언어를 습득했기 때문에,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없다. 따라서 물리적 미디어에서 디지털 미디어 또는 가상 플랫폼으로 전환하기 위한 “번역 프로세스”를 거칠 필요가 없다. 또한 특정 기관들은 라이브 스트리밍 갖고 있는 대중문화적 의미때문에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운영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반면에 온라인 전시회 혹은 가상투어는 방문객들에게 박물관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하지만 공간과 시점은 미리 설정되어 있어 물리적 경험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이제는 대체할 방법이나 적응하길 기다리는 대신, 미술관의 목적을 평가할 때인 것 같다. 우리 미술관의 목적이 전시라면, 전시, 예약, 연구 및 교육이 중점이 되어야하고,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접근 방식을 찾아야 한다. 앞서 말한 문제들은 예술의 진화과정에서 불가피한 것이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지금의 팬데믹이 이 담론의 진행을 가속화한 것이라는 점이다.



Art after Pandemic

With this time of severe circumstance, corporations between the government and the citizens have become ever more important. Both parts can be active contributors in creating a better place for art during pandemic time. “Prevention, Bailout and Revitalization,” listed by the order of priority, are the main principles proposed by the Executive Yuan of the Republic of China, Taiwan. Our Ministry of Culture also adopts the exact same principles.

The Central Epidemics Command Center, established on January 2020, provides guidelines responding to the situation. All art institutions, including MOCA Taipei, act according to the instructed safety protocols. Our government especially invested a budget for companies’ health precaution purpose, like the cost of extra staff for temperature check and hand disinfection.

On Bailout, the government has proposed Art and Culture Relief to take care of the art industry. Citizens and organizations, such as Association of the Visual Arts in Taiwan, have been giving feedback. The flaws of the program also reveal some issues in the creative industry; for example, whether the current policy has kept up with the modern creativity industry system. Thus, information collected for bailout applications could be put into good use for research; to acquire a clearer picture of the industries’ present feature, so as to tailor policy which is more effective and precise. Yet, we also need to ensure the security of data and personal information privacy. As for revitalization, our government issued vouchers for arts and cultural consumptions. City governments also launched package ticket programs to encourage people to visit museums.

On the other hand, the Pandemic has in fact spotlighted several aspects of arts, such as the working condition and the structure of the industry, ways of collaboration and curating. This talk will be focusing on the physical and virtual relation facet. First, there is a difference between visitors and artist born before and after 1990. As those born after the 90s acquire the digital language growing up, it seems that they do not need to go through the “translation process” for the transition from physical to digital media or virtual platform. Moreover, certain institutions can find it challenging to present them themselves through live streaming because of its connotation to pop culture. On the other hand, online exhibitions or virtual tours do provide visitors a way to access the museum. Yet the space and the perspectives are predetermined. It can hardly replace the physical experience.

Instead of searching for substitutions or adaptations, it is a time to reassess the purpose of museum. If the purpose of art museum is exhibition, reservation, research and education, then the main goal is to find different approaches to fulfill these objectives. These issues which have been highlighted are matters that are inevitable in the evolvement of art, but the Pandemic accelerates this progress of discu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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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고 작게 그리고 불편하게

팬데믹 이후 예술과 예술가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팬데믹 이후 예술의 문제보다 경제, 정치 사회 곧 세계에 대해 고민한다. 한국 사회에서 예술을 한다는 건 99:1에서 95:5나 90:10으로 가는 느리고 보이지 않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왔다. 코로나19로 예술생태계가 흔들리고 예술가들의 생존과 실존이 어려워졌다는 점은 공감하지만, 한편으로 예술이 얼마나 공공 자본과 제도에 취약한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기후변화와 인류세 시대에 일상생활의 패턴과 과정을 살펴보지 않은 채, 대체 에너지 산업으로 전기를 사용하고 비대면 소비가 대안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팬데믹 이후 예술이 이전과 유사한 지속 가능성으로서 온라인/비대면이나 예술/가 지원 정책과 제도 안에서만 존재 증명을 할 순 없다. 예술의 공공성, 사회적 참여 그리고 전복적 상상력을 지향해왔지만, 공공 자본과 제도가 블랙홀처럼 강력해진 상황은 신자유주의를 비판했지만 결국 그 안에 내밀하게 포섭되어 긴장 관계가 느슨해진 동시대 예술의 실재이다. 팬데믹 이후 예술에서 이러한 반성이나 성찰의 목소리를 듣긴 어렵다.

온라인/비대면 예술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고 필요라고 말하지만,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IT 기술과 디지털 디바이스가 일상과 경제의 많은 부분을 바꾼 건 사실이지만, 막대한 자본과 기술, 저작권 등이 투입되고, 정치 경제적 불평등과 불균형은 오히려 심화되었다. 전시나 소장품을 온라인으로 보여주고, 세미나나 수업 등을 온라인으로 하는 건 팬데믹 이전에도 할 수 있었는데, 안한 건 아닐까. 모두 온라인/비대면을 이야기하는 게 세기말 IT 광풍이 몰아칠 때 모두 온라인 플랫폼을 이야기할 때가 떠오른다.

코로나19 관련 지원 이슈와 지원 제도가 쏟아진다. 지원을 받기 위해 어떤 피해를 받았는지 증명해야 하거나, 코로나19를 상징하고 의미하는 작업과 프로젝트를 넣어야 받을 수 있다. 대부분 몇 개월 안에 창작과 제작 설치 정산을 해야 하고, 완성도와 비평적 의미보단 시급성과 혜택이 우선이다. 작년 예술인 복지 관련 포럼에서 예술인 복지는 동물 복지보다 사회의 공감과 동의를 받기 어렵다 말한 적이 있다. 예술이 그동안 공공 자본과 제도 안에서 전유했던 예술의 창작, 기획 매개 그리고 유통의 욕망과 정치, 부조리를 이야기하기란 쉽지 않다.

누군가는 미술은 공연이나 축제처럼 타격이 크지 않으니깐 그럴 수 있다고 한다. 사실 지역에서 동시대 미술로 연구조사 기반의 기획을 하는 작은 비영리 공간을 운영하는 입장에선 이전에도 하루에 관람객이 10명 이내였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에서 20여 년간 활동을 하다 지역으로 근거지를 옮긴 건, 지역을 과거지향적 장소성이나 역사성으로 재현하기보단, 과거를 존중하면서도 현재를 재구성하고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변증법적 지역성, 트랜스-로컬리티 큐레이팅에 관한 관심 때문이었다. 그러한 연구와 기획, 매개, 유통과 운영의 과정에서 생태 정치는 중요한 의제이다. 공공 자본과 제도와의 건강한 긴장 관계를 위해 나의 재미와 돈이 떨어질 때까지만 한다고 다짐했고, 그래서 신생 공간의 이름도 ‘임시공간’으로 했다.

팬데믹 이후 예술가로서 실존의 문제만큼, 시민으로서 생존의 문제를 함께 고민한다. 포스트 코로나가 아닌, 코로나19와 함께 하는 지금 여기에서 제도적 일상적 해결이나 방법보단, 예술가로서 지난 과정을 돌아보고 있다. 무언가 기민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하거나 목소리를 높이기보단, 다른 속도와 방향을 생각한다. 동네에서의 예술이 세계관으로서 다른 상상과 실천을 위한 조우가 되지 않을까 상상했다. 넓고 풍부하고 섬세한 지역성과 관계하는 예술은 느리게 작게 불편하게 다가왔으면 좋겠다. 뭐. 그렇게 되지 않더라고 절망하진 않을 거다. 나에겐 고양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Slowly, Small-scale, and Uncomfortably

There have been many stories about art and artists since the pandemic, but comparatively more concern over the economy, politics, and society. I have deemed making art in KoreaNn society as a slow and invisible process of going from 99:1 to 95:5 or 90:10. COVID-19 has shaken the art ecosystem and threatens the survival of artists for whom I have sympathy; but at the same time, it has exposed how vulnerable art is with regard to public capital and institutions. Non-face-to-face consumption and using electricity as part of the alternative energy industry can’t be alternatives without examining the patterns and processes of everyday life in an era of climate change and the Anthropocene. Likewise, art since the pandemic is incapable of proving its existence with a similar sustainability as before within online/non-face-to-face or art/artist support policies and institutions. Although art pursues publicness, social participation, and subversive imagination, and the ever growing black hole-like power of public capital and institutions point to criticisms against neoliberalism, ultimately art has been covertly taken over within these institutions to the extent that it ends up relaxing its tension against them. Art since the pandemic rarely voices engaging levels of reflection or introspection.

Although people say online/non-face-to-face art is an irreversible trend and a necessity, and although IT and digital devices such as the internet and smartphones have indeed changed many areas of daily life and the economy, these changes have required the injection of considerable capital, technology, and copyrights even while political and economic inequality and inequity intensify. Perhaps it was possible to present exhibits or collections digitally and conduct seminars or classes online before the pandemic, and we just chose not to do so. Everyone talking about online/non-face-to-face art evokes technology that arose during the-end-of-century IT boom.

There is an overflow of support issues and support institutions related to COVID-19. In order to receive support, you have to prove what kind of damage you suffered or you must engage in work or a project symbolizing or signifying COVID-19. In most cases, the composition, production, and installation must be calculated and settled within a few months, prioritising speed and benefit rather than a level of completion or critical meaning. In a forum related to the welfare of artists last year, I spoke about how it was more difficult to get the sympathy and agreement of society for the welfare of artists than it was for animal welfare. It isn’t easy to talk about the monopoly over artistic creation, planning and mediation, the desire and politics behind distribution, and corruption hitherto perpetrated in public capital and within public institutions.

Someone might say this is okay because the blow isn’t as severe for art as it is for performances or festivals. Speaking as someone operating a small nonprofit space engaged in research and investigation-based planning for contemporary art in the local area, the number of daily visitors before the pandemic was no more than 10, and the circumstances haven’t changed much. I moved my base of operation to the local area after being active in Seoul for 20 years because I was interested in dialectical locality and trans-locality curating which could restructure the present to imagine the future while respecting the past, as opposed to reproducing the local area through a backward-looking sense of place or historicity. The process of research and planning, mediation, distribution, and operation for such work makes ecological politics an important agenda. In order to maintain a healthy tension with public capital and institutions, I resolved to be engaged in the work until my fun and money ran out, and thus this new space was named ‘space imsi’.

As much as I’m concerned with the issue of existence as an artist since the pandemic, I’m also concerned, like everyone else, with the issue of survival as a citizen. As I share this experience of COVID-19, as opposed to that of post COVID-19, I am reflecting on my past as an artist rather than any institutional or everyday solution or means. I think about a different speed and direction rather than swiftly and effectively responding to something or raising my voice. I imagined that perhaps art in the neighborhood, as a worldview, could be an encounter serving a different kind of imagination or practice. My hope is that art in connection with a wide, rich, and delicate locality approaches slowly, on a small scale, and uncomfortably. Oh well. Even if that doesn’t happen, I won’t despair. I have my cats.

+ CV more

느리고 작게 그리고 불편하게

팬데믹 이후 예술과 예술가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팬데믹 이후 예술의 문제보다 경제, 정치 사회 곧 세계에 대해 고민한다. 한국 사회에서 예술을 한다는 건 99:1에서 95:5나 90:10으로 가는 느리고 보이지 않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왔다. 코로나19로 예술생태계가 흔들리고 예술가들의 생존과 실존이 어려워졌다는 점은 공감하지만, 한편으로 예술이 얼마나 공공 자본과 제도에 취약한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기후변화와 인류세 시대에 일상생활의 패턴과 과정을 살펴보지 않은 채, 대체 에너지 산업으로 전기를 사용하고 비대면 소비가 대안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팬데믹 이후 예술이 이전과 유사한 지속 가능성으로서 온라인/비대면이나 예술/가 지원 정책과 제도 안에서만 존재 증명을 할 순 없다. 예술의 공공성, 사회적 참여 그리고 전복적 상상력을 지향해왔지만, 공공 자본과 제도가 블랙홀처럼 강력해진 상황은 신자유주의를 비판했지만 결국 그 안에 내밀하게 포섭되어 긴장 관계가 느슨해진 동시대 예술의 실재이다. 팬데믹 이후 예술에서 이러한 반성이나 성찰의 목소리를 듣긴 어렵다.

온라인/비대면 예술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고 필요라고 말하지만,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IT 기술과 디지털 디바이스가 일상과 경제의 많은 부분을 바꾼 건 사실이지만, 막대한 자본과 기술, 저작권 등이 투입되고, 정치 경제적 불평등과 불균형은 오히려 심화되었다. 전시나 소장품을 온라인으로 보여주고, 세미나나 수업 등을 온라인으로 하는 건 팬데믹 이전에도 할 수 있었는데, 안한 건 아닐까. 모두 온라인/비대면을 이야기하는 게 세기말 IT 광풍이 몰아칠 때 모두 온라인 플랫폼을 이야기할 때가 떠오른다.

코로나19 관련 지원 이슈와 지원 제도가 쏟아진다. 지원을 받기 위해 어떤 피해를 받았는지 증명해야 하거나, 코로나19를 상징하고 의미하는 작업과 프로젝트를 넣어야 받을 수 있다. 대부분 몇 개월 안에 창작과 제작 설치 정산을 해야 하고, 완성도와 비평적 의미보단 시급성과 혜택이 우선이다. 작년 예술인 복지 관련 포럼에서 예술인 복지는 동물 복지보다 사회의 공감과 동의를 받기 어렵다 말한 적이 있다. 예술이 그동안 공공 자본과 제도 안에서 전유했던 예술의 창작, 기획 매개 그리고 유통의 욕망과 정치, 부조리를 이야기하기란 쉽지 않다.

누군가는 미술은 공연이나 축제처럼 타격이 크지 않으니깐 그럴 수 있다고 한다. 사실 지역에서 동시대 미술로 연구조사 기반의 기획을 하는 작은 비영리 공간을 운영하는 입장에선 이전에도 하루에 관람객이 10명 이내였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에서 20여 년간 활동을 하다 지역으로 근거지를 옮긴 건, 지역을 과거지향적 장소성이나 역사성으로 재현하기보단, 과거를 존중하면서도 현재를 재구성하고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변증법적 지역성, 트랜스-로컬리티 큐레이팅에 관한 관심 때문이었다. 그러한 연구와 기획, 매개, 유통과 운영의 과정에서 생태 정치는 중요한 의제이다. 공공 자본과 제도와의 건강한 긴장 관계를 위해 나의 재미와 돈이 떨어질 때까지만 한다고 다짐했고, 그래서 신생 공간의 이름도 ‘임시공간’으로 했다.

팬데믹 이후 예술가로서 실존의 문제만큼, 시민으로서 생존의 문제를 함께 고민한다. 포스트 코로나가 아닌, 코로나19와 함께 하는 지금 여기에서 제도적 일상적 해결이나 방법보단, 예술가로서 지난 과정을 돌아보고 있다. 무언가 기민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하거나 목소리를 높이기보단, 다른 속도와 방향을 생각한다. 동네에서의 예술이 세계관으로서 다른 상상과 실천을 위한 조우가 되지 않을까 상상했다. 넓고 풍부하고 섬세한 지역성과 관계하는 예술은 느리게 작게 불편하게 다가왔으면 좋겠다. 뭐. 그렇게 되지 않더라고 절망하진 않을 거다. 나에겐 고양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Slowly, Small-scale, and Uncomfortably

There have been many stories about art and artists since the pandemic, but comparatively more concern over the economy, politics, and society. I have deemed making art in KoreaNn society as a slow and invisible process of going from 99:1 to 95:5 or 90:10. COVID-19 has shaken the art ecosystem and threatens the survival of artists for whom I have sympathy; but at the same time, it has exposed how vulnerable art is with regard to public capital and institutions. Non-face-to-face consumption and using electricity as part of the alternative energy industry can’t be alternatives without examining the patterns and processes of everyday life in an era of climate change and the Anthropocene. Likewise, art since the pandemic is incapable of proving its existence with a similar sustainability as before within online/non-face-to-face or art/artist support policies and institutions. Although art pursues publicness, social participation, and subversive imagination, and the ever growing black hole-like power of public capital and institutions point to criticisms against neoliberalism, ultimately art has been covertly taken over within these institutions to the extent that it ends up relaxing its tension against them. Art since the pandemic rarely voices engaging levels of reflection or introspection.

Although people say online/non-face-to-face art is an irreversible trend and a necessity, and although IT and digital devices such as the internet and smartphones have indeed changed many areas of daily life and the economy, these changes have required the injection of considerable capital, technology, and copyrights even while political and economic inequality and inequity intensify. Perhaps it was possible to present exhibits or collections digitally and conduct seminars or classes online before the pandemic, and we just chose not to do so. Everyone talking about online/non-face-to-face art evokes technology that arose during the-end-of-century IT boom.

There is an overflow of support issues and support institutions related to COVID-19. In order to receive support, you have to prove what kind of damage you suffered or you must engage in work or a project symbolizing or signifying COVID-19. In most cases, the composition, production, and installation must be calculated and settled within a few months, prioritising speed and benefit rather than a level of completion or critical meaning. In a forum related to the welfare of artists last year, I spoke about how it was more difficult to get the sympathy and agreement of society for the welfare of artists than it was for animal welfare. It isn’t easy to talk about the monopoly over artistic creation, planning and mediation, the desire and politics behind distribution, and corruption hitherto perpetrated in public capital and within public institutions.

Someone might say this is okay because the blow isn’t as severe for art as it is for performances or festivals. Speaking as someone operating a small nonprofit space engaged in research and investigation-based planning for contemporary art in the local area, the number of daily visitors before the pandemic was no more than 10, and the circumstances haven’t changed much. I moved my base of operation to the local area after being active in Seoul for 20 years because I was interested in dialectical locality and trans-locality curating which could restructure the present to imagine the future while respecting the past, as opposed to reproducing the local area through a backward-looking sense of place or historicity. The process of research and planning, mediation, distribution, and operation for such work makes ecological politics an important agenda. In order to maintain a healthy tension with public capital and institutions, I resolved to be engaged in the work until my fun and money ran out, and thus this new space was named ‘space imsi’.

As much as I’m concerned with the issue of existence as an artist since the pandemic, I’m also concerned, like everyone else, with the issue of survival as a citizen. As I share this experience of COVID-19, as opposed to that of post COVID-19, I am reflecting on my past as an artist rather than any institutional or everyday solution or means. I think about a different speed and direction rather than swiftly and effectively responding to something or raising my voice. I imagined that perhaps art in the neighborhood, as a worldview, could be an encounter serving a different kind of imagination or practice. My hope is that art in connection with a wide, rich, and delicate locality approaches slowly, on a small scale, and uncomfortably. Oh well. Even if that doesn’t happen, I won’t despair. I have my c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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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05     2020.10.07 10 GLOBAL CURATORS

DAY 05  2020.10.07 10 GLOBAL CURATORS

개념예술가
Conceptual artist

팬데믹_시대_이후

우리는 우리의 행동부터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여행, 방문, 연구 – 모든 것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가까운 미래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아이디어 토론도 말이다. 극적인 변화를 맞이한 예술 분야는 어떤 것도 변화하지 않거나 웹기반 형식으로 변화했다.

우리는 관객과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놓치고 있다!
숨겨진 진실은,
뉴질랜드 마오리족이 말하는 것처럼 ‘같은 공기를 공유’하지 않는다면-
모임과 대화를 통해 발전된 무엇을 만들 수 있게 해주었던 개인적인 만남을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사실은,
공공장소에서의 신체의 부재는 인간 그대로의 존재의 부재, 영혼의 부재를 의미한다. 이제 공공의 영역이 통제를 극대화한 감시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인류학적 구성요소가 누락되어있다 – 그것은 디지털 미디어로 전달될 수 없는 것이다!
공공장소의 신체는 정치적이다.

(c)Mischa Kuball www.public-preposition.net



post_pandemic_times

We need to reThink - starting with our Behavior !
Travels, visits, research - everything seem to be effected by Covid_19 and the debate how we could operate our ideas in the near future - Art practice currently seem to be influenced dramatically: either nothing is moving forward - or - has been modified into web based formats…

we are missing the direct communication with our audience!
The truth behind is -
if you do not share the same Air - as the Maoris in New Zealand would say -
it s difficult to substitute personal meetings to create something which has been developed in gatherings and conversations.

Also true:
the absence of the body in public space is the absence of human scale, human spirit - public sphere has been turned into a surveillance space of max control!

But,
the anthropological components are missing - and cannot be transmitted by digital media!
The Body in public space is political*

(c)Mischa Kuball www.public-prepositi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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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KOREAN CURATORS

DAY 05  2020.10.07 10 KOREAN CURATORS

토탈미술관 큐레이터
Curator at Tot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팬데믹_시대_이후

우리는 우리의 행동부터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여행, 방문, 연구 – 모든 것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가까운 미래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아이디어 토론도 말이다. 극적인 변화를 맞이한 예술 분야는 어떤 것도 변화하지 않거나 웹기반 형식으로 변화했다.

우리는 관객과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놓치고 있다!
숨겨진 진실은,
뉴질랜드 마오리족이 말하는 것처럼 ‘같은 공기를 공유’하지 않는다면-
모임과 대화를 통해 발전된 무엇을 만들 수 있게 해주었던 개인적인 만남을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사실은,
공공장소에서의 신체의 부재는 인간 그대로의 존재의 부재, 영혼의 부재를 의미한다. 이제 공공의 영역이 통제를 극대화한 감시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인류학적 구성요소가 누락되어있다 – 그것은 디지털 미디어로 전달될 수 없는 것이다!
공공장소의 신체는 정치적이다.

(c)Mischa Kuball www.public-preposition.net



post_pandemic_times

We need to reThink - starting with our Behavior !
Travels, visits, research - everything seem to be effected by Covid_19 and the debate how we could operate our ideas in the near future - Art practice currently seem to be influenced dramatically: either nothing is moving forward - or - has been modified into web based formats…

we are missing the direct communication with our audience!
The truth behind is -
if you do not share the same Air - as the Maoris in New Zealand would say -
it s difficult to substitute personal meetings to create something which has been developed in gatherings and conversations.

Also true:
the absence of the body in public space is the absence of human scale, human spirit - public sphere has been turned into a surveillance space of max control!

But,
the anthropological components are missing - and cannot be transmitted by digital media!
The Body in public space is political*

(c)Mischa Kuball www.public-prepositi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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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 (미술관에서 일하는) 큐레이터의 일주일

2020년 예정된 세 개의 전시. 모두 국제전시라 코로나로 인해 연기되었다. 연기라고는 하나, 결국 취소를 향해 달려갈 것만 같고, 나는 지금 미술관에서 전시가 아닌 온라인 콘텐츠를 준비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다. 한가하면서 바쁜 일상이다.

월요일. 3시. <월요살롱> 루이스 브루주아는 현대미술가로서 세상과 예민하게 소통하기 위해 <선데이 살롱>을 꽤 오랫동안 운영했다고 한다. 큐레이터인 나는 그녀를 오마주하며 작가와의 소통을 위해 <월요살롱>을 만들었다. 월요일 오후 3시. 무려 4년 동안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찐’한 예술계 종사자들을 만났다. ‘만남’이 중요했던 프로젝트는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중계’의 포맷을 가져올 수 밖에 없었고, 접근성이 좋아졌다는 허울 아래 우리의 이야기는 얇아지는 것만 같다. 어쩌면, 이제 그만해야 할 시점인지도 모르겠다.

화요일. 오후 1시. <톹티비> 기획회의 정부에서 ‘코로나 긴급 지원사업’이 나왔다. 온라인 콘텐츠 제작. 애써 만든 전시는 닫아놓고, 그 전시와 작품을 설명하는 콘텐츠를 또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전시장에서의 작품과의 ‘만남’을 유투브나 인스타가 대신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결의 콘텐츠를 만들어보자. 톹티비의 시작이었다. ‘톹티비’는 토탈미술관 유투브 채널이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없다. 초대손님이 미술관 아카이브에서 책을 빌려가 읽고 소개하는 ‘톹서관’, 미술관의 뒷 이야기를 담아내는 ‘인턴의 브이로그’, 전시 없는 전시장에서 노래하는 뮤지션 ‘톹뮤직’. 전시만으로는 볼 수 없는 미술관의 이모저모를 담기로 했다. 번거롭겠지만, 작품은 예약하고 전시장에서 직접 보는 게 맞다.

수요일. 2시. 장애인 비대면 수업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며 3년째 예술가 발달장애/자폐인들이 함께하는 프로젝트 ‘드림 블라썸 아카데미’ 역시 코로나19의 여파를 피해가지 못했다. 휴강을 거듭하다 결국 온라인으로 수업을 이어가기로 했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다보면, 참가자 가종의 도움 없이는 수업이 진행조차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는다. 기술의 발전으로 그나마 이렇게라도 수업을 할 수 있어 좋다고 해야 하나. 그에 대한 접근조차 어려운 저소득/취약층은 이런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목요일. 저녁 작가와의 만남 퇴근 후, 작가를 만났다. 2020년 그에게는 일본에서의 개인전이 하나 있었고, 여타 다른 미술관 전시도 몇 개 있었다고 했다. 3년이나 공들인 일본에서의 개인전은 취소되었고, 올 한해 2~3개의 그룹전이 전부라고 했다. 그나마 하고 있는 그룹전도 오픈하고 이틀 만에 닫았단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하다는 그의 말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금요일. 오후 어느 관람객의 관람 후기 태풍이 온다며, 심난한 비바람이 시끄럽던 목요일 오후였다. 무작정 오신 관람객은 미리 예약을 하지 못했다며, 혹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람이 가능하겠냐고 물었다. 예약제 운영이었지만, 궂은 날씨에 애써 언덕길까지 힘들게 올라온 분을 그냥 돌려보내기도 미안하여, 전시를 볼 수 있게 해드렸다. 한 시간 쯤 전시를 보고 나가며 그는 말했다. “요즘 전시장에 가면 작품과 단둘이 만나는 것 같아 설레서 좋아요” ‘작품과 단둘이’ 그의 이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주말 오후 궁싯거림. 팬데믹의 상황은 그저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있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팬데믹으로 미술관이나 전시장이 문을 닫아야 하는 날이 올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여주고, 감상할 기회가 줄어들고, 그로 인해 작가도 패닉에 빠지는 상황. 작품을 감상하는 기회보다 작품에 대한 설명과 정보량이 많아진 상황. 주객이 전도되었다. 전시는 사라지는데, 온라인 콘텐츠와 제작비는 늘어간다. 하지만, 이것이 작품과의 만남을 대체할 수 있을까? 작품을 ‘제대로’ 만날 수 있게 하는 공간은/ 방식은 무엇일까? 팬데믹 시대, 잠시 숨고르며 ‘현대예술’ 그리고 ‘전시’의 모습을 되돌아봐도 좋지 않을까?



A Week in the Life of a Curator (working in an art gallery) in the Time of a Pandemic

Three exhibits were scheduled for 2020. All of them were international exhibits, and hence all of them were delayed. Although they say delay, it feels like they’re running toward cancellation, and I’m spending my days at the gallery preparing online content rather than an exhibit. I’m simultaneously free and busy.

Monday. 3pm. <Monday Salon> Louise Bourgeois is said to have operated a <Sunday Salon> for quite a long time in order to sensitively communicate with the world as a modern artist. As a curator, and as a homage to her, I created the <Monday Salon> to communicate with artists. Monday at 3pm. Running the program for a whopping four years, I met pretty ‘intense’ professionals working in the art world. Projects for which ‘meetings’ were important had to take on the format of ‘online broadcasts’ due to the Coronavirus, and, with the excuse of increased accessibility, our stories seem to have become thinner. Perhaps it’s time it came to an end.

Tuesday. 1pm. <Tot-TV> Planning Meeting. The government released the ‘Coronavirus Emergency Support Project’. Online content production. I put aside the exhibit I was diligently working on and had to create content that offered an explanation of that very exhibit and its works. However, appreciating a work and hearing an explanation about that work are two different things. ‘Meeting’ a work in an exhibition can’t be replaced by YouTube or Instagram. If that’s the case, let’s create content in a different style. This was the idea behind Tot-TV. ‘Tot-TV’ refers to Total Museum’s YouTube channel. However, there are no ‘friendly explanations’ of the artworks. There’s the ‘Tot-library’ where invited guests borrow, read, and introduce books from the museum’s archives; the ‘Intern’s Vlog’ which tells behind-the-scenes stories at the museum; and ‘Tot-music’ in which musicians sing in an exhibition hall with no exhibits. We decided to express all sorts of things about the museum which couldn’t be revealed by the exhibits alone. It might be inconvenient, but artworks should be viewed at an exhibition hall in person after reserving a tour.

Wednesday. 2pm. Non-face-to-face class for the disabled. A project seriously thinking about the social role of art, ‘Dream Blossom Academy’, for developmentally disabled and autistic artists wasn’t able to avoid the impact of Covid-19 either in its third year. Classes were repeatedly cancelled, and ultimately, we decided to continue classes online. Teaching the class online made me realize how it’s impossible to do the class without help from the participant’s family. Should we be grateful for being able to do the class at all thanks to advances in technology? How did low-income and vulnerable groups live in times when even accessing such things was impossible?

Thursday. An appointment with an artist in the evening after leaving work. In 2020, he held a private exhibition in Japan and a few other gallery exhibitions as well. He said the private exhibition in Japan for which he had labored for three years had to be cancelled and that he only had two or three group exhibitions this year. Even the group exhibition had to close two days after opening. I was stunned hearing him say he was at a loss for what to do next.

Friday. One visitor’s review of the exhibit in the afternoon. It was a Thursday afternoon deafened by the sound of rain, with news of a coming typhoon. The thoughtless visitor didn’t make a reservation and asked if it were possible to see the museum nevertheless. Although the museum is now operating on a reservation-only basis, I felt bad turning away someone who had come up the hill in bad weather with much difficulty, so I let him view the exhibit. After viewing the exhibit for about an hour, he said, “Whenever I go to an exhibit nowadays, my heart flutters because it feels like it’s just the two of us—the artwork and myself.” His words “just the two of us” kept lingering in my mind.

Weekend afternoon. Tossing and turning, I thought the situation of the pandemic was just a story in a movie or a novel. I never imagined there would be a day when museums and exhibitions would have to close due to a pandemic. Opportunities to show and appreciate works by artists have diminished, and consequently many artists have fallen into a panic. There are more explanations and information on artworks than there are opportunities to appreciate them. The cart has been put before the horse. Exhibits are disappearing, whereas online content and production costs are increasing. In any case, could these replace meeting with the artwork? What is the space or method of ‘properly’ meeting an artwork? In this time of pandemic, wouldn’t it be better to catch our breath for a while and reflect on the substance of ‘contemporary art’ and ‘exhibits’ in gene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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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 (미술관에서 일하는) 큐레이터의 일주일

2020년 예정된 세 개의 전시. 모두 국제전시라 코로나로 인해 연기되었다. 연기라고는 하나, 결국 취소를 향해 달려갈 것만 같고, 나는 지금 미술관에서 전시가 아닌 온라인 콘텐츠를 준비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다. 한가하면서 바쁜 일상이다.

월요일. 3시. <월요살롱> 루이스 브루주아는 현대미술가로서 세상과 예민하게 소통하기 위해 <선데이 살롱>을 꽤 오랫동안 운영했다고 한다. 큐레이터인 나는 그녀를 오마주하며 작가와의 소통을 위해 <월요살롱>을 만들었다. 월요일 오후 3시. 무려 4년 동안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찐’한 예술계 종사자들을 만났다. ‘만남’이 중요했던 프로젝트는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중계’의 포맷을 가져올 수 밖에 없었고, 접근성이 좋아졌다는 허울 아래 우리의 이야기는 얇아지는 것만 같다. 어쩌면, 이제 그만해야 할 시점인지도 모르겠다.

화요일. 오후 1시. <톹티비> 기획회의 정부에서 ‘코로나 긴급 지원사업’이 나왔다. 온라인 콘텐츠 제작. 애써 만든 전시는 닫아놓고, 그 전시와 작품을 설명하는 콘텐츠를 또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전시장에서의 작품과의 ‘만남’을 유투브나 인스타가 대신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결의 콘텐츠를 만들어보자. 톹티비의 시작이었다. ‘톹티비’는 토탈미술관 유투브 채널이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없다. 초대손님이 미술관 아카이브에서 책을 빌려가 읽고 소개하는 ‘톹서관’, 미술관의 뒷 이야기를 담아내는 ‘인턴의 브이로그’, 전시 없는 전시장에서 노래하는 뮤지션 ‘톹뮤직’. 전시만으로는 볼 수 없는 미술관의 이모저모를 담기로 했다. 번거롭겠지만, 작품은 예약하고 전시장에서 직접 보는 게 맞다.

수요일. 2시. 장애인 비대면 수업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며 3년째 예술가 발달장애/자폐인들이 함께하는 프로젝트 ‘드림 블라썸 아카데미’ 역시 코로나19의 여파를 피해가지 못했다. 휴강을 거듭하다 결국 온라인으로 수업을 이어가기로 했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다보면, 참가자 가종의 도움 없이는 수업이 진행조차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는다. 기술의 발전으로 그나마 이렇게라도 수업을 할 수 있어 좋다고 해야 하나. 그에 대한 접근조차 어려운 저소득/취약층은 이런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목요일. 저녁 작가와의 만남 퇴근 후, 작가를 만났다. 2020년 그에게는 일본에서의 개인전이 하나 있었고, 여타 다른 미술관 전시도 몇 개 있었다고 했다. 3년이나 공들인 일본에서의 개인전은 취소되었고, 올 한해 2~3개의 그룹전이 전부라고 했다. 그나마 하고 있는 그룹전도 오픈하고 이틀 만에 닫았단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하다는 그의 말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금요일. 오후 어느 관람객의 관람 후기 태풍이 온다며, 심난한 비바람이 시끄럽던 목요일 오후였다. 무작정 오신 관람객은 미리 예약을 하지 못했다며, 혹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람이 가능하겠냐고 물었다. 예약제 운영이었지만, 궂은 날씨에 애써 언덕길까지 힘들게 올라온 분을 그냥 돌려보내기도 미안하여, 전시를 볼 수 있게 해드렸다. 한 시간 쯤 전시를 보고 나가며 그는 말했다. “요즘 전시장에 가면 작품과 단둘이 만나는 것 같아 설레서 좋아요” ‘작품과 단둘이’ 그의 이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주말 오후 궁싯거림. 팬데믹의 상황은 그저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있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팬데믹으로 미술관이나 전시장이 문을 닫아야 하는 날이 올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여주고, 감상할 기회가 줄어들고, 그로 인해 작가도 패닉에 빠지는 상황. 작품을 감상하는 기회보다 작품에 대한 설명과 정보량이 많아진 상황. 주객이 전도되었다. 전시는 사라지는데, 온라인 콘텐츠와 제작비는 늘어간다. 하지만, 이것이 작품과의 만남을 대체할 수 있을까? 작품을 ‘제대로’ 만날 수 있게 하는 공간은/ 방식은 무엇일까? 팬데믹 시대, 잠시 숨고르며 ‘현대예술’ 그리고 ‘전시’의 모습을 되돌아봐도 좋지 않을까?



A Week in the Life of a Curator (working in an art gallery) in the Time of a Pandemic

Three exhibits were scheduled for 2020. All of them were international exhibits, and hence all of them were delayed. Although they say delay, it feels like they’re running toward cancellation, and I’m spending my days at the gallery preparing online content rather than an exhibit. I’m simultaneously free and busy.

Monday. 3pm. <Monday Salon> Louise Bourgeois is said to have operated a <Sunday Salon> for quite a long time in order to sensitively communicate with the world as a modern artist. As a curator, and as a homage to her, I created the <Monday Salon> to communicate with artists. Monday at 3pm. Running the program for a whopping four years, I met pretty ‘intense’ professionals working in the art world. Projects for which ‘meetings’ were important had to take on the format of ‘online broadcasts’ due to the Coronavirus, and, with the excuse of increased accessibility, our stories seem to have become thinner. Perhaps it’s time it came to an end.

Tuesday. 1pm. <Tot-TV> Planning Meeting. The government released the ‘Coronavirus Emergency Support Project’. Online content production. I put aside the exhibit I was diligently working on and had to create content that offered an explanation of that very exhibit and its works. However, appreciating a work and hearing an explanation about that work are two different things. ‘Meeting’ a work in an exhibition can’t be replaced by YouTube or Instagram. If that’s the case, let’s create content in a different style. This was the idea behind Tot-TV. ‘Tot-TV’ refers to Total Museum’s YouTube channel. However, there are no ‘friendly explanations’ of the artworks. There’s the ‘Tot-library’ where invited guests borrow, read, and introduce books from the museum’s archives; the ‘Intern’s Vlog’ which tells behind-the-scenes stories at the museum; and ‘Tot-music’ in which musicians sing in an exhibition hall with no exhibits. We decided to express all sorts of things about the museum which couldn’t be revealed by the exhibits alone. It might be inconvenient, but artworks should be viewed at an exhibition hall in person after reserving a tour.

Wednesday. 2pm. Non-face-to-face class for the disabled. A project seriously thinking about the social role of art, ‘Dream Blossom Academy’, for developmentally disabled and autistic artists wasn’t able to avoid the impact of Covid-19 either in its third year. Classes were repeatedly cancelled, and ultimately, we decided to continue classes online. Teaching the class online made me realize how it’s impossible to do the class without help from the participant’s family. Should we be grateful for being able to do the class at all thanks to advances in technology? How did low-income and vulnerable groups live in times when even accessing such things was impossible?

Thursday. An appointment with an artist in the evening after leaving work. In 2020, he held a private exhibition in Japan and a few other gallery exhibitions as well. He said the private exhibition in Japan for which he had labored for three years had to be cancelled and that he only had two or three group exhibitions this year. Even the group exhibition had to close two days after opening. I was stunned hearing him say he was at a loss for what to do next.

Friday. One visitor’s review of the exhibit in the afternoon. It was a Thursday afternoon deafened by the sound of rain, with news of a coming typhoon. The thoughtless visitor didn’t make a reservation and asked if it were possible to see the museum nevertheless. Although the museum is now operating on a reservation-only basis, I felt bad turning away someone who had come up the hill in bad weather with much difficulty, so I let him view the exhibit. After viewing the exhibit for about an hour, he said, “Whenever I go to an exhibit nowadays, my heart flutters because it feels like it’s just the two of us—the artwork and myself.” His words “just the two of us” kept lingering in my mind.

Weekend afternoon. Tossing and turning, I thought the situation of the pandemic was just a story in a movie or a novel. I never imagined there would be a day when museums and exhibitions would have to close due to a pandemic. Opportunities to show and appreciate works by artists have diminished, and consequently many artists have fallen into a panic. There are more explanations and information on artworks than there are opportunities to appreciate them. The cart has been put before the horse. Exhibits are disappearing, whereas online content and production costs are increasing. In any case, could these replace meeting with the artwork? What is the space or method of ‘properly’ meeting an artwork? In this time of pandemic, wouldn’t it be better to catch our breath for a while and reflect on the substance of ‘contemporary art’ and ‘exhibits’ in gene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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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06     2020.10.08 10 GLOBAL CURATORS

DAY 06 2020.10.08 10 GLOBAL CURATORS

시각예술가
Visual artist

물리적 연결의 상실

지금과 같은 시대에 다음 단계로서 어떤 길을 가게 될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미디어 즉, 소셜 미디어에서 창의적인 견해들을 보게 되고,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재고하기 위해 책을 읽을 시간이 많아졌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의 많은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나약함을 보여주기 싫어서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현재 그들이 괴로워하는 이유는 물리적 만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충격은 지속되고 있다. 그들은 우울해하며 창작도 하지 못하고 있는 터라, 현 상황에서 힘들어할 수 밖에 없다. 고품질의 예술은 시간을 필요로 하며 우리는 현 상황이 우리의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살펴봐야 한다. 물리적 만남이 불가능한 현상을 고려하는 데 있어 미디어가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시각 예술, 예술 시장, 갤러리, 박물관 같은 온갖 예술 유형들은 미디어를 이용해 사람들과 연결된다. 이 방법도 어느 시점에는 한계에 다다르겠지만 그들의 향후 프로젝트를 지속하는 데 유효하다. 하지만 사람들 간의 소셜 관계는 사라져버린다는 사실로 인해 식탁에서 나누는 대화 같은 비공식적 논의가 부족해진다. 예술 시장에서의 전시, 대화 혹은 연설 및 미디어 상의 경매가 중요하지만, 예술가, 큐레이터, 방문객, 중개자의 소셜 관계는 예술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들이 쉽게 사라질 소셜 관계를 만들지 않는다면, 상황은 반드시 달라질 것이다.

디지털 전략
예술가와 박물관은 디지털 전략을 무시해 왔다. 디지털 전략을 통해 방문객이 단기간 전시장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전시장이 여러 사람들에게 다가가게 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에 개인은 다양한 시점에 온라인 콘텐츠를 시청하고 예술가와 큐레이터가 직접 제공하는 전시장과 예술 작품의 배경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는 사람들을 전시장으로 오게 하지만 예술 작품을 바로 앞에서 보는 것 같은 물리적 경험은 제공하지 못한다. 그것은 효과적인 도구이지만 예술 시장의 대체품일 뿐이다. 결국 디지털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

지역에 집중하기
팬데믹과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상황에서, 예술가, 수집가, 방문객들은 ‘지역적’인 것에 집중한다. 가령, 베를린 시가 지닌 예술적 잠재성이 변해왔다. 이제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국제 도시로 갈 수 없고, 도시 내에서 새 예술작품과 새로운 예술가들을 찾고 있다. 나는 이점이 매우 흥미롭다고 여긴다. 사람들은 이제 자기 도시 지역의 개척자가 되고 있다. 그들은 자산들이 사는 곳과 주변의 것들에 관심을 두고 있다.

우선순위 바꾸기
예술 산업의 우선순위는 변하고 있다. 음악 영상, 시각 예술, 극장의 중요성에 새롭게 탐구된다. 팬데믹 이후 예술의 가치가 치솟고 있다. 사람들은 이와 같은 시대에 진정으로 고통받는 예술가, 배우, 뮤지션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문화 및 예술을 위한 정부의 역할과 정책
우리는 예술이 벽에 거는 물체가 아니란 점은 인정해야 한다. 예술가들이 지역 공동체에서 주변 예술가와 협력하는 소셜 예술(소셜 아트)가 존재한다. 우리는 종종 이런 종류의 예술 방식을 잊고 있지만, 이는 예술 분야에서 중요하며, 이런 장르를 지원할 방안을 찾아야만 한다. 현 상황에서, 예술가들이 함께 뭉쳐서 전처럼 자신들의 예술을 선보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이들 및 추방된 사람들이나 난민들을 대상으로 작업하는 예술가들이 참여한 여러 중요한 예술 프로젝트들이 존재하며, 그런 프로젝트들은 박물관이나 갤러리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정부는 시민 공동체를 위한 이런 종류의 프로젝트들을 조성, 보호, 지원해야 한다. 또한 예술 시장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중요하다. 많은 예술가들이 작품을 팔며 살아가고, 그들의 생존은 개인 소장품과 박물관 소장품의 판매에 달려 있다. 도시 혹은 주(state)의 박물관의 소장품을 구매하는 것은 한 가지 해법의 예가 될 수 있다. 이는 모두를 위한 상생이 가능하게 할 것이다.



The Loss of Physical Links

We do not know which way we are going to go in next step in the time like this. Despite the fact that creative input we see on the media, social media, and that artists have now a lot of time to read books to rethink their things, a lot of artists in Berlin do not want to show their weakness and act the opposite. They are now suffering because of lack of physical meetings. With the economic crash going on. They are depressive and not being creative, which makes them struggle in the situation. Good quality art needs time and we need to see how this is going to influence our art. Considering the situation that the physical meetings are not possible, the media became a bigger role. All type of fields in art, such as visual art, the art market, galleries, and museums, they are using media to get connected with people. It will reach its limit at some point, but it works to continue their upcoming projects. However, the fact that social relationship between people is gone, causes lack of informal discussion like conversations at the dinner table. Exhibitions, talks or speeches in the art market and auctions over the media is crucial, but social connection among artists, curators, visitor and mediators needs to come together inside of the art. Unless they make this social connection, it will never be the same.

Digital Strategy
Artists and museums have neglected digital strategy. Rather than having a visitor inside of an exhibition for a short period of time, it can reach many people in a different way with digital strategy. In the digital age, a person can watch an online content for multiple times and can get much more information of exhibitions and the background of the artworks directly provided by the artists and curators. As for social media like Instagram and Facebook, it attracts people to come to the exhibition, but it does not provide the physical experience of having the artwork in front of the person. It is an effective tool, but it will only be a replacement for art market. In the end, it is necessary to use digital strategy.

Going Local
In the situation of pandemic and social distancing, things have become ‘local’ to the artists, collectors, and visitors. For example, the potential of the city of Berlin has changed. Now that people cannot fly to international cities, people are exploring inside the city to find new artworks and new artists. I find this very interesting. People are now becoming a pioneer of their own city ad area. They care about where you live and what are the surroundings.

Changing Priority
The priority in the art industry is changing. There is new exploration of the importance of arts of film of music, of visual arts, and of theater. The appreciation of art is racing after the pandemic. People started to care more about the artists, actors, and musicians, who are really suffering in time like this.

The Role and The Policy of The Government for Culture and Art
We need to acknowledge that art is not just objects to hang on the wall. There is social art, which is something that artists work with the surrounding in the local community. We often forget this kind of art practice, but this is crucial in the field of art and is important to find ways to support this genre. In the current situation, it is impossible for artists to become social to come together and show their work as before. There are many important art projects that involves artists who work with children, with people in exile or refugees, that we do not see in museums or galleries. The government must foster, protect, and support this kind of projects for the civil community. Also, the government’s support for art market is important. A lot of artists live from sales and their survival depends the sales of private collections of museum collections. Buying a collection of the museum of the cities or of the state could be an example of solution, which will be an win-win situation for every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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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KOREAN CURATORS

DAY 06  2020.10.08 10 KOREAN CURATORS

서울시 문화 비축기지 큐레이터
Curator at Oil Tank Culture Park of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물리적 연결의 상실

지금과 같은 시대에 다음 단계로서 어떤 길을 가게 될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미디어 즉, 소셜 미디어에서 창의적인 견해들을 보게 되고,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재고하기 위해 책을 읽을 시간이 많아졌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의 많은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나약함을 보여주기 싫어서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현재 그들이 괴로워하는 이유는 물리적 만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충격은 지속되고 있다. 그들은 우울해하며 창작도 하지 못하고 있는 터라, 현 상황에서 힘들어할 수 밖에 없다. 고품질의 예술은 시간을 필요로 하며 우리는 현 상황이 우리의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살펴봐야 한다. 물리적 만남이 불가능한 현상을 고려하는 데 있어 미디어가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시각 예술, 예술 시장, 갤러리, 박물관 같은 온갖 예술 유형들은 미디어를 이용해 사람들과 연결된다. 이 방법도 어느 시점에는 한계에 다다르겠지만 그들의 향후 프로젝트를 지속하는 데 유효하다. 하지만 사람들 간의 소셜 관계는 사라져버린다는 사실로 인해 식탁에서 나누는 대화 같은 비공식적 논의가 부족해진다. 예술 시장에서의 전시, 대화 혹은 연설 및 미디어 상의 경매가 중요하지만, 예술가, 큐레이터, 방문객, 중개자의 소셜 관계는 예술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들이 쉽게 사라질 소셜 관계를 만들지 않는다면, 상황은 반드시 달라질 것이다.

디지털 전략
예술가와 박물관은 디지털 전략을 무시해 왔다. 디지털 전략을 통해 방문객이 단기간 전시장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전시장이 여러 사람들에게 다가가게 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에 개인은 다양한 시점에 온라인 콘텐츠를 시청하고 예술가와 큐레이터가 직접 제공하는 전시장과 예술 작품의 배경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는 사람들을 전시장으로 오게 하지만 예술 작품을 바로 앞에서 보는 것 같은 물리적 경험은 제공하지 못한다. 그것은 효과적인 도구이지만 예술 시장의 대체품일 뿐이다. 결국 디지털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

지역에 집중하기
팬데믹과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상황에서, 예술가, 수집가, 방문객들은 ‘지역적’인 것에 집중한다. 가령, 베를린 시가 지닌 예술적 잠재성이 변해왔다. 이제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국제 도시로 갈 수 없고, 도시 내에서 새 예술작품과 새로운 예술가들을 찾고 있다. 나는 이점이 매우 흥미롭다고 여긴다. 사람들은 이제 자기 도시 지역의 개척자가 되고 있다. 그들은 자산들이 사는 곳과 주변의 것들에 관심을 두고 있다.

우선순위 바꾸기
예술 산업의 우선순위는 변하고 있다. 음악 영상, 시각 예술, 극장의 중요성에 새롭게 탐구된다. 팬데믹 이후 예술의 가치가 치솟고 있다. 사람들은 이와 같은 시대에 진정으로 고통받는 예술가, 배우, 뮤지션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문화 및 예술을 위한 정부의 역할과 정책
우리는 예술이 벽에 거는 물체가 아니란 점은 인정해야 한다. 예술가들이 지역 공동체에서 주변 예술가와 협력하는 소셜 예술(소셜 아트)가 존재한다. 우리는 종종 이런 종류의 예술 방식을 잊고 있지만, 이는 예술 분야에서 중요하며, 이런 장르를 지원할 방안을 찾아야만 한다. 현 상황에서, 예술가들이 함께 뭉쳐서 전처럼 자신들의 예술을 선보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이들 및 추방된 사람들이나 난민들을 대상으로 작업하는 예술가들이 참여한 여러 중요한 예술 프로젝트들이 존재하며, 그런 프로젝트들은 박물관이나 갤러리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정부는 시민 공동체를 위한 이런 종류의 프로젝트들을 조성, 보호, 지원해야 한다. 또한 예술 시장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중요하다. 많은 예술가들이 작품을 팔며 살아가고, 그들의 생존은 개인 소장품과 박물관 소장품의 판매에 달려 있다. 도시 혹은 주(state)의 박물관의 소장품을 구매하는 것은 한 가지 해법의 예가 될 수 있다. 이는 모두를 위한 상생이 가능하게 할 것이다.



The Loss of Physical Links

We do not know which way we are going to go in next step in the time like this. Despite the fact that creative input we see on the media, social media, and that artists have now a lot of time to read books to rethink their things, a lot of artists in Berlin do not want to show their weakness and act the opposite. They are now suffering because of lack of physical meetings. With the economic crash going on. They are depressive and not being creative, which makes them struggle in the situation. Good quality art needs time and we need to see how this is going to influence our art. Considering the situation that the physical meetings are not possible, the media became a bigger role. All type of fields in art, such as visual art, the art market, galleries, and museums, they are using media to get connected with people. It will reach its limit at some point, but it works to continue their upcoming projects. However, the fact that social relationship between people is gone, causes lack of informal discussion like conversations at the dinner table. Exhibitions, talks or speeches in the art market and auctions over the media is crucial, but social connection among artists, curators, visitor and mediators needs to come together inside of the art. Unless they make this social connection, it will never be the same.

Digital Strategy
Artists and museums have neglected digital strategy. Rather than having a visitor inside of an exhibition for a short period of time, it can reach many people in a different way with digital strategy. In the digital age, a person can watch an online content for multiple times and can get much more information of exhibitions and the background of the artworks directly provided by the artists and curators. As for social media like Instagram and Facebook, it attracts people to come to the exhibition, but it does not provide the physical experience of having the artwork in front of the person. It is an effective tool, but it will only be a replacement for art market. In the end, it is necessary to use digital strategy.

Going Local
In the situation of pandemic and social distancing, things have become ‘local’ to the artists, collectors, and visitors. For example, the potential of the city of Berlin has changed. Now that people cannot fly to international cities, people are exploring inside the city to find new artworks and new artists. I find this very interesting. People are now becoming a pioneer of their own city ad area. They care about where you live and what are the surroundings.

Changing Priority
The priority in the art industry is changing. There is new exploration of the importance of arts of film of music, of visual arts, and of theater. The appreciation of art is racing after the pandemic. People started to care more about the artists, actors, and musicians, who are really suffering in time like this.

The Role and The Policy of The Government for Culture and Art
We need to acknowledge that art is not just objects to hang on the wall. There is social art, which is something that artists work with the surrounding in the local community. We often forget this kind of art practice, but this is crucial in the field of art and is important to find ways to support this genre. In the current situation, it is impossible for artists to become social to come together and show their work as before. There are many important art projects that involves artists who work with children, with people in exile or refugees, that we do not see in museums or galleries. The government must foster, protect, and support this kind of projects for the civil community. Also, the government’s support for art market is important. A lot of artists live from sales and their survival depends the sales of private collections of museum collections. Buying a collection of the museum of the cities or of the state could be an example of solution, which will be an win-win situation for every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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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상황은 단순히 전염병의 창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절체절명의 위기감을 조성했고 비과학적 낭설에 근거한 다양한 혐오의 과정과 비대칭 정보 전달의 폐해 등 왜곡된 상황들을 발생시키고 있는 듯하다.

원인을 모르고 불안이 극심해지면 거짓 정보에 현혹되고, 두려움의 원인과 대상을 쫓게 된다. 그 두려움의 대상은 바로 ‘혐오’라는 내재된 폭력성으로 연결된다. 고도화로 문명화된 세상임에도 ‘야만’은 인간의 속성으로 분명 존재하는데, 두려움의 대상을 몰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해석들은 분명 자본과 권력에 의거한 한 사회의 문화적인 수준을 반영한다. 그 속에서 각 사회의 취약점이 모두 드러나는 것이다. 빈부격차, 세대갈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편견, 상식의 수준들. 오히려 팬데믹의 상황은 취약한 부분을 재점검해야 함을 맹렬히 요구하는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상황에 대한 주시, 역사적 성찰을 통해 근본적으로 지금 사회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혼란스럽지만 오히려 더 명확하게 보인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인식하지 않고 있었던 그 치부들은 우리 사회 표면으로 강력하게 드러났다. 인류 역사 속에서 14세기 흑사병이 휴머니즘적 철학과 르네상스로 이어졌던 인식의 전환기처럼, 우리의 생각과 습관, 관계에 대한 사고를 전환해야 하는 그 극점에 지금의 팬데믹의 상황이 놓여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사회, 그리고 팬데믹의 상황을 통해 진단하는 현재, ‘국경 폐쇄’는 또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신자유주의 체제 후, 우리에게 국경을 넘나든다는 것은 ‘자유로움’과 ‘발전과 확장’, ‘더 나은 삶’을 상징하는 듯했지만, 구조적으로 보자면 실상 산업 경제 체제의 가속으로 극대화된 자본주의를 일컫는 동일한 이름 ‘세계화’에 대한 우리의 반성적 감각이 너무 둔했던 것은 아닐까.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국경을 넘나드는 행보가 분명 자유로움과 연결되었고, 장소 접근에 대한 물리적 실현은 세계가 내 영역으로 확장되는 듯한 자신감을 주었다. 현재 국가 간 이동이 많이 어려워진 상황이고, ‘마스크’ 따위로 내 안전에 대한 간절함과 패배감을 경험하는 것이 일상인 요즘, 우리 모두 ‘세계화’라는 구조 속에서 부속일 수밖에 없었음을 매일매일 반증하며 살아가고 있다. 국가라는 경계, 그 경계 안에서만 제도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음도 실감한다. 그나마 그 경계와 제도에도 속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은 현재 자신의 현존에 어떤 두려움을 배가당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국제적인’, ‘세계적인’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정체 모를 어쩌면 환영일지도 모르는 ‘빛’을 쫓는 나방처럼, 혹은 자본이 모여있는 곳에 가치와 안전을 포기하고서라도 향할 수밖에 없는 전 지구적 현실도 어쩌면 우리가 모두 감내해왔던 것이지만, 정말 감내해야 하는 것인지 다시금 의문이 드는 것이다.


예술은 그간 극단화된 자본주의에 제동장치 혹은 조절장치 역할을 해왔다. 세상의 가치를 쓸모와 쓸모없음으로 이분화하여 인식하는 시대에 인식의 그물코를 더 촘촘하게 하고 비경제적 가치가 극단적인 자본주의가 낳는 폐해를 경감할 수 있다는 위안을 제공했던 것이다. 예술가들은 지금 현재를 이 시대를 어떻게 마주하고 있을까. 그리고 COVID-19 이후 예술가들의 활동 및 작품의 경향은 어떤 행보를 띄게 될까.

현재 모두가 겪고 있지만, 나날이 새로워 놀랄 지경이다. 분명 혼란스럽지만 더 명확해지는 무엇이 분명 있다. 예술가들 역시 대단히 예민한 감각으로 세계를 감각할 것임을 믿는다. ‘폐쇄’ 등 이동하는 몸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 개인의 사생활과 자유가 제약받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도권의 관리가 미흡했던 보호받지 못했던 영역들이 곳곳에서 관찰되고 또한 강력하게 혐오의 싹으로 발아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예술가의 삶 자체가 제도화된 루틴으로 움직여야 하는 삶에서 벗어나 있기도 하지만, 거리를 두고 상황을 관찰하고 직시하는 예술가들의 집중력에 감탄할 때가 많다. 그간 일상에 묻힌 우리로 하여금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과 보지 못했던 것들을 포착하여 다시금 삶을 재감각할 수 있도록 돕는 매개자인 것이다.

또한 예술은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직시하자, 삶을 공감하자는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사회적 갈등의 상황, 불합리한 현실에 마주한 창작활동들은 서로 상충하며 존재하고 상호 침투하는 관계망 속에서 우리 서로가 무관하지 않음을, 그리고 마음들을 정서적으로 어루만져왔다.

‘국제적인’의 모토를 띈 각종 비엔날레와 전시들이 곳곳에서 취소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아마도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우리가 COVID-19와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지 않고서는 예술 활동 역시 분명 생존과 직결된 사항에서 부차적인 것으로 몰리거나 또한 물리적 경계의 제약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이 시기 그리고 코로나 이후로 연속될 장면들을 대응해나가기 위해서 예술가 간 연대의식과 협력이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창작활동의 주제와 형식은 물론 실현 과정에도 공동의 방법적 모색이 필요할 것이다. 한편 물리적 경계로서 ‘국제적인’의 한계를 넘어 오히려 자기 주변, 지역, 공동체의 삶에 집중하는 리서치 작업들이 무엇보다 기대되는 때이기도 하다. 작품을 보여주는 전시 방식에 있어서도 지금까지 대체재로서 대면과 비대면의 방식을 선택해왔다면, 오히려 두 방식을 상호보완한 형태로 쇼케이스 형 퍼포먼스 워크숍 협업들이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느 시대든 어떤 어려움이든, 예술가들은 늘 앞서서 문제를 직시했고, 길을 찾아왔다. 예술가들은 현실적 어려움을 안고 삶의 구조와 인식을 전환해야 하는 과제를 짊어진 우리 모두에게 균형감을 잡아주는 ‘여전한 매개자’로서 굳건히 역할할 것이다.



More than simply an infectious disease, the pandemic created a sense of real crisis, the dimensions of which include the harmful effects of uneven communication and the development of prejudices fueled by unscientific rumor.

When anxiety intensifies with no knowledge as to its cause, people are led astray by false information and begin to pursue the cause and object of their fear. The object of their fear is linked to an inherent violence—none other than hate. Even in a highly civilized world, barbarity is clearly a part of human nature, and a society’s fears reflect its cultural level in accordance with capital and power. The vulnerabilities of a society are in this way revealed: the gap between rich and poor, generational conflict, prejudice against the underprivileged and minorities, and the standards of common sense. The circumstances of the pandemic demand and urgent reexamination of these vulnerable areas. Thus, by circumstantial observation and historical introspection, we are at a moment when our perception toward society must undergo a fundamental change. Things may be chaotic but they actually look clearer. Those embarrassments we knew about but weren’t sufficiently aware of are being exposed powerfully on the surface of our society. Just like the transitional period in human history which followed the Black Death of the 14th Century and precipitated humanism and the Renaissance, the current pandemic is a tipping point at which our thoughts, habits, and relationships must undergo a transition.


Seen through the lens of the pandemic, the “closing of borders” has become another topic of discussion. Although border crossings have come to symbolize ‘freedom’, ‘development and expansion’, and a ‘better life’ since the advent of neoliberalism, structurally perhaps our sensibilities have been dull to ‘globalism’—a term referring to a maximized form of capitalism as a result of an accelerated commercial economy.

Many thoughts have occurred to me while going through the present circumstances. The act of traversing borders is clearly connected with freedom, and the physical fulfillment of accessing different places gave confidence, making it appear as if the world was expanding toward my domain. In circumstances where movement between countries is difficult, and at a time when experiencing a sense of defeat and the longing for safety through something as trivial as a face mask is ordinary, we live our everyday lives proving the notion that we have no choice but to be components in the structure of ‘globalization’. We also realize we can only have institutional protection within the boundaries of a country. Do the numerous people unable to belong to even these boundaries and institutions experience fear double that of our own for their very existence? The meaning behind the words ‘international’ and ‘global’ occurred to me again. Like a moth drawn to an unidentified light which may even turn out to be a phantom, we persevered through a global reality in which we had no choice but to head toward the place where capital converged, even if it meant giving up on values and safety. Again, we question whether we truly had to endure such circumstances in the first place.


Hitherto, art has served as a break or a control against extreme capitalism. It provided a consolation which tightened the meshes of perception in a time when the values of the world were divided and perceived as useful or useless. It also consoled us by claiming non-economic values could reduce the harmful effects of extreme capitalism. How are artists encountering the present time, this era? Moreover, what will their activities and their works tend toward after COVID-19?

Although we all experience it, every novelty strikes us with awe. Without any doubt, there is something that makes things clearer despite the chaos. I have faith that artists will continue responding to the world with their exquisite senses. Bodily movement, human privacy and freedom are being restricted, and more than anything, unprotected domains where necessary systems are insufficient are being exposed, causing more resentment. Although the lives of artists are not the sort that must move in step with an institutionalized routine, I am still often struck by the focus of artists in squarely looking at a situation while keeping their distance. They are precisely the mediators who help us sense life again by capturing things we fail to perceive because we are absorbed in our everyday lives.

Furthermore, art casts before us a message of “Let’s nevertheless scrutinise and empathize with life.” Creative activities which come face to face with the circumstances of social conflict or unreasonable reality exist in contradiction to each other, and within a network of mutual infiltration. Art effectively caresses our hearts, persuading us that we are not irrelevant to each other.

The reality is that various international biennales and exhibitions have been cancelled. This will probably continue for the time being. When it comes to things directly connected with survival, artistic activities will inevitably be regarded as secondary or subjected to restrictions if there is no way to coexist with COVID-19. Hence, to counteract this time and the scenes that will successively follow it, it’s necessary to strengthen a spirit of solidarity and cooperation between artists. The topics and forms as well as the process of fulfilling creative activities will require a joint method of examination. Meanwhile, there is greater anticipation than ever before about research-based works which go beyond the limitations of internationalism to access a renewed focus on the immediate surroundings, region, and community. Whereas, in the past, works of art could only be either face-to-face or non-face-to-face in terms of their style of display, perhaps now different sorts of collaborations will emerge in a form that supplements these two styles.

Whatever the era, whatever the hardship, artists have always led the way in facing problems to find a path. They have firmly served as unchanging mediators who shoulder the task of converting the structure and perceptions of life, offering a sense of balance for all of us while embracing the hardships of reality.

+ CV more

팬데믹 상황은 단순히 전염병의 창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절체절명의 위기감을 조성했고 비과학적 낭설에 근거한 다양한 혐오의 과정과 비대칭 정보 전달의 폐해 등 왜곡된 상황들을 발생시키고 있는 듯하다.

원인을 모르고 불안이 극심해지면 거짓 정보에 현혹되고, 두려움의 원인과 대상을 쫓게 된다. 그 두려움의 대상은 바로 ‘혐오’라는 내재된 폭력성으로 연결된다. 고도화로 문명화된 세상임에도 ‘야만’은 인간의 속성으로 분명 존재하는데, 두려움의 대상을 몰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해석들은 분명 자본과 권력에 의거한 한 사회의 문화적인 수준을 반영한다. 그 속에서 각 사회의 취약점이 모두 드러나는 것이다. 빈부격차, 세대갈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편견, 상식의 수준들. 오히려 팬데믹의 상황은 취약한 부분을 재점검해야 함을 맹렬히 요구하는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상황에 대한 주시, 역사적 성찰을 통해 근본적으로 지금 사회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혼란스럽지만 오히려 더 명확하게 보인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인식하지 않고 있었던 그 치부들은 우리 사회 표면으로 강력하게 드러났다. 인류 역사 속에서 14세기 흑사병이 휴머니즘적 철학과 르네상스로 이어졌던 인식의 전환기처럼, 우리의 생각과 습관, 관계에 대한 사고를 전환해야 하는 그 극점에 지금의 팬데믹의 상황이 놓여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사회, 그리고 팬데믹의 상황을 통해 진단하는 현재, ‘국경 폐쇄’는 또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신자유주의 체제 후, 우리에게 국경을 넘나든다는 것은 ‘자유로움’과 ‘발전과 확장’, ‘더 나은 삶’을 상징하는 듯했지만, 구조적으로 보자면 실상 산업 경제 체제의 가속으로 극대화된 자본주의를 일컫는 동일한 이름 ‘세계화’에 대한 우리의 반성적 감각이 너무 둔했던 것은 아닐까.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국경을 넘나드는 행보가 분명 자유로움과 연결되었고, 장소 접근에 대한 물리적 실현은 세계가 내 영역으로 확장되는 듯한 자신감을 주었다. 현재 국가 간 이동이 많이 어려워진 상황이고, ‘마스크’ 따위로 내 안전에 대한 간절함과 패배감을 경험하는 것이 일상인 요즘, 우리 모두 ‘세계화’라는 구조 속에서 부속일 수밖에 없었음을 매일매일 반증하며 살아가고 있다. 국가라는 경계, 그 경계 안에서만 제도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음도 실감한다. 그나마 그 경계와 제도에도 속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은 현재 자신의 현존에 어떤 두려움을 배가당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국제적인’, ‘세계적인’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정체 모를 어쩌면 환영일지도 모르는 ‘빛’을 쫓는 나방처럼, 혹은 자본이 모여있는 곳에 가치와 안전을 포기하고서라도 향할 수밖에 없는 전 지구적 현실도 어쩌면 우리가 모두 감내해왔던 것이지만, 정말 감내해야 하는 것인지 다시금 의문이 드는 것이다.


예술은 그간 극단화된 자본주의에 제동장치 혹은 조절장치 역할을 해왔다. 세상의 가치를 쓸모와 쓸모없음으로 이분화하여 인식하는 시대에 인식의 그물코를 더 촘촘하게 하고 비경제적 가치가 극단적인 자본주의가 낳는 폐해를 경감할 수 있다는 위안을 제공했던 것이다. 예술가들은 지금 현재를 이 시대를 어떻게 마주하고 있을까. 그리고 COVID-19 이후 예술가들의 활동 및 작품의 경향은 어떤 행보를 띄게 될까.

현재 모두가 겪고 있지만, 나날이 새로워 놀랄 지경이다. 분명 혼란스럽지만 더 명확해지는 무엇이 분명 있다. 예술가들 역시 대단히 예민한 감각으로 세계를 감각할 것임을 믿는다. ‘폐쇄’ 등 이동하는 몸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 개인의 사생활과 자유가 제약받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도권의 관리가 미흡했던 보호받지 못했던 영역들이 곳곳에서 관찰되고 또한 강력하게 혐오의 싹으로 발아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예술가의 삶 자체가 제도화된 루틴으로 움직여야 하는 삶에서 벗어나 있기도 하지만, 거리를 두고 상황을 관찰하고 직시하는 예술가들의 집중력에 감탄할 때가 많다. 그간 일상에 묻힌 우리로 하여금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과 보지 못했던 것들을 포착하여 다시금 삶을 재감각할 수 있도록 돕는 매개자인 것이다.

또한 예술은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직시하자, 삶을 공감하자는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사회적 갈등의 상황, 불합리한 현실에 마주한 창작활동들은 서로 상충하며 존재하고 상호 침투하는 관계망 속에서 우리 서로가 무관하지 않음을, 그리고 마음들을 정서적으로 어루만져왔다.

‘국제적인’의 모토를 띈 각종 비엔날레와 전시들이 곳곳에서 취소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아마도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우리가 COVID-19와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지 않고서는 예술 활동 역시 분명 생존과 직결된 사항에서 부차적인 것으로 몰리거나 또한 물리적 경계의 제약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이 시기 그리고 코로나 이후로 연속될 장면들을 대응해나가기 위해서 예술가 간 연대의식과 협력이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창작활동의 주제와 형식은 물론 실현 과정에도 공동의 방법적 모색이 필요할 것이다. 한편 물리적 경계로서 ‘국제적인’의 한계를 넘어 오히려 자기 주변, 지역, 공동체의 삶에 집중하는 리서치 작업들이 무엇보다 기대되는 때이기도 하다. 작품을 보여주는 전시 방식에 있어서도 지금까지 대체재로서 대면과 비대면의 방식을 선택해왔다면, 오히려 두 방식을 상호보완한 형태로 쇼케이스 형 퍼포먼스 워크숍 협업들이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느 시대든 어떤 어려움이든, 예술가들은 늘 앞서서 문제를 직시했고, 길을 찾아왔다. 예술가들은 현실적 어려움을 안고 삶의 구조와 인식을 전환해야 하는 과제를 짊어진 우리 모두에게 균형감을 잡아주는 ‘여전한 매개자’로서 굳건히 역할할 것이다.



More than simply an infectious disease, the pandemic created a sense of real crisis, the dimensions of which include the harmful effects of uneven communication and the development of prejudices fueled by unscientific rumor.

When anxiety intensifies with no knowledge as to its cause, people are led astray by false information and begin to pursue the cause and object of their fear. The object of their fear is linked to an inherent violence—none other than hate. Even in a highly civilized world, barbarity is clearly a part of human nature, and a society’s fears reflect its cultural level in accordance with capital and power. The vulnerabilities of a society are in this way revealed: the gap between rich and poor, generational conflict, prejudice against the underprivileged and minorities, and the standards of common sense. The circumstances of the pandemic demand and urgent reexamination of these vulnerable areas. Thus, by circumstantial observation and historical introspection, we are at a moment when our perception toward society must undergo a fundamental change. Things may be chaotic but they actually look clearer. Those embarrassments we knew about but weren’t sufficiently aware of are being exposed powerfully on the surface of our society. Just like the transitional period in human history which followed the Black Death of the 14th Century and precipitated humanism and the Renaissance, the current pandemic is a tipping point at which our thoughts, habits, and relationships must undergo a transition.


Seen through the lens of the pandemic, the “closing of borders” has become another topic of discussion. Although border crossings have come to symbolize ‘freedom’, ‘development and expansion’, and a ‘better life’ since the advent of neoliberalism, structurally perhaps our sensibilities have been dull to ‘globalism’—a term referring to a maximized form of capitalism as a result of an accelerated commercial economy.

Many thoughts have occurred to me while going through the present circumstances. The act of traversing borders is clearly connected with freedom, and the physical fulfillment of accessing different places gave confidence, making it appear as if the world was expanding toward my domain. In circumstances where movement between countries is difficult, and at a time when experiencing a sense of defeat and the longing for safety through something as trivial as a face mask is ordinary, we live our everyday lives proving the notion that we have no choice but to be components in the structure of ‘globalization’. We also realize we can only have institutional protection within the boundaries of a country. Do the numerous people unable to belong to even these boundaries and institutions experience fear double that of our own for their very existence? The meaning behind the words ‘international’ and ‘global’ occurred to me again. Like a moth drawn to an unidentified light which may even turn out to be a phantom, we persevered through a global reality in which we had no choice but to head toward the place where capital converged, even if it meant giving up on values and safety. Again, we question whether we truly had to endure such circumstances in the first place.


Hitherto, art has served as a break or a control against extreme capitalism. It provided a consolation which tightened the meshes of perception in a time when the values of the world were divided and perceived as useful or useless. It also consoled us by claiming non-economic values could reduce the harmful effects of extreme capitalism. How are artists encountering the present time, this era? Moreover, what will their activities and their works tend toward after COVID-19?

Although we all experience it, every novelty strikes us with awe. Without any doubt, there is something that makes things clearer despite the chaos. I have faith that artists will continue responding to the world with their exquisite senses. Bodily movement, human privacy and freedom are being restricted, and more than anything, unprotected domains where necessary systems are insufficient are being exposed, causing more resentment. Although the lives of artists are not the sort that must move in step with an institutionalized routine, I am still often struck by the focus of artists in squarely looking at a situation while keeping their distance. They are precisely the mediators who help us sense life again by capturing things we fail to perceive because we are absorbed in our everyday lives.

Furthermore, art casts before us a message of “Let’s nevertheless scrutinise and empathize with life.” Creative activities which come face to face with the circumstances of social conflict or unreasonable reality exist in contradiction to each other, and within a network of mutual infiltration. Art effectively caresses our hearts, persuading us that we are not irrelevant to each other.

The reality is that various international biennales and exhibitions have been cancelled. This will probably continue for the time being. When it comes to things directly connected with survival, artistic activities will inevitably be regarded as secondary or subjected to restrictions if there is no way to coexist with COVID-19. Hence, to counteract this time and the scenes that will successively follow it, it’s necessary to strengthen a spirit of solidarity and cooperation between artists. The topics and forms as well as the process of fulfilling creative activities will require a joint method of examination. Meanwhile, there is greater anticipation than ever before about research-based works which go beyond the limitations of internationalism to access a renewed focus on the immediate surroundings, region, and community. Whereas, in the past, works of art could only be either face-to-face or non-face-to-face in terms of their style of display, perhaps now different sorts of collaborations will emerge in a form that supplements these two styles.

Whatever the era, whatever the hardship, artists have always led the way in facing problems to find a path. They have firmly served as unchanging mediators who shoulder the task of converting the structure and perceptions of life, offering a sense of balance for all of us while embracing the hardships of reality.

+ CV more

DAY 07     2020.10.09 10 GLOBAL CURATORS

DAY 07  2020.10.09 10 GLOBAL CURATORS

MIT 리스트 비쥬얼 아트센터 큐레이터
Curator at MIT List Visual Arts Center

Q. 팬데믹 시대에 가장 큰 문제는 물리적 연결고리가 끊어진 것이다. 문화예술이라는 것이 국경을 초월하고 경계를 넘어서 사람들이 서로 영감을 주고받으며 연결되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 현재 이 팬데믹 사태가 초래한 물리적 단절시대에는 굉장히 창조적인 새로운 형태의 협업이 필요할 것 같다. 어떤 협업이 필요할 것인지?

예술계 내에서 협력에 대한 물음이 반드시 새로운 것만은 아니다. 뒤샹이 관객이 작품을 완성한다는 (이 말은 관객이 없이 예술 작품은 완전한 예술 작품이 되지 못하거나 완성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유명한 말을 했다면, 협력은 언제나 그래왔듯 예술의 본질이다. 하지만 역사 속 현 시점에서, 나는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협력이 예술계 안에서의 협력이 아닌 실제 삶 안에서 즉, 지역사회와 도시 안에서의 협력이라고 믿는다.

미국 정부는 여러 기업들과 대형 비즈니스에 대한 구제 금융 지원을 하고 있지만, 정작 직장을 잃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 지속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COVID로 심각한 상태에 빠졌던 사람들은 수십만 달러의 병원비를 떠안게 됐다. 수입이 없는 사람들이 이제 자원봉사자들로부터 어떤 도움이든 받기 위해 식량 은행 앞에 줄을 서고 있다. 정부 지원은 거의 없으며 많은 사람들은 정부의 도움이 사회주의 방식이고, 가장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지원하려고 자원을 분배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잘못됐다거나 의심스런 점이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

내 입장에서 보건데, 미국에서 오늘 날 가장 적절하고 긴급하게 느껴지는 협력은 타인을 일으켜 세우고 나눔을 촉진하는 ‘상호 협력(부조)’이다. 미국 전역에 걸쳐, 수천 명의 사람들이 상호 협력 그룹을 형성하고, 주로 자신들의 지역사회 내에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나 식량을 살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식량을 제공한다. 뉴욕, 보스턴, 시카고, 로스엔젤레스 같은 주요 도시들 전역에서, 사람들은 거리에 냉장고들을 설치함으로써, 식량이 있는 사람들은 냉장고에 식량을 넣을 수 있고, 식량이 필요한 사람들은 식량을 가져갈 수 있게 하였다. 몇몇 장소를 보면, 도시 지역 내 카페나 골목 상점 전체가 식량 선반이 되어 왔다. 일자리를 잃었거나 소득이 불안정한 예술가들과 예술 작업자들이 서로를 위한 모금 조직을 결성 했을 뿐 아니라, 흑인의 삶과 기타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운동을 지지하고, 노예제 폐지 및 경찰 개혁에 관해 일하는 조직들도 지원했다. 예술가들은 미국을 넘어 베이루트에서의 대규모 폭발 같은 주요 위기들 혹은 Tate 미술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파업 같은 노동 투쟁을 돕기 위한 상호 협동도 조직화해 왔다. 현재 정치적 에너지와 상호 지원은 놀라운 수준에 달했고, 지금 당장 가장 적절하고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협력이다.


Q. 점차 모든 것들이 디지털로 바뀌면서 비대면의 형식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이는 즉 예술의 비물질성이 가속화되는 것이라고 본다. 이에 대응하는 디지털 전략은 어떤 것이 있을지?

개인적으로, 나는 예술이 어떤 비물질적인 디지털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디지털 예술과 인터넷 기반의 예술은 언제나 특정 역사와 존재할 만한 이유를 지녀왔으며, 나는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혹은 그 밖의 소셜 미디어 모드에서 지속되는 시각 문화 안에 엔터테인먼트의 잠재성이 풍부하다고 보지만 나는 차라리 인간의 경험의 디지털화 증진을 선호할지언정, 예술 및 예술 경험의 디지털화의 증진에는 관심이 없다. 물론 기술을 보유하는 것은 특권이지만 여러분은 선택이 가능하다면 언제나 친구나 가족과 영상 통과를 하고 싶은가 아니면 하나의 공간을 함께 공유하고 걸으며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고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싶은가? 나는 예술 경험의 디지털화를 지향하는 이런 변화에 맞설 최상의 전략은 디지털화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사람이 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시각 예술 작품에 관해 생각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 작품들이 디지털 형태로 동일하게 효과적이고 기억에 남는 경험을 하게 해줄까? 그 예술 작품이 스크린에서도 같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가 스크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지금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공간 주변을 걸을 수 없고, 조각품의 표면이나 물질성과 조우할 수 없으며, 어떤 영상 설치물의 요란한 소리에 심취하거나 우리가 어떤 회화 주변을 이동할 때 빛이 그 회화에 다른 식으로 조명을 비추는 방식을 볼 수 없고, 그 공간을 살아있는 공연자와 공유할 수 없다. 우리의 스크린은 우리를 위해 많은 것을 하도록 만들어졌지만 나는 그것들이 사진 기록(문서화)을 통해 이미 하고 있는 역할 이상으로, 예술 경험의 대리인이나 주최자(host)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이와 동시에, 나는 디지털 및 온라인 교육 혹은 미국에서 말하는 ‘원격 학습’으로 전환이 예술 교육의 민주화 및 예술 교육에 대한 접근성 증진을 위한 놀라운 잠재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학생들이 세미나실 테이블 주변에 모이게 하는 게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예술 학교가 제공할 수 있는 공동체 및 연습실 공간 경험을 대체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보지만, 우리는 미국의 여러 예술 학교 졸업생이 심각한 빚에 시달리게 하는(학생들은 2년제 MFA 학위를 엘리트 민간 대학에서 딸 수 있고 졸업 시 100,000 달러의 빚을 지게 된다.) 민영화된 교육의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 빚은 학생들이 평생 동안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할 문제이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인한 원격 학습으로의 전환 덕분에 학생들은 (말하자면, 그들이 중산층이나 부유한 계층이 아닌 경우) 자신들의 대학 경험에 관해 진정으로 비판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그들이 빚을 지게 하지 않는 대안을 구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이 유명 브랜드 교육의 가치를 재고하고 역사적으로 현대 예술계와 예술 시장에 대한 문지기였던 제도들에 이의를 제기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예술은 비물질적이게 될 수 없지만 교육과 지식은 비물질적이게 될 것이다. 예술 분야 학생들은 수십만 달러를 지불하지 않고 철학, 이론, 예술 역사 및 현대 시각 문화 및 미디어 이론을 접할 수 있다. 나를 정말로 흥분시키는 한 가지 기획은 스스로 ‘디지털에 기반하고 가상을 우선시’한다고 여기는 다크 스터디 Dark Study (darkstudy.net)이다. Nora Khan, Caitlin Cherry, Nicole Maloof가 주도하는 다크 스터디는 “오늘 날 창의적 예술를 추구할때 필연적으로 따르는 위험, 불확실함, 실패를 인정하며” “고등 교육을 지지하지 않는 학생, 신자유주의의 흐름에 뒤처진 학생들을 위한 피난처”를 제공하려 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예술 학교는 모든 MFA 졸업생에게 광범위하게 성공적인 예술 경력을 보장하지 않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물론 학생들이 등록한 후 막대한 빚을 부담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이런 희망이나 전망이다. 나는 그들의 실험적인 프로그램의 첫 1년을 추적할 계획에 들떠있으며 사회적 시스템과 역사적 불평등을 고려하고 새로운 종류의 해방을 모색하는 즉, 학업적 문지기들과 교육의 신자유주의적 민영화를 넘어 일종의 지식 공유를 통해 자원 분배를 중시하는 새로운 가상의 교육 포럼에 대한 그들의 요청에 고무되고 있다.



Q. The biggest issue in the pandemic era is the loss of physical links. On the other side, culture and art have the power to transcend and cross borders, connect and inspire people. In this era of disconnection, it seems to be required that we need a new creative form of collaboration. What sort of collaboration will you need?

The question of collaboration within art is not necessarily a new one. If Duchamp famously said that the viewer completes the work – meaning that an art work does not have a viewer is not fully an art work, or is not yet finished – then collaboration is as essential to art as it always has been. But at this point in time, and in history, I believe the collaboration we need most is not in the art world, but in real life: in our communities and cities.

In the United States, the government has chosen to bail out corporations and big businesses, but countless individuals who have lost their jobs have been left without continued support. People who have been severely sick with Covid are left with hospital bills in the hundreds of thousands of dollars. People who are without income are now lining up for food banks to receive any assistance from volunteers. There is little help from the government and too many people have been misled to think that government help is socialism, that there is something inherently wrong or dubious about distributing resources in a way that supports those who are most in need.

The collaboration that feels most relevant and urgent today, speaking from my location in the United States, is “mutual aid” that lifts up others and promotes sharing. Throughout the US, thousands of people have formed mutual aid groups – often bringing food to at-risk people in their communities, or those who cannot afford to buy food. Throughout major cities like New York, Boston, Chicago, and Los Angeles, people have set up refrigerators on the street, so that people who have food can leave it, and those who need it, can take it. In some places, entire cafes or corner stores in urban areas have become food shelves. Artists and art workers who have lost work or who are income insecure have organized fundraisers for each other, but also to support the movement for Black lives and other marginalized people, and to support organizations working toward abolition and police reform. Beyond the US, artists have organized mutual aid to help major crises, such as the mass explosion in Beirut, or labor battle, such as the strike by workers at the Tate Museums. We are in a moment of incredible political energy and mutual support and this is the collaboration that is most relevant, and most needed, right now.


Q. Everything is gradually changing to digital as it is turning into a form of “untact”, which means accelerating of the immateriality of art. What would be a digital strategy to face this change?

Personally, I am not in favor of art becoming any more digital immaterial. Digital art and internet-based art has always had a specific history and reason for existing, and I believe that there is rich potential for entertainment in visual culture that lives on Tiktok or Instagram or other modes of social media, but I am not interested in the increased digitization of art and art experiences any more than I would favor increased digitization of human experiences. Yes, it’s a privilege to have the technology, but given the choice, would you want to always have video calls with friends and family, or do you want to share a space together, walk and talk in person, eat a meal together? I think the best strategy to face this change toward digitization of art experiences is to resist it. I would encourage everyone to think about the work of visual art that has the greatest impact on them. Would they have been able to have that same impactful and memorable experience in a digital form? Could that artwork do the same thing on a screen? Probably not. And even less likely now that we spend more time than ever with our screens. We cannot walk around a space, we cannot encounter the surface and materiality of a sculpture, we cannot be immersed in the rumbling sound of a video installation, or see the way light illuminates a painting differently as we move in relation to it, we cannot share space with live performers. Our screens are made to do many things for us, but I don’t believe they can serve as surrogates or hosts of art experiences any more than they already do through photo documentation.

At the same time, I think a shift to digital and online education, or “distance learning” as it has been called in the US, offers exciting potential for democratizing art education and making it more accessible. While I do think there is value in having students gathered around a seminar table, and nothing can replace the experience of studio space and community that an art school can offer, we have a serious problem in the US of a privatized education system that leaves many art school graduates in incredible debt – students can earn a two-year MFA degree an elite private university and have $100,000 in debt at their graduation. This is debt that they live with for a lifetime and is a problem. Because of the pandemic, however, the shift toward distance learning is forcing students to really think critically about their university experience and seek alternatives that are not going to leave them in debt – that is, if they are not upper-middle class or wealthy. I think there is a lot of potential in this moment to reconsider the value of a name-brand education, and to challenge the institutions that have historically been gate-keepers for the contemporary art world and art market.

Art cannot be immaterial, but education and knowledge can be. Art students can engage with philosophy, theory, art history, and with contemporary visual culture and media theory without having to spend a hundred thousand dollars. One initiative that really excites me is Dark Study (darkstudy.net) which considers itself “digitally-rooted and virtual-first.” Dark Study, which is led by Nora Khan, Caitlin Cherry, and Nicole Maloof, “acknowledges the risk, precarity, and failures inherent to pursuit of a creative practice today” and seeks to offer “refuge for students dealing with the untenability of higher education and the fallout of neoliberalism.” In other words, they acknowledge that art school does not guarantee a wildly successful art career to every MFA graduate. But of course this is the hope and promise that will compel a student to enroll and assume such massive debt. I am excited to follow the first year of their experimental program and am inspired by their call to create a new virtual educational forum that centers resource distribution through a kind of knowledge-sharing that takes into account social systems and historic inequities, and that seeks a new kind of liberation—pushing beyond academic gatekeepers and the neoliberal privatization of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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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KOREAN CURATORS

DAY 07  2020.10.09 10 KOREAN CURATORS

독립 큐레이터
Independent Curator

Q. 팬데믹 시대에 가장 큰 문제는 물리적 연결고리가 끊어진 것이다. 문화예술이라는 것이 국경을 초월하고 경계를 넘어서 사람들이 서로 영감을 주고받으며 연결되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 현재 이 팬데믹 사태가 초래한 물리적 단절시대에는 굉장히 창조적인 새로운 형태의 협업이 필요할 것 같다. 어떤 협업이 필요할 것인지?

예술계 내에서 협력에 대한 물음이 반드시 새로운 것만은 아니다. 뒤샹이 관객이 작품을 완성한다는 (이 말은 관객이 없이 예술 작품은 완전한 예술 작품이 되지 못하거나 완성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유명한 말을 했다면, 협력은 언제나 그래왔듯 예술의 본질이다. 하지만 역사 속 현 시점에서, 나는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협력이 예술계 안에서의 협력이 아닌 실제 삶 안에서 즉, 지역사회와 도시 안에서의 협력이라고 믿는다.

미국 정부는 여러 기업들과 대형 비즈니스에 대한 구제 금융 지원을 하고 있지만, 정작 직장을 잃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 지속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COVID로 심각한 상태에 빠졌던 사람들은 수십만 달러의 병원비를 떠안게 됐다. 수입이 없는 사람들이 이제 자원봉사자들로부터 어떤 도움이든 받기 위해 식량 은행 앞에 줄을 서고 있다. 정부 지원은 거의 없으며 많은 사람들은 정부의 도움이 사회주의 방식이고, 가장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지원하려고 자원을 분배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잘못됐다거나 의심스런 점이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

내 입장에서 보건데, 미국에서 오늘 날 가장 적절하고 긴급하게 느껴지는 협력은 타인을 일으켜 세우고 나눔을 촉진하는 ‘상호 협력(부조)’이다. 미국 전역에 걸쳐, 수천 명의 사람들이 상호 협력 그룹을 형성하고, 주로 자신들의 지역사회 내에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나 식량을 살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식량을 제공한다. 뉴욕, 보스턴, 시카고, 로스엔젤레스 같은 주요 도시들 전역에서, 사람들은 거리에 냉장고들을 설치함으로써, 식량이 있는 사람들은 냉장고에 식량을 넣을 수 있고, 식량이 필요한 사람들은 식량을 가져갈 수 있게 하였다. 몇몇 장소를 보면, 도시 지역 내 카페나 골목 상점 전체가 식량 선반이 되어 왔다. 일자리를 잃었거나 소득이 불안정한 예술가들과 예술 작업자들이 서로를 위한 모금 조직을 결성 했을 뿐 아니라, 흑인의 삶과 기타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운동을 지지하고, 노예제 폐지 및 경찰 개혁에 관해 일하는 조직들도 지원했다. 예술가들은 미국을 넘어 베이루트에서의 대규모 폭발 같은 주요 위기들 혹은 Tate 미술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파업 같은 노동 투쟁을 돕기 위한 상호 협동도 조직화해 왔다. 현재 정치적 에너지와 상호 지원은 놀라운 수준에 달했고, 지금 당장 가장 적절하고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협력이다.


Q. 점차 모든 것들이 디지털로 바뀌면서 비대면의 형식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이는 즉 예술의 비물질성이 가속화되는 것이라고 본다. 이에 대응하는 디지털 전략은 어떤 것이 있을지?

개인적으로, 나는 예술이 어떤 비물질적인 디지털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디지털 예술과 인터넷 기반의 예술은 언제나 특정 역사와 존재할 만한 이유를 지녀왔으며, 나는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혹은 그 밖의 소셜 미디어 모드에서 지속되는 시각 문화 안에 엔터테인먼트의 잠재성이 풍부하다고 보지만 나는 차라리 인간의 경험의 디지털화 증진을 선호할지언정, 예술 및 예술 경험의 디지털화의 증진에는 관심이 없다. 물론 기술을 보유하는 것은 특권이지만 여러분은 선택이 가능하다면 언제나 친구나 가족과 영상 통과를 하고 싶은가 아니면 하나의 공간을 함께 공유하고 걸으며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고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싶은가? 나는 예술 경험의 디지털화를 지향하는 이런 변화에 맞설 최상의 전략은 디지털화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사람이 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시각 예술 작품에 관해 생각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 작품들이 디지털 형태로 동일하게 효과적이고 기억에 남는 경험을 하게 해줄까? 그 예술 작품이 스크린에서도 같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가 스크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지금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공간 주변을 걸을 수 없고, 조각품의 표면이나 물질성과 조우할 수 없으며, 어떤 영상 설치물의 요란한 소리에 심취하거나 우리가 어떤 회화 주변을 이동할 때 빛이 그 회화에 다른 식으로 조명을 비추는 방식을 볼 수 없고, 그 공간을 살아있는 공연자와 공유할 수 없다. 우리의 스크린은 우리를 위해 많은 것을 하도록 만들어졌지만 나는 그것들이 사진 기록(문서화)을 통해 이미 하고 있는 역할 이상으로, 예술 경험의 대리인이나 주최자(host)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이와 동시에, 나는 디지털 및 온라인 교육 혹은 미국에서 말하는 ‘원격 학습’으로 전환이 예술 교육의 민주화 및 예술 교육에 대한 접근성 증진을 위한 놀라운 잠재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학생들이 세미나실 테이블 주변에 모이게 하는 게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예술 학교가 제공할 수 있는 공동체 및 연습실 공간 경험을 대체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보지만, 우리는 미국의 여러 예술 학교 졸업생이 심각한 빚에 시달리게 하는(학생들은 2년제 MFA 학위를 엘리트 민간 대학에서 딸 수 있고 졸업 시 100,000 달러의 빚을 지게 된다.) 민영화된 교육의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 빚은 학생들이 평생 동안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할 문제이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인한 원격 학습으로의 전환 덕분에 학생들은 (말하자면, 그들이 중산층이나 부유한 계층이 아닌 경우) 자신들의 대학 경험에 관해 진정으로 비판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그들이 빚을 지게 하지 않는 대안을 구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이 유명 브랜드 교육의 가치를 재고하고 역사적으로 현대 예술계와 예술 시장에 대한 문지기였던 제도들에 이의를 제기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예술은 비물질적이게 될 수 없지만 교육과 지식은 비물질적이게 될 것이다. 예술 분야 학생들은 수십만 달러를 지불하지 않고 철학, 이론, 예술 역사 및 현대 시각 문화 및 미디어 이론을 접할 수 있다. 나를 정말로 흥분시키는 한 가지 기획은 스스로 ‘디지털에 기반하고 가상을 우선시’한다고 여기는 다크 스터디 Dark Study (darkstudy.net)이다. Nora Khan, Caitlin Cherry, Nicole Maloof가 주도하는 다크 스터디는 “오늘 날 창의적 예술를 추구할때 필연적으로 따르는 위험, 불확실함, 실패를 인정하며” “고등 교육을 지지하지 않는 학생, 신자유주의의 흐름에 뒤처진 학생들을 위한 피난처”를 제공하려 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예술 학교는 모든 MFA 졸업생에게 광범위하게 성공적인 예술 경력을 보장하지 않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물론 학생들이 등록한 후 막대한 빚을 부담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이런 희망이나 전망이다. 나는 그들의 실험적인 프로그램의 첫 1년을 추적할 계획에 들떠있으며 사회적 시스템과 역사적 불평등을 고려하고 새로운 종류의 해방을 모색하는 즉, 학업적 문지기들과 교육의 신자유주의적 민영화를 넘어 일종의 지식 공유를 통해 자원 분배를 중시하는 새로운 가상의 교육 포럼에 대한 그들의 요청에 고무되고 있다.



Q. The biggest issue in the pandemic era is the loss of physical links. On the other side, culture and art have the power to transcend and cross borders, connect and inspire people. In this era of disconnection, it seems to be required that we need a new creative form of collaboration. What sort of collaboration will you need?

The question of collaboration within art is not necessarily a new one. If Duchamp famously said that the viewer completes the work – meaning that an art work does not have a viewer is not fully an art work, or is not yet finished – then collaboration is as essential to art as it always has been. But at this point in time, and in history, I believe the collaboration we need most is not in the art world, but in real life: in our communities and cities.

In the United States, the government has chosen to bail out corporations and big businesses, but countless individuals who have lost their jobs have been left without continued support. People who have been severely sick with Covid are left with hospital bills in the hundreds of thousands of dollars. People who are without income are now lining up for food banks to receive any assistance from volunteers. There is little help from the government and too many people have been misled to think that government help is socialism, that there is something inherently wrong or dubious about distributing resources in a way that supports those who are most in need.

The collaboration that feels most relevant and urgent today, speaking from my location in the United States, is “mutual aid” that lifts up others and promotes sharing. Throughout the US, thousands of people have formed mutual aid groups – often bringing food to at-risk people in their communities, or those who cannot afford to buy food. Throughout major cities like New York, Boston, Chicago, and Los Angeles, people have set up refrigerators on the street, so that people who have food can leave it, and those who need it, can take it. In some places, entire cafes or corner stores in urban areas have become food shelves. Artists and art workers who have lost work or who are income insecure have organized fundraisers for each other, but also to support the movement for Black lives and other marginalized people, and to support organizations working toward abolition and police reform. Beyond the US, artists have organized mutual aid to help major crises, such as the mass explosion in Beirut, or labor battle, such as the strike by workers at the Tate Museums. We are in a moment of incredible political energy and mutual support and this is the collaboration that is most relevant, and most needed, right now.


Q. Everything is gradually changing to digital as it is turning into a form of “untact”, which means accelerating of the immateriality of art. What would be a digital strategy to face this change?

Personally, I am not in favor of art becoming any more digital immaterial. Digital art and internet-based art has always had a specific history and reason for existing, and I believe that there is rich potential for entertainment in visual culture that lives on Tiktok or Instagram or other modes of social media, but I am not interested in the increased digitization of art and art experiences any more than I would favor increased digitization of human experiences. Yes, it’s a privilege to have the technology, but given the choice, would you want to always have video calls with friends and family, or do you want to share a space together, walk and talk in person, eat a meal together? I think the best strategy to face this change toward digitization of art experiences is to resist it. I would encourage everyone to think about the work of visual art that has the greatest impact on them. Would they have been able to have that same impactful and memorable experience in a digital form? Could that artwork do the same thing on a screen? Probably not. And even less likely now that we spend more time than ever with our screens. We cannot walk around a space, we cannot encounter the surface and materiality of a sculpture, we cannot be immersed in the rumbling sound of a video installation, or see the way light illuminates a painting differently as we move in relation to it, we cannot share space with live performers. Our screens are made to do many things for us, but I don’t believe they can serve as surrogates or hosts of art experiences any more than they already do through photo documentation.

At the same time, I think a shift to digital and online education, or “distance learning” as it has been called in the US, offers exciting potential for democratizing art education and making it more accessible. While I do think there is value in having students gathered around a seminar table, and nothing can replace the experience of studio space and community that an art school can offer, we have a serious problem in the US of a privatized education system that leaves many art school graduates in incredible debt – students can earn a two-year MFA degree an elite private university and have $100,000 in debt at their graduation. This is debt that they live with for a lifetime and is a problem. Because of the pandemic, however, the shift toward distance learning is forcing students to really think critically about their university experience and seek alternatives that are not going to leave them in debt – that is, if they are not upper-middle class or wealthy. I think there is a lot of potential in this moment to reconsider the value of a name-brand education, and to challenge the institutions that have historically been gate-keepers for the contemporary art world and art market.

Art cannot be immaterial, but education and knowledge can be. Art students can engage with philosophy, theory, art history, and with contemporary visual culture and media theory without having to spend a hundred thousand dollars. One initiative that really excites me is Dark Study (darkstudy.net) which considers itself “digitally-rooted and virtual-first.” Dark Study, which is led by Nora Khan, Caitlin Cherry, and Nicole Maloof, “acknowledges the risk, precarity, and failures inherent to pursuit of a creative practice today” and seeks to offer “refuge for students dealing with the untenability of higher education and the fallout of neoliberalism.” In other words, they acknowledge that art school does not guarantee a wildly successful art career to every MFA graduate. But of course this is the hope and promise that will compel a student to enroll and assume such massive debt. I am excited to follow the first year of their experimental program and am inspired by their call to create a new virtual educational forum that centers resource distribution through a kind of knowledge-sharing that takes into account social systems and historic inequities, and that seeks a new kind of liberation—pushing beyond academic gatekeepers and the neoliberal privatization of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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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after Pandemic

팬데믹으로 에뉴얼 혹은 바이에뉴얼로 열렸던 미술계의 굵직한 행사들, 예컨대 국제 주요 아트페어나 크고 작은 비엔날레 행사들이 내년을 기약하거나 무기한으로 미뤄졌다. 자가 격리와 운송시스템, 그 외에 업무 시스템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별로 진행되어야 하고 물리적으로 오고 가는 일정들은 분명, 이전과 똑같아 질 수 없으며 여러 제약이 따를 것이다. 거의 첫 타자로 분위기에 맞는 시도를 해 본 협업은 ‘Art Basel’에서 온라인 뷰잉 룸이라는 것이었는데, 참여 갤러리들이 프라이빗 뷰잉과 전체 공개의 일정을 정하여 온라인을 통해 리프리젠트하는 작가들의 작업을 제공하는 형태였다. 사실, 협업이라고 하기에 너무나 소극적인 방식이라 생각하며 팬데믹에 맞는 창조적이고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은 아니었다고 본다. 국경을 초월한 작가들과 관객들로 이루어진 주요 미술관과 상업 갤러리는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영상 어플리케이션과 인스타그램 라이브, 유튜브 라이브와 같은 플랫폼을 이용하여 컬렉션의 소개, 작가의 스튜디오 라이브, 기획자와 작가의 토크 등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다. 이것 또한 ‘contact’에서 ‘untact’로 옮겨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만 작동하지 새로운 형태의 협업이라고 보기에 어렵다. 생각보다 미술은 다른 분야보다 더욱 폐쇄적이었다는 생각이 들며, 빠르게 변화하는 분위기를 따라가는 속도가 느리고 새롭지 않다. 앞으로 예측한 것보다 더 긴 호흡으로 코로나와 함께 가야 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미술계에서의 협업은 비물리적인 소통을 위한 것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전시와 페어, 비엔날레에 대해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온라인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전보다 더 많은 관람객들에게 노출될 것이며, 작가-기획자-비평가-갤러리스트의 협업이 더 적극적인 결과물로 구현되어야 설득력 있지 않을까 싶다.

언텍트이니만큼 디지털 플랫폼은 필수불가결한 수단과 전략으로 자리 잡혔다. 예술 작품과 전시라는 것은 실제 물리적인 공간에 가서 직접 봐야만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포스트-코로나 이후에도 역시나 이 부분은 중요하다. 하지만 시대가 순식간에 변하니 만큼 거리두기 환경에 적응하려면, 미술이라는 개념이 더 과감하게 디지털 환경에 열려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작가와 기획자, 주최하는 공간 모두에게 해당된다. 예컨대, 현재 ‘BGA(Background Artworks, 백그라운드 아트웍스)’ 온라인 구독 어플리케이션 플랫폼을 공동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미술을 감상하고 읽어내는 태도에 대해 완전히 다른 접근을 하려는데 있다. 그 누구도 앞으로의 4차 산업이 배달, 배송 시스템일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에는 구독 시대라는 것도 포함된다. 비물질적인 구독의 형태가 다양한 분야에서 확장되고 있다. 그렇다면 동시대 미술 또한 관객에게 ‘전달’되어야 하는 측면에서 포스트-코로나 이후의 “매개체”는 달라져야 한다. 결국 미술이라는 것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감상자인 관객들에게 어떤 형태로 매개되어져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앞으로의 디지털 전략에서 필요한 요소이지 않을까 싶다. 분명, 작가들은 이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거리두기와 비물리적인 환경에 맞는 작업에 대해 고민하게 될 것이다.

국가-사회가 위기에 처했을때, 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먼저 셧다운되고 예산이 삭감되는 것은 문화예술 분야일 것이다. 팬데믹 시대에 놓인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은 작가들을 포함하여 독립 기획자들에게도 작업 활동을 최소한으로 영위할 수 있도록 보호 장치로써의 제도가 필요하다.



ART after the Pandemic

The weighty annual and biannual events of the art world—namely, the major international art fairs and the various biennale events, big and small—have been either postponed until next year or delayed indefinitely. Schedules which require presence in different countries and involve physically coming and going can’t be the same as before, and are subject to various restrictions in a situation where people are under self-quarantine, and transportation systems as well as any other system for conducting business cannot be smoothly administered. One of the first collaborations attempted in accordance with such a mood was an online viewing room at ‘Art Basel’, which took the form of participating galleries providing works by artists who were represented online. Honestly, it wasn’t a new type of creative platform befitting the pandemic considering how its style was too passive to be called a collaboration. Major art galleries and commercial galleries with artists and audiences transcending borders were able to share in real-time introductions to their collections, live studio events by artists, and talks with planners and artists by using platforms such as easily-accessible video applications, Instagram live and YouTube live. As such attempts only function as a means to move from ‘contact’ to ‘untact’, it is difficult to view them as a new form of collaboration. Art felt much more closed off in comparison with other fields than I expected, and the speed at which it follows the rapidly changing mood is slow and aged. If we must take a much deeper breath and keep company with the Coronavirus longer than we anticipated, shouldn’t the collaboration we require from the art world take on a completely new form of exhibit, fair, and biennale than that which is just for nonphysical communication? Perhaps collaborations will be exposed to many more audiences than before when there’s no choice but to conduct them online, and collaborations between artists, planners, critics, and gallerists will only be persuasive when they happen with much more actively-engaged results.

Digital platforms, as much as they are ‘untact’, have taken root through indispensable methods and strategies. Works and exhibitions of art communicate and offer much more in terms of understanding when they are directly viewed in actual physical spaces. This will be an important topic even post-coronavirus. Nevertheless, because the times have changed in an instant, in order to adapt to an environment of distancing, art must open itself much more radically to the digital realm. This applies to everyone including artists, planners, and the spaces hosting the events. For instance, I’m currently co-managing an online subscription-based application platform called BGA (Background Artworks) which aims at taking a completely different approach in terms of an attitude for appreciating and reading art. No one thought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would consist of delivery and shipment systems. This also includes the era of subscriptions. A form of nonmaterial subscription is expanding in a variety of fields. Then, “mediums” post Coronavirus must change in that contemporary art must also be ‘delivered’ to audiences. Ultimately, in order for art to properly function, I believe an element necessary to digital strategy is contemplating in what form art will be mediated to audiences who are the appreciators. Clearly, if such a mood is sustained, artists will begin to seriously consider making works that befit distancing and nonphysical environments.

When nations and societies encounter crises, the first area to shut down and have their budgets cut, regardless of the era, is arts and culture. The government’s cultural policy during a pandemic requires institutions that function as a protective device allowing independent planners—including artists—to carry on with the bare minimum of their activ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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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after Pandemic

팬데믹으로 에뉴얼 혹은 바이에뉴얼로 열렸던 미술계의 굵직한 행사들, 예컨대 국제 주요 아트페어나 크고 작은 비엔날레 행사들이 내년을 기약하거나 무기한으로 미뤄졌다. 자가 격리와 운송시스템, 그 외에 업무 시스템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별로 진행되어야 하고 물리적으로 오고 가는 일정들은 분명, 이전과 똑같아 질 수 없으며 여러 제약이 따를 것이다. 거의 첫 타자로 분위기에 맞는 시도를 해 본 협업은 ‘Art Basel’에서 온라인 뷰잉 룸이라는 것이었는데, 참여 갤러리들이 프라이빗 뷰잉과 전체 공개의 일정을 정하여 온라인을 통해 리프리젠트하는 작가들의 작업을 제공하는 형태였다. 사실, 협업이라고 하기에 너무나 소극적인 방식이라 생각하며 팬데믹에 맞는 창조적이고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은 아니었다고 본다. 국경을 초월한 작가들과 관객들로 이루어진 주요 미술관과 상업 갤러리는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영상 어플리케이션과 인스타그램 라이브, 유튜브 라이브와 같은 플랫폼을 이용하여 컬렉션의 소개, 작가의 스튜디오 라이브, 기획자와 작가의 토크 등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다. 이것 또한 ‘contact’에서 ‘untact’로 옮겨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만 작동하지 새로운 형태의 협업이라고 보기에 어렵다. 생각보다 미술은 다른 분야보다 더욱 폐쇄적이었다는 생각이 들며, 빠르게 변화하는 분위기를 따라가는 속도가 느리고 새롭지 않다. 앞으로 예측한 것보다 더 긴 호흡으로 코로나와 함께 가야 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미술계에서의 협업은 비물리적인 소통을 위한 것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전시와 페어, 비엔날레에 대해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온라인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전보다 더 많은 관람객들에게 노출될 것이며, 작가-기획자-비평가-갤러리스트의 협업이 더 적극적인 결과물로 구현되어야 설득력 있지 않을까 싶다.

언텍트이니만큼 디지털 플랫폼은 필수불가결한 수단과 전략으로 자리 잡혔다. 예술 작품과 전시라는 것은 실제 물리적인 공간에 가서 직접 봐야만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포스트-코로나 이후에도 역시나 이 부분은 중요하다. 하지만 시대가 순식간에 변하니 만큼 거리두기 환경에 적응하려면, 미술이라는 개념이 더 과감하게 디지털 환경에 열려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작가와 기획자, 주최하는 공간 모두에게 해당된다. 예컨대, 현재 ‘BGA(Background Artworks, 백그라운드 아트웍스)’ 온라인 구독 어플리케이션 플랫폼을 공동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미술을 감상하고 읽어내는 태도에 대해 완전히 다른 접근을 하려는데 있다. 그 누구도 앞으로의 4차 산업이 배달, 배송 시스템일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에는 구독 시대라는 것도 포함된다. 비물질적인 구독의 형태가 다양한 분야에서 확장되고 있다. 그렇다면 동시대 미술 또한 관객에게 ‘전달’되어야 하는 측면에서 포스트-코로나 이후의 “매개체”는 달라져야 한다. 결국 미술이라는 것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감상자인 관객들에게 어떤 형태로 매개되어져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앞으로의 디지털 전략에서 필요한 요소이지 않을까 싶다. 분명, 작가들은 이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거리두기와 비물리적인 환경에 맞는 작업에 대해 고민하게 될 것이다.

국가-사회가 위기에 처했을때, 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먼저 셧다운되고 예산이 삭감되는 것은 문화예술 분야일 것이다. 팬데믹 시대에 놓인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은 작가들을 포함하여 독립 기획자들에게도 작업 활동을 최소한으로 영위할 수 있도록 보호 장치로써의 제도가 필요하다.



ART after the Pandemic

The weighty annual and biannual events of the art world—namely, the major international art fairs and the various biennale events, big and small—have been either postponed until next year or delayed indefinitely. Schedules which require presence in different countries and involve physically coming and going can’t be the same as before, and are subject to various restrictions in a situation where people are under self-quarantine, and transportation systems as well as any other system for conducting business cannot be smoothly administered. One of the first collaborations attempted in accordance with such a mood was an online viewing room at ‘Art Basel’, which took the form of participating galleries providing works by artists who were represented online. Honestly, it wasn’t a new type of creative platform befitting the pandemic considering how its style was too passive to be called a collaboration. Major art galleries and commercial galleries with artists and audiences transcending borders were able to share in real-time introductions to their collections, live studio events by artists, and talks with planners and artists by using platforms such as easily-accessible video applications, Instagram live and YouTube live. As such attempts only function as a means to move from ‘contact’ to ‘untact’, it is difficult to view them as a new form of collaboration. Art felt much more closed off in comparison with other fields than I expected, and the speed at which it follows the rapidly changing mood is slow and aged. If we must take a much deeper breath and keep company with the Coronavirus longer than we anticipated, shouldn’t the collaboration we require from the art world take on a completely new form of exhibit, fair, and biennale than that which is just for nonphysical communication? Perhaps collaborations will be exposed to many more audiences than before when there’s no choice but to conduct them online, and collaborations between artists, planners, critics, and gallerists will only be persuasive when they happen with much more actively-engaged results.

Digital platforms, as much as they are ‘untact’, have taken root through indispensable methods and strategies. Works and exhibitions of art communicate and offer much more in terms of understanding when they are directly viewed in actual physical spaces. This will be an important topic even post-coronavirus. Nevertheless, because the times have changed in an instant, in order to adapt to an environment of distancing, art must open itself much more radically to the digital realm. This applies to everyone including artists, planners, and the spaces hosting the events. For instance, I’m currently co-managing an online subscription-based application platform called BGA (Background Artworks) which aims at taking a completely different approach in terms of an attitude for appreciating and reading art. No one thought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would consist of delivery and shipment systems. This also includes the era of subscriptions. A form of nonmaterial subscription is expanding in a variety of fields. Then, “mediums” post Coronavirus must change in that contemporary art must also be ‘delivered’ to audiences. Ultimately, in order for art to properly function, I believe an element necessary to digital strategy is contemplating in what form art will be mediated to audiences who are the appreciators. Clearly, if such a mood is sustained, artists will begin to seriously consider making works that befit distancing and nonphysical environments.

When nations and societies encounter crises, the first area to shut down and have their budgets cut, regardless of the era, is arts and culture. The government’s cultural policy during a pandemic requires institutions that function as a protective device allowing independent planners—including artists—to carry on with the bare minimum of their activ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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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08     2020.10.12 10 GLOBAL CURATORS

DAY 08  2020.10.12 10 GLOBAL CURATORS

우치미술관 모던아트 부분 수석 큐레이터
Head of Modern Art Department
at Muzeum Sztuki in Łódź

내일은 곧 어제임을

시몬 포르티는 접은 종이를 사용하여 몇가지 그림을 그렸다. 한쪽 면에는 과거라는 단어가 있고, 다른 한면은 미래를 뜻한다. 그 두가지는 상호의존적이다. 미래는 과거에 영향을 미치고, 과거는 지속적으로 미래를 변화시킨다. 이 종이는 양면을 한번에 볼 수 있게끔 접혀있지만, 부분적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이 종이는 관객이 입체주의(cubism) 페인팅처럼 사물의 모든 면을 볼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시각은 항상 부분적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속에는 과거와 미래의 요소가 혼합되어 있다. 또한 예술이 현재 세상을 어떻게 변하게 할 것인지도 알기 어렵다. 아마도 이제 미래는 지난 몇년간보다 더 불확실해진 것 같다.

몇달 전 우리가 알고 있었던 미술세계가 이제 끝났을지 모른다는 헤드라인을 보았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변화가 나타나는 곳도 분명해졌지만, 평소와 마찬가지로 비지니스가 돌아가고 있다. 아트페어와 비엔날레가 열렸고,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미술관들은 전시를 연장 또는 연기하는 것을 발표했는데 이는 실제로 속도를 줄이더라도 계속 운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객과 수익 감소를 대비해 미술관이 할 수 있는 올바른 선택인 것이다. 이 같은 속도조절 전략을 통해 전체 운영 비용을 줄일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해당 전시를 찾을 수 있도록 말이다. 이 전략은 지난 몇년간 가속화된 경쟁과 변화의 템포를 따라가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꽤 근사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구조적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 프로젝트 제작은 하나의 공급 시스템이기 때문에, 전시회가 적어질 수록,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작가와 현장 인력의 숫자 또한 적어질 것이다.

이 같은 변화된 환경이 미학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최근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은 영화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담은 에세이를 발표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느려진 사회속도는 움직임이 거의 없는 영화를 제작의 모티브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영속성을 감상하기 위해 영화관에 올 것이다. 이 같은 상상은 조금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지만, 영속성을 꿈꾸는 관객의 니즈 또한 예술의 한 형태로 진화할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이러한 과정이 예술이 만들어지는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과연 작품의 내용에까지 영향을 미칠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작가의 예술작품은 시대 흐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수도, 혹은 시대와 엇박자를 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예술은 비정상적인 상황에 준비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예술은 변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그리고 적어도 어떤 대안적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이 모든 위기가 지나간 후에, 눈 앞에 벌어지고 있는 변화된 상황의 뿌리를 과거의 사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지 코반다의 작품 Kissing Through Glass를 예로 들어 보자. 작품의 내용은 제목 타이틀 그대로를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이 작품은 미술관에서 벌어지는 퍼포먼스가 단절/소외/분리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인터넷 퍼포먼스 작품들이 좋은 예이다. 창작자는 인터넷 유저가 무엇을 보고, 듣는지 거의 컨트롤 할 수 없다. 어떤 문을 열고 어디로 향할지는 전적으로 관객의 몫이다. 오래 전, 더글라스 데이비스(1933~2014)는 TV세트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흥미로운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는 개념적으로 가상 섹스, 혹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비디오드롬(Videodrome, 1983) 보다 앞서는 작품으로, 성적 만남이 기술적으로 매개될 수도 있고, 미디어 자체를 욕망하는 신체로 해석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프란츠 에르하드 발터의 First Work Set에서 선보인 텍스타일 구조물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연습을 위한 장치처럼 보인다. 코마르와 멜라미드의 Superobjects—Supercomfort for Superpeople 시리즈에서 보여주는 작업 중 절반 이상은 전염을 피할 수 있는 신체 움직임을 신기할 정도로 잘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주의 치하 동유럽의 사상 검열과 표현의 자유 억압에 저항한 “메일 아트” 작가 네트워크에서 발전시킨 여러 예술형식에 다시 주목할 필요를 느낀다. 안드레즈 파툼의 Bureau de la Poesie와 같은 상호소통플랫폼은 새로운 인적 네트워크가 결합하는 좋은 모델이다. 라즐로 벡스의 컨셉추얼 예술 프로젝트 Work = Documentation of Imagination는 몸은 고립되어 있지만 정보가 자유롭게 흐르는 현재 상황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참여와 연결을 상상케하는 일종의 프로토타입이다. 예술가들은 이미 그들의 집에서 작품을 계속 만들고 있다. 그리고 집의 건축적인 조건이 어떻든간에 자신의 작품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다. 마리안 아마허는 일반 CD를 중간 볼륨의 CD플레이어로 재생해 묘한 청각현상을 전달하는 방법을 발전시켰다. 아티스트 듀오 키위쿨릭스는 본인들의 스튜디오를 카메라로 담았는데, 이 또한 현재 락다운 상황에 지속할 수 있는 작업이다. 내일이 곧 어제가 되는 것처럼, 우리의 문제를 해결한 방법 역시 이미 우리 앞에 놓여 있다.



Tomorrow Was Yesterday

Simone Forti did several drawings based on a folded sheet of paper. One side of the page bears the word past, while the other represents the future. They are interdependent. Future influences past, while the past is constantly changing the future. The sheet is folded in a manner that allows us to see both sides at once, however, only in parts. The paper cannot be seen as if in a cubist painting that presents the viewer will all the sides of the object. Our view in a given moment is always partial but involves mixing elements of past and future. It is also hard to see if and how art will change as an outcome of the current state of the world. The future is now perhaps more uncertain than in the last couple of years.

It is strange to see the headlines from a few months ago that announced the end of the art world as we know it. At this moment it becomes clear that the changes will appear, but art will remain mostly business as usual. Fairs and biennials are being opened and people start to carefully circulate again. Museums announced prolonging or postponing of their shows, which means actually slowing down. With visitor numbers and revenues declining this seems to be the right solution. It diminishes the costs and allows more people to see the exhibitions. The strategy might sound good also for those of us who could not keep up with the tempo and felt that the business is accelerating every year. However, it means that structural changes are inevitable. Project production was feeding system and with fewer shows fewer artists and other participants of the field are getting paid.

Can this have a lasting effect on the aesthetics? Apichatpong Weerasethakul recently published an essay with his vision of the future of cinema. Social distancing and slowing down will produce movies where movement will be almost absent. People will come to cinemas to contemplate permanence. This dream is exaggerating the possible effects and dreaming of the outcome in a shape of a more focused public.

The processes will affect how art is being made, but will they affect the contents of works? I doubt that. Artist's work is anachronic or untimely and is often prepared for unusual circumstances. If we believe that art indeed needs changing and will alternate after this whole thing is over, we can look for models from the past that forecast such a mutation. One might be that work by Jiří Kovanda, Kissing Through Glass. The title does not leave a lot for imagination. What this piece shows, however, from today’s perspective is the tendency of performance art in art institutions to emphasize alienation. The performance on the internet is a clear example. The author has almost no control over what the viewer sees and hears. All the knobs are handed to the beholder. Douglas Davis has long ago created a whole system of exercises allowing one to make love with a TV set. Predated not only virtual sex, but even Cronenbergs Videodrome, he imagined a world w sexual encounters are not only technically mediated, but can involve media as desiring bodies. Textile structures that form relations of bodies in First Work Set of Franz Erhard Walther might be instruments for practice of social distancing. More than half of Komars and Melamids from the series Superobjects—Supercomfort< for Superpeople could become strangely useful now in order to impose on body movements that will allow them to avoid contagion. Finally, the practices developed within mail art circles in Eastern Europe under socialism begin to feel relevant again. Centers of exchange like Bureau de la Poesie of Andrzej Partum could be models of junctions of new resilient networks. Key conceptual art projects like Laszlo Bekes’ Work = Documentation of Imagination are taken as prototypes for new forms of involvement and connection in a world where information flows freely while bodies are isolated. Artists also were already doing work produced in their flats or pieces that require conditions of any flat to be fully experienced. Maryanne Amacher developed the method of delivering uncanny auditory phenomena with a CD played on an average CD player with even medium volume. KwieKuliks’ activities at their studio documented with a photo camera can be seen as another kind of work that might be continued despite the lock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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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KOREAN CURATORS

DAY 08  2020.10.12 10 KOREAN CURATORS

박남희
Namhee Park

전시기획자, 미술평론가
Curator, Art critic

내일은 곧 어제임을

시몬 포르티는 접은 종이를 사용하여 몇가지 그림을 그렸다. 한쪽 면에는 과거라는 단어가 있고, 다른 한면은 미래를 뜻한다. 그 두가지는 상호의존적이다. 미래는 과거에 영향을 미치고, 과거는 지속적으로 미래를 변화시킨다. 이 종이는 양면을 한번에 볼 수 있게끔 접혀있지만, 부분적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이 종이는 관객이 입체주의(cubism) 페인팅처럼 사물의 모든 면을 볼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시각은 항상 부분적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속에는 과거와 미래의 요소가 혼합되어 있다. 또한 예술이 현재 세상을 어떻게 변하게 할 것인지도 알기 어렵다. 아마도 이제 미래는 지난 몇년간보다 더 불확실해진 것 같다.

몇달 전 우리가 알고 있었던 미술세계가 이제 끝났을지 모른다는 헤드라인을 보았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변화가 나타나는 곳도 분명해졌지만, 평소와 마찬가지로 비지니스가 돌아가고 있다. 아트페어와 비엔날레가 열렸고,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미술관들은 전시를 연장 또는 연기하는 것을 발표했는데 이는 실제로 속도를 줄이더라도 계속 운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객과 수익 감소를 대비해 미술관이 할 수 있는 올바른 선택인 것이다. 이 같은 속도조절 전략을 통해 전체 운영 비용을 줄일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해당 전시를 찾을 수 있도록 말이다. 이 전략은 지난 몇년간 가속화된 경쟁과 변화의 템포를 따라가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꽤 근사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구조적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 프로젝트 제작은 하나의 공급 시스템이기 때문에, 전시회가 적어질 수록,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작가와 현장 인력의 숫자 또한 적어질 것이다.

이 같은 변화된 환경이 미학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최근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은 영화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담은 에세이를 발표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느려진 사회속도는 움직임이 거의 없는 영화를 제작의 모티브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영속성을 감상하기 위해 영화관에 올 것이다. 이 같은 상상은 조금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지만, 영속성을 꿈꾸는 관객의 니즈 또한 예술의 한 형태로 진화할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이러한 과정이 예술이 만들어지는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과연 작품의 내용에까지 영향을 미칠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작가의 예술작품은 시대 흐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수도, 혹은 시대와 엇박자를 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예술은 비정상적인 상황에 준비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예술은 변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그리고 적어도 어떤 대안적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이 모든 위기가 지나간 후에, 눈 앞에 벌어지고 있는 변화된 상황의 뿌리를 과거의 사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지 코반다의 작품 Kissing Through Glass를 예로 들어 보자. 작품의 내용은 제목 타이틀 그대로를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이 작품은 미술관에서 벌어지는 퍼포먼스가 단절/소외/분리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인터넷 퍼포먼스 작품들이 좋은 예이다. 창작자는 인터넷 유저가 무엇을 보고, 듣는지 거의 컨트롤 할 수 없다. 어떤 문을 열고 어디로 향할지는 전적으로 관객의 몫이다. 오래 전, 더글라스 데이비스(1933~2014)는 TV세트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흥미로운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는 개념적으로 가상 섹스, 혹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비디오드롬(Videodrome, 1983) 보다 앞서는 작품으로, 성적 만남이 기술적으로 매개될 수도 있고, 미디어 자체를 욕망하는 신체로 해석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프란츠 에르하드 발터의 First Work Set에서 선보인 텍스타일 구조물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연습을 위한 장치처럼 보인다. 코마르와 멜라미드의 Superobjects—Supercomfort for Superpeople 시리즈에서 보여주는 작업 중 절반 이상은 전염을 피할 수 있는 신체 움직임을 신기할 정도로 잘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주의 치하 동유럽의 사상 검열과 표현의 자유 억압에 저항한 “메일 아트” 작가 네트워크에서 발전시킨 여러 예술형식에 다시 주목할 필요를 느낀다. 안드레즈 파툼의 Bureau de la Poesie와 같은 상호소통플랫폼은 새로운 인적 네트워크가 결합하는 좋은 모델이다. 라즐로 벡스의 컨셉추얼 예술 프로젝트 Work = Documentation of Imagination는 몸은 고립되어 있지만 정보가 자유롭게 흐르는 현재 상황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참여와 연결을 상상케하는 일종의 프로토타입이다. 예술가들은 이미 그들의 집에서 작품을 계속 만들고 있다. 그리고 집의 건축적인 조건이 어떻든간에 자신의 작품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다. 마리안 아마허는 일반 CD를 중간 볼륨의 CD플레이어로 재생해 묘한 청각현상을 전달하는 방법을 발전시켰다. 아티스트 듀오 키위쿨릭스는 본인들의 스튜디오를 카메라로 담았는데, 이 또한 현재 락다운 상황에 지속할 수 있는 작업이다. 내일이 곧 어제가 되는 것처럼, 우리의 문제를 해결한 방법 역시 이미 우리 앞에 놓여 있다.



Tomorrow Was Yesterday

Simone Forti did several drawings based on a folded sheet of paper. One side of the page bears the word past, while the other represents the future. They are interdependent. Future influences past, while the past is constantly changing the future. The sheet is folded in a manner that allows us to see both sides at once, however, only in parts. The paper cannot be seen as if in a cubist painting that presents the viewer will all the sides of the object. Our view in a given moment is always partial but involves mixing elements of past and future. It is also hard to see if and how art will change as an outcome of the current state of the world. The future is now perhaps more uncertain than in the last couple of years.

It is strange to see the headlines from a few months ago that announced the end of the art world as we know it. At this moment it becomes clear that the changes will appear, but art will remain mostly business as usual. Fairs and biennials are being opened and people start to carefully circulate again. Museums announced prolonging or postponing of their shows, which means actually slowing down. With visitor numbers and revenues declining this seems to be the right solution. It diminishes the costs and allows more people to see the exhibitions. The strategy might sound good also for those of us who could not keep up with the tempo and felt that the business is accelerating every year. However, it means that structural changes are inevitable. Project production was feeding system and with fewer shows fewer artists and other participants of the field are getting paid.

Can this have a lasting effect on the aesthetics? Apichatpong Weerasethakul recently published an essay with his vision of the future of cinema. Social distancing and slowing down will produce movies where movement will be almost absent. People will come to cinemas to contemplate permanence. This dream is exaggerating the possible effects and dreaming of the outcome in a shape of a more focused public.

The processes will affect how art is being made, but will they affect the contents of works? I doubt that. Artist's work is anachronic or untimely and is often prepared for unusual circumstances. If we believe that art indeed needs changing and will alternate after this whole thing is over, we can look for models from the past that forecast such a mutation. One might be that work by Jiří Kovanda, Kissing Through Glass. The title does not leave a lot for imagination. What this piece shows, however, from today’s perspective is the tendency of performance art in art institutions to emphasize alienation. The performance on the internet is a clear example. The author has almost no control over what the viewer sees and hears. All the knobs are handed to the beholder. Douglas Davis has long ago created a whole system of exercises allowing one to make love with a TV set. Predated not only virtual sex, but even Cronenbergs Videodrome, he imagined a world w sexual encounters are not only technically mediated, but can involve media as desiring bodies. Textile structures that form relations of bodies in First Work Set of Franz Erhard Walther might be instruments for practice of social distancing. More than half of Komars and Melamids from the series Superobjects—Supercomfort< for Superpeople could become strangely useful now in order to impose on body movements that will allow them to avoid contagion. Finally, the practices developed within mail art circles in Eastern Europe under socialism begin to feel relevant again. Centers of exchange like Bureau de la Poesie of Andrzej Partum could be models of junctions of new resilient networks. Key conceptual art projects like Laszlo Bekes’ Work = Documentation of Imagination are taken as prototypes for new forms of involvement and connection in a world where information flows freely while bodies are isolated. Artists also were already doing work produced in their flats or pieces that require conditions of any flat to be fully experienced. Maryanne Amacher developed the method of delivering uncanny auditory phenomena with a CD played on an average CD player with even medium volume. KwieKuliks’ activities at their studio documented with a photo camera can be seen as another kind of work that might be continued despite the lock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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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생명을 위한 융합예술(예술과 기술) 패러다임
: 초연결 사회의 로컬, 공동체, 담론


세상의 우선 순위가 바뀌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는 방역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고, 생명이 무엇보다 먼저라는 사실을 각인시키고 있다. 마스크처럼 불편해하던 ‘격리’라는 단어가 일상화되고 때때로 자의든 타의든 거리두기를 한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같은 문화시설은 더 많은 관람객이 아니라 안전한 관람을 위한 거리두기로, 100명 이상 모였던 학술 심포지엄과 같은 일련의 행사는 50명이하로 제한하거나 온라인으로 대체하는 현실이다. 일선 학교는 온라인 강의 시스템에 점점 익숙해져, 비대면이 또다른 방식의 커뮤니케이션과 세계관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방역과 위기의 민감함은 개인 뿐 아니라 집단의 예민함으로 이어져, 불안, 불신, 차단, 의심, 경계 등의 부정적이고 폐쇄적인 심리와 행태 등이 우려스럽다. 삶의 다층적 국면에서 마주하던 타자와의 관계와 현실 원리는 비대면 속에서 관념적인 불용의 가치로 전락하고, 개인의 자유도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는 통제나 검열을 감수한다. 바야흐로 이념도, 종교도, 정치도 아닌 바이러스 식민의 시대다.

역사학자 윌리엄 맥닐(William H. McNeill)이 『전염병의 세계사(Plagues and Peoples)』에서 말한 것처럼, “전염병은 인류의 역사를 바꿔왔다.” 코로나19 팬데믹도 인류를 이전의 역사와 다른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대자연의 역습이든 인간의 자연에 대한 만용의 댓가이든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로 감지된 위험은 도처에 있다. 이에 대한 전지구적 해법이 단번에 나오지 않겠지만, 일부는 위기에의 대처로, 일부는 환경, 생태의 예비하는 방법론으로, 일부는 무너지는 시스템의 원천적 재설계 등등으로 다양한 현실적 대안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불확실과 불안의 시대, 미술계는 현실과 밀착된 실존적 숙고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테면 그간 지속해온 ‘동시대성(contemporaneity)과 글로벌리즘(globalism)의 종언’은 불가피하다. 《93 휘트니비엔날레 서울》과 광주비엔날레 개최로부터 확산된 국제화의 여파는 다양한 방식의 권력이양과 잡종교배를 지속해왔으나 궤도수정은 이미 다각도로 진행중이다. 동시대적 풍경에 묻혀 주목하지 못한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로컬과 공동체의 사건들에 개입하는 것도 일종의 글로벌리즘의 종언과 관계된 것이다. 인파와 조명으로 가득 찼던 ‘광장’과 ‘무대’가 파편화되거나 일시적이 되는 지금, ‘광장’을 서게 했던 ‘골목’과 ‘무대’를 가능케한 ‘백스테이지’의 서사에 귀 기울여진다.

최근까지 미술은 탈장르적이거나 매체 융합 또는 뉴미디어 집중 양상을 드러내며, 서울에서부터 제주까지 글로벌리즘이라 할 동시대 미술을 저변화 해왔다. 주제나 전시 장치 등에 의한 완성도에서 차이가 있을지라도 지역의 독특한 역사와 정서를 대변하는 미술이나 행사 보다는 동시대성의 이모저모를 보이곤 한다. 마치 ‘아파트와 상권을 장악한 트렌디한 신도시 풍경’이 서울, 부산, 광주, 대구, 청주 등등에서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처럼 말이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모델과 시리즈’(the model and the series, The System of Objects, 1968)의 가상과 실재의 관계가 미끄러지고, 원본과 모사 구분 없이 ‘모델/시리즈(model/series)’의 현상처럼 글로벌리즘과 동시대성의 자가 증식 혹은 확대 재생산의 시간을 이어왔다. 미술관 전시나 연구는 물론이거니와 비엔날레, 축제 등도 마찬가지다. 물리적으로 동시대는 미술관, 박물관 등의 문화시설이 양적 팽창을 해오며 문화향유 확산의 하드웨어를 구축해왔다. 문화향유권, 행복추구권을 위한 정책으로서 의미 있으나 실행의 난맥이 없지 않다. 고질적인 엘리트주의와 관 주도의 정책이 가진 실상이다. 2020년 올해 7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미술관, 박물관 평가인증제’는 질적 개선을 위한 자구책이긴 하나 관료주의적 관리가 아니라 전문성과 대중성을 끌어올리는 기폭제가 되어야할 것이다. 얇고 넓게 공유되는 ‘글로벌리즘’과 ‘동시대성’은 균질한 정보와 주류 흐름에 동승하기, 상호관계망 안에 놓이기를 확대함으로써 원천적인 힘이 되어준 실핏줄 같은 로컬과 공동체를 주목하지 못했다. 로컬의 서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우선 순위에 있지 않았고, 이는 ‘동시대성’의 주체에 대한 통찰의 결여 때문이었다.

사실상 로컬에의 관심은 이미 시작되었고, 사라져가는 ‘글로벌리즘’과 부각되는 ‘로컬리즘(Localism)’, 절충적인 글로컬리즘(glocalism)이 제기되곤 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로컬(local), 로컬리티(locality) 담론은 “지역성이 내포하는 근대적 담론에서 벗어나 탈근대적 사유를 중시하며, 보편성과 전체성을 지양하고 개체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지향”하며, 로컬리티를 “자연적으로 주어지거나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로컬에 토대를 둔 행위 주체들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형성․변화”하는 개념으로 볼 것에 방점을 둔다. 그런 맥락의 로컬과 공동체의 정체성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생리적으로 로컬에 토대한 다양한 행위주체들의 의미는 주제나 내용적인 것의 영역뿐 아니라 공유방식의 다변화도 예측된다. 비대면의 전시를 위한 해법이 온라인 영상 송출이나 인공지능, 가상현실, 증강현실, 복합현실 등 디지털 미디어 기반의 방법론에 있는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명확하나, 현재는 온라인의 접근성과 유용성에 기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유투브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등 커뮤니이션의 방식이 전통적인 방송과 신문의 매커니즘을 넘어선 것처럼, 예술과 기술의 융합 가속화와 로컬의 백그라운드와 백스테이지를 포함한 아카이브와 플랫폼 기능이 미술관과 전시 등의 공유방식으로 강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 2020년 월간미술 9월호 특집에 게재된 글의 일부

1. 문화체육관광부의 2020년 7월 6일자 보도자료 “평가인증통해 박물관과 미술관의 질을 높인다 - 국립박물관 36개관, 공립미술관 55개관 선순환구조마련 및 운영활성화 기대” 참조. “2020년 국립박물관 및 공립미술관 평가인증제도’를 통해 국립박물관 50개관 가운데 등록 후 3년이 경과한 36개관, 공립미술관 64개관 가운데 55개관(2019년 기준)을 평가한다.” “선순환 구조 마련을 위한 우수 기관 보상 강화, 홍보 지원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2. 박규택. “로컬의 공간성 이해를 위한 이론적 틀: 사회․역사 구성주의 관점”. 『한국민족문화』, 2009. p.159.M




Convergence Art (Art and Technology) Paradigm for Future Life
: The Local Area, Community, and Discourse in a Hyper-connected Society


The world’s priorities are changing. The Covid-19 crisis is calling attention to the importance of disease prevention and highlighting, above all, the fact that life comes first. The word ‘quarantine’ has become part of everyday parlance, and distancing is carried out either by volition or force. The reality is that cultural facilities like art galleries and museums are enforcing social distancing for safe viewing, rather than directing their efforts towards attracting more visitors. In addition, events such as academic symposiums with more than 100 attendees have been limited to 50 or less, or replaced with an online format. Schools are gradually becoming accustomed to an online lecture system, and non-face-to-face communication in general is forecasting different styles of interaction. Disease prevention and crisis protocols have led to individual or group sensitivity, eliciting concerns about negative mentalities or behaviors including anxiety, distrust, obstruction, suspicion, and hostility. Thanks to restricted interaction and the regulation of life for the sake of safety, relationships with others and reality itself can degenerate. The era of viral colonization, rather than ideology, religion, or even politics, is in full swing.

As historian William H. McNeill wrote in his book Plagues and Peoples, “Plagues changed the history of humankind.” The Covid-19 pandemic is driving humanity towards an unprecedented situation. Whether this is a counterattack by Mother Nature or simply the price of humanity’s foolhardiness against it, the danger posed by the Anthropocene is everywhere. Although a global solution is still some way off, we will encounter a variety of realistic alternatives, with a portion of the solution being a response to the crisis, another portion being methods of protection for the environment and the ecosystem, and still another the fundamental redesign of a collapsing system. In this time of uncertainty and anxiety, the art world must contemplate its existence realistically. The ‘end of contemporaneity and globalism’ is inevitable, so to speak. The aftermath of internationalization, which spread rapidly as a result of the 1993 Whitney Biennial in Seoul and the Gwangju Biennale, sustained various methods of power transfer and hybrid crossbreeding, but a course correction is already underway in Korea. There is new visibility for local areas and communities which had been buried in an avalanche of contemporaneous landscapes and groups. Now that the ‘square’ and ‘stage’ overflowing with crowds and lights have become fragmented or temporary, we strain our ears toward the narrative of the ‘alleyway’—the ‘backstage’ which makes the main stage possible from small cities to big cities all over the world.

Until recently, art was a force for deconstruction or revelation, exploring media convergences or concentrations, expanding the reaches of contemporary practice, referred to as globalism, from Seoul all the way down to Jeju. Even if there were differences in the level of completion thanks to the theme or the method of display, art demonstrated the various facets of contemporaneity rather than representing the unique history or sentiments of an area. It’s as if the new urban models dominating apartment design and commerical districts are simply being repeated identically from Seoul to Busan, Gwangju, Daegu, and Cheongju in Korea. Just as in Jean Baudrillard’s models and series (The System of Objects, 1968) in whic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virtual and the real slips away, making the original and copy indistinguishable, a period of proliferation or expanded reproduction has continued.

This is the same for biennales and festivals—not to mention art museum exhibitions and study. Physically, the contemporary era has experienced the quantitative expansion of cultural facilities such as art galleries and museums as it builds up the hardware for spreading the enjoyment of culture. Although such a policy is meaningful in terms of the right to enjoy culture and to pursue happiness, there are difficulties in terms of implementation. This is the reality of deep-seated elitism and government-led policy. The ‘art gallery and museum accreditation system’ launched by the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in July 2020 is a plan promoting qualitative improvement, but it should be a catalyst for raising expertise and popular appeal, rather than a kind of bureaucratic management. By expanding conformity to homogenous information and the mainstream as well as the state of being placed in a mutual network, ‘globalism’ and contemporaneity’, shared thinly and widely, fail to bring attention to the local area and communities which function like a bloodstream, providing a wellspring of strength. It’s not that there is no local narrative; the truth is that it isn’t a priority because of a lack of insight into true contemporaneity.

In reality, interest in local areas has already taken hold, while a disappearing ‘globalism’, an emerging ‘localism’, and an eclectic glocalism arise now and again. The discourse of the local area or locality introduced here stresses a postmodern reasoning that goes beyond the modern discourse. Rather than viewing the local as a naturally given or fixed reality, it highlights locality as a site of constant formation and change through a variety of activities by actors based in the local area. Exploring the identity of the local area and community in this way will strengthen it. People active in the local area will prove significant not only in terms of theme or content, but also in terms of diversity and modes of sharing. Although it is clear that solutions for non-face-to-face exhibitions can be found in digital media-based methodologies such as online video, artificial intelligence, virtual reality, augmented reality, and mixed reality, it is also true that these depend on online accessibility and utility. Just as communication platforms like YouTube, Facebook, Instagram, and TikTok have surpassed newspapers and other mechanisms of traditional broadcasting, the accelerating convergence between art and technology along with archive and platform functions (such as the ‘backstage’ of the local area) will strengthen as a sharing method for art museums and exhibits.

— Excerpted from a feature published in the September 2020 issue of Wolganmisool

1. Refer to “Accreditation improves the quality of museums and art galleries—establishing a virtuous cycle for and expecting the revitalized operation of 36 national museums and 55 public art galleries”, a press release by the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on July 6, 2020. The gist of the program is as follows: “The 2020 National Museum and Public Art Gallery Accreditation System will evaluate, out of 50 national museums, 36 museums surpassing three years of registration, and, out of 64 public art galleries, 55 art galleries (as of 2019).” “The program will increase rewards for and support the promotion of excellent institutions in order to establish a virtuous cycle.”
2. Kyu-taek Park. “Theoretical Framework of Understanding the Spatiality of Local ―A Perspective of Socio-Historical Constructionism and Activity”. Journal of Koreanology, 2009. P.159.


+ CV more

미래 생명을 위한 융합예술(예술과 기술) 패러다임
: 초연결 사회의 로컬, 공동체, 담론


세상의 우선 순위가 바뀌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는 방역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고, 생명이 무엇보다 먼저라는 사실을 각인시키고 있다. 마스크처럼 불편해하던 ‘격리’라는 단어가 일상화되고 때때로 자의든 타의든 거리두기를 한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같은 문화시설은 더 많은 관람객이 아니라 안전한 관람을 위한 거리두기로, 100명 이상 모였던 학술 심포지엄과 같은 일련의 행사는 50명이하로 제한하거나 온라인으로 대체하는 현실이다. 일선 학교는 온라인 강의 시스템에 점점 익숙해져, 비대면이 또다른 방식의 커뮤니케이션과 세계관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방역과 위기의 민감함은 개인 뿐 아니라 집단의 예민함으로 이어져, 불안, 불신, 차단, 의심, 경계 등의 부정적이고 폐쇄적인 심리와 행태 등이 우려스럽다. 삶의 다층적 국면에서 마주하던 타자와의 관계와 현실 원리는 비대면 속에서 관념적인 불용의 가치로 전락하고, 개인의 자유도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는 통제나 검열을 감수한다. 바야흐로 이념도, 종교도, 정치도 아닌 바이러스 식민의 시대다.

역사학자 윌리엄 맥닐(William H. McNeill)이 『전염병의 세계사(Plagues and Peoples)』에서 말한 것처럼, “전염병은 인류의 역사를 바꿔왔다.” 코로나19 팬데믹도 인류를 이전의 역사와 다른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대자연의 역습이든 인간의 자연에 대한 만용의 댓가이든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로 감지된 위험은 도처에 있다. 이에 대한 전지구적 해법이 단번에 나오지 않겠지만, 일부는 위기에의 대처로, 일부는 환경, 생태의 예비하는 방법론으로, 일부는 무너지는 시스템의 원천적 재설계 등등으로 다양한 현실적 대안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불확실과 불안의 시대, 미술계는 현실과 밀착된 실존적 숙고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테면 그간 지속해온 ‘동시대성(contemporaneity)과 글로벌리즘(globalism)의 종언’은 불가피하다. 《93 휘트니비엔날레 서울》과 광주비엔날레 개최로부터 확산된 국제화의 여파는 다양한 방식의 권력이양과 잡종교배를 지속해왔으나 궤도수정은 이미 다각도로 진행중이다. 동시대적 풍경에 묻혀 주목하지 못한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로컬과 공동체의 사건들에 개입하는 것도 일종의 글로벌리즘의 종언과 관계된 것이다. 인파와 조명으로 가득 찼던 ‘광장’과 ‘무대’가 파편화되거나 일시적이 되는 지금, ‘광장’을 서게 했던 ‘골목’과 ‘무대’를 가능케한 ‘백스테이지’의 서사에 귀 기울여진다.

최근까지 미술은 탈장르적이거나 매체 융합 또는 뉴미디어 집중 양상을 드러내며, 서울에서부터 제주까지 글로벌리즘이라 할 동시대 미술을 저변화 해왔다. 주제나 전시 장치 등에 의한 완성도에서 차이가 있을지라도 지역의 독특한 역사와 정서를 대변하는 미술이나 행사 보다는 동시대성의 이모저모를 보이곤 한다. 마치 ‘아파트와 상권을 장악한 트렌디한 신도시 풍경’이 서울, 부산, 광주, 대구, 청주 등등에서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처럼 말이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모델과 시리즈’(the model and the series, The System of Objects, 1968)의 가상과 실재의 관계가 미끄러지고, 원본과 모사 구분 없이 ‘모델/시리즈(model/series)’의 현상처럼 글로벌리즘과 동시대성의 자가 증식 혹은 확대 재생산의 시간을 이어왔다. 미술관 전시나 연구는 물론이거니와 비엔날레, 축제 등도 마찬가지다. 물리적으로 동시대는 미술관, 박물관 등의 문화시설이 양적 팽창을 해오며 문화향유 확산의 하드웨어를 구축해왔다. 문화향유권, 행복추구권을 위한 정책으로서 의미 있으나 실행의 난맥이 없지 않다. 고질적인 엘리트주의와 관 주도의 정책이 가진 실상이다. 2020년 올해 7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미술관, 박물관 평가인증제’는 질적 개선을 위한 자구책이긴 하나 관료주의적 관리가 아니라 전문성과 대중성을 끌어올리는 기폭제가 되어야할 것이다. 얇고 넓게 공유되는 ‘글로벌리즘’과 ‘동시대성’은 균질한 정보와 주류 흐름에 동승하기, 상호관계망 안에 놓이기를 확대함으로써 원천적인 힘이 되어준 실핏줄 같은 로컬과 공동체를 주목하지 못했다. 로컬의 서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우선 순위에 있지 않았고, 이는 ‘동시대성’의 주체에 대한 통찰의 결여 때문이었다.

사실상 로컬에의 관심은 이미 시작되었고, 사라져가는 ‘글로벌리즘’과 부각되는 ‘로컬리즘(Localism)’, 절충적인 글로컬리즘(glocalism)이 제기되곤 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로컬(local), 로컬리티(locality) 담론은 “지역성이 내포하는 근대적 담론에서 벗어나 탈근대적 사유를 중시하며, 보편성과 전체성을 지양하고 개체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지향”하며, 로컬리티를 “자연적으로 주어지거나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로컬에 토대를 둔 행위 주체들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형성․변화”하는 개념으로 볼 것에 방점을 둔다. 그런 맥락의 로컬과 공동체의 정체성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생리적으로 로컬에 토대한 다양한 행위주체들의 의미는 주제나 내용적인 것의 영역뿐 아니라 공유방식의 다변화도 예측된다. 비대면의 전시를 위한 해법이 온라인 영상 송출이나 인공지능, 가상현실, 증강현실, 복합현실 등 디지털 미디어 기반의 방법론에 있는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명확하나, 현재는 온라인의 접근성과 유용성에 기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유투브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등 커뮤니이션의 방식이 전통적인 방송과 신문의 매커니즘을 넘어선 것처럼, 예술과 기술의 융합 가속화와 로컬의 백그라운드와 백스테이지를 포함한 아카이브와 플랫폼 기능이 미술관과 전시 등의 공유방식으로 강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 2020년 월간미술 9월호 특집에 게재된 글의 일부

1. 문화체육관광부의 2020년 7월 6일자 보도자료 “평가인증통해 박물관과 미술관의 질을 높인다 - 국립박물관 36개관, 공립미술관 55개관 선순환구조마련 및 운영활성화 기대” 참조. “2020년 국립박물관 및 공립미술관 평가인증제도’를 통해 국립박물관 50개관 가운데 등록 후 3년이 경과한 36개관, 공립미술관 64개관 가운데 55개관(2019년 기준)을 평가한다.” “선순환 구조 마련을 위한 우수 기관 보상 강화, 홍보 지원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2. 박규택. “로컬의 공간성 이해를 위한 이론적 틀: 사회․역사 구성주의 관점”. 『한국민족문화』, 2009. p.159.M




Convergence Art (Art and Technology) Paradigm for Future Life
: The Local Area, Community, and Discourse in a Hyper-connected Society


The world’s priorities are changing. The Covid-19 crisis is calling attention to the importance of disease prevention and highlighting, above all, the fact that life comes first. The word ‘quarantine’ has become part of everyday parlance, and distancing is carried out either by volition or force. The reality is that cultural facilities like art galleries and museums are enforcing social distancing for safe viewing, rather than directing their efforts towards attracting more visitors. In addition, events such as academic symposiums with more than 100 attendees have been limited to 50 or less, or replaced with an online format. Schools are gradually becoming accustomed to an online lecture system, and non-face-to-face communication in general is forecasting different styles of interaction. Disease prevention and crisis protocols have led to individual or group sensitivity, eliciting concerns about negative mentalities or behaviors including anxiety, distrust, obstruction, suspicion, and hostility. Thanks to restricted interaction and the regulation of life for the sake of safety, relationships with others and reality itself can degenerate. The era of viral colonization, rather than ideology, religion, or even politics, is in full swing.

As historian William H. McNeill wrote in his book Plagues and Peoples, “Plagues changed the history of humankind.” The Covid-19 pandemic is driving humanity towards an unprecedented situation. Whether this is a counterattack by Mother Nature or simply the price of humanity’s foolhardiness against it, the danger posed by the Anthropocene is everywhere. Although a global solution is still some way off, we will encounter a variety of realistic alternatives, with a portion of the solution being a response to the crisis, another portion being methods of protection for the environment and the ecosystem, and still another the fundamental redesign of a collapsing system. In this time of uncertainty and anxiety, the art world must contemplate its existence realistically. The ‘end of contemporaneity and globalism’ is inevitable, so to speak. The aftermath of internationalization, which spread rapidly as a result of the 1993 Whitney Biennial in Seoul and the Gwangju Biennale, sustained various methods of power transfer and hybrid crossbreeding, but a course correction is already underway in Korea. There is new visibility for local areas and communities which had been buried in an avalanche of contemporaneous landscapes and groups. Now that the ‘square’ and ‘stage’ overflowing with crowds and lights have become fragmented or temporary, we strain our ears toward the narrative of the ‘alleyway’—the ‘backstage’ which makes the main stage possible from small cities to big cities all over the world.

Until recently, art was a force for deconstruction or revelation, exploring media convergences or concentrations, expanding the reaches of contemporary practice, referred to as globalism, from Seoul all the way down to Jeju. Even if there were differences in the level of completion thanks to the theme or the method of display, art demonstrated the various facets of contemporaneity rather than representing the unique history or sentiments of an area. It’s as if the new urban models dominating apartment design and commerical districts are simply being repeated identically from Seoul to Busan, Gwangju, Daegu, and Cheongju in Korea. Just as in Jean Baudrillard’s models and series (The System of Objects, 1968) in whic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virtual and the real slips away, making the original and copy indistinguishable, a period of proliferation or expanded reproduction has continued.

This is the same for biennales and festivals—not to mention art museum exhibitions and study. Physically, the contemporary era has experienced the quantitative expansion of cultural facilities such as art galleries and museums as it builds up the hardware for spreading the enjoyment of culture. Although such a policy is meaningful in terms of the right to enjoy culture and to pursue happiness, there are difficulties in terms of implementation. This is the reality of deep-seated elitism and government-led policy. The ‘art gallery and museum accreditation system’ launched by the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in July 2020 is a plan promoting qualitative improvement, but it should be a catalyst for raising expertise and popular appeal, rather than a kind of bureaucratic management. By expanding conformity to homogenous information and the mainstream as well as the state of being placed in a mutual network, ‘globalism’ and contemporaneity’, shared thinly and widely, fail to bring attention to the local area and communities which function like a bloodstream, providing a wellspring of strength. It’s not that there is no local narrative; the truth is that it isn’t a priority because of a lack of insight into true contemporaneity.

In reality, interest in local areas has already taken hold, while a disappearing ‘globalism’, an emerging ‘localism’, and an eclectic glocalism arise now and again. The discourse of the local area or locality introduced here stresses a postmodern reasoning that goes beyond the modern discourse. Rather than viewing the local as a naturally given or fixed reality, it highlights locality as a site of constant formation and change through a variety of activities by actors based in the local area. Exploring the identity of the local area and community in this way will strengthen it. People active in the local area will prove significant not only in terms of theme or content, but also in terms of diversity and modes of sharing. Although it is clear that solutions for non-face-to-face exhibitions can be found in digital media-based methodologies such as online video, artificial intelligence, virtual reality, augmented reality, and mixed reality, it is also true that these depend on online accessibility and utility. Just as communication platforms like YouTube, Facebook, Instagram, and TikTok have surpassed newspapers and other mechanisms of traditional broadcasting, the accelerating convergence between art and technology along with archive and platform functions (such as the ‘backstage’ of the local area) will strengthen as a sharing method for art museums and exhibits.

— Excerpted from a feature published in the September 2020 issue of Wolganmisool

1. Refer to “Accreditation improves the quality of museums and art galleries—establishing a virtuous cycle for and expecting the revitalized operation of 36 national museums and 55 public art galleries”, a press release by the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on July 6, 2020. The gist of the program is as follows: “The 2020 National Museum and Public Art Gallery Accreditation System will evaluate, out of 50 national museums, 36 museums surpassing three years of registration, and, out of 64 public art galleries, 55 art galleries (as of 2019).” “The program will increase rewards for and support the promotion of excellent institutions in order to establish a virtuous cycle.”
2. Kyu-taek Park. “Theoretical Framework of Understanding the Spatiality of Local ―A Perspective of Socio-Historical Constructionism and Activity”. Journal of Koreanology, 2009.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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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09     2020.10.13 10 GLOBAL CURA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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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아트랩 얼라이언스 설립자
Founder of Green Art Lab Alliance

(비)정상이 되버린 불안감

애나 칭의 책 ‘세상 끝의 버섯’은 일본 송이버섯을 출발점으로 삼는 이론(철학, 인류학)과 자연의 이야기간의 아름다운 얽힘에 관한 내용이다. 이 책에서의 버섯은 환경적으로 종말론적인 시기에 복원력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일본 원전 사고 이후 망가진 숲에서 가장 먼저 다시 자라는 종이다. 이 책은 기후 위기(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를 포함한 관련된 모든 종류의 위기) 시대에 창조를 위한 조건으로서, 상호 연결되고 협력적인 생존을 위해 어떻게 서로 유익한 교환을 해줄 종(種, 인간 포함)을 찾을 것인지에 대한 불안감을 이해하게 해주었다. 앞으로 무너질 기후와 다가올 동물성 질병들을 비추어 볼때, 나는 이 팬데믹이 시작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무분별한 삼림벌채나 대규모 육류 산업 등, 우리가 종의 자연 서식지를 계속해서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술가, 예술 단체로서 우리 앞에 놓인 변화를 견디기 위해 유연성과 기동력을 높여야만 한다. 예술과 문화는 이를 위한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 여기서 우리는 창의적인 방법을 배우고, 혁신적인 솔루션을 생각한다. 우리가 만드는 예술에서 우리는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하며 상상력을 사용할 수 있다. 이는 미래를 위한 중요한 생존기술이다.

공간을 만들려면 주변 지역, 농촌 공도체, 대체 금융 시스템, 협동조합 같은 생활과 협력의 대체 시스템, 공유지의 공동 소유권과 같은 분권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학제적으로 접근해야하고 전략적 동맹을 형성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 경쟁자가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의 변두리에서 살아가고 일할 수있는 방법 (돈과 경쟁을 중심으로 너무 많이 돌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이것이 종종 불가능해 보이지만)은 존재한다. 애나 칭은 2012년부터 내가 하고자 했던 것에 대한 이론을 제공해주었다. 당시는 우리 자체 네트워크인 그린아트랩 얼라이언스(Green Art Lab Alliance)를 시작한 해이다. 우리의 파트너쉽을 ‘지식 동맹’이라고 불렀고, 우리 모두는 그 자체로도 불안정한 예술의 잠재력에 대해 배워 관객과 이야기하고 예술가와 사회 및 환경문제에 대해 작업하고 싶었다. 우리는 건축 시공, 시네마 조명, 댄스 스튜디오 난방, 페스티벌 운영, 항공 운항 등 탄소 배출에 대한 고통스런 진실을 잘 알고 있다. 문화 단체로서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방법은 무엇이 있으까? 예술가들이 기후 위기만큼 복잡한 문제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어떻게 만들까? 우리의 동맹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시작하는 하나의 연결 고리였다.

탄소 발자국 이해하기
첫 3년간의 그린아트랩은 몇가지 굉장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되면서 신뢰를 얻게 되고, 친구들을 만들면서 네트워크의 기초가 되었다. 그러나 2015년에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고 느꼈고, 서양의 대학교육 과정이 나를 점점유럽중심적 세계관에 가두어두고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기후위기가 얼마나 복잡하고 포괄적인 문제인지 이해하면 할수록 이산화탄소, 테크놀로지 및 혁신을 넘어서 더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무엇으로 과학을 보완해야함을 느꼈다. 2년동안 나는 아시아에서 예술가, 큐레이터, 학계의 인사들과 함께 반식민지성, 선조성, 정신성 그리고 땅에 대한 우리의 관계에 대한 학문에 대해 250회 이상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언어와 식민지
반다나 시바에 따르면 특정 언어가 만든 하나의 문화는 획일화된 문화(monoculture)란 정신의 단일경작(monoculture of the mind)로 이어진다. 우리는 때때로 개념을 번역하는 능력의 한계에 부딪혔다. 결국 언어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이해를 형성한다. 현재 환경 위기를 보고 대응할 수 없는 이유는 언어 또는 개념의 번역 때문일까? 이것은 이런 문제들을 전부 짚어줄 수 있는 새로운 이미지, 개념 및 기타 언어를 포함한 다감각적, 다차원적인 접근방식이 필요한 복잡한 상호관계 그물망이라고 할 수 있다. 지구온난화, 인류세, 지속가능성, 기후재난과 같은 용어들 또한 우리가 이러한 개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포괄적 언어를 만들려는 시도였다.

남아메리카
남미의 정치체제가 어떻게 구조적으로 지역사회와 우주론을 낮게 평가했는지를 알게 되면서 자연계에 대한 현지 지식의 중요성은 나에게 점점 분명해졌다. 나는 브라질에서 몇달만에 ‘위급’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열대우림에 불이 났던 8월에는 아마존에 있는 레지던시 프로그램(Labverde)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연기 때문에 생성된 짙은 검은 빗물이 상파울루 전역에 쏟아져 내렸다. 9 월에는 여전히 진행중인 대규모 기름유출이 북동부 해안선 2250km 이상을 오염시켰다. 브라질 연구원인 알렉시스 밀로노폴로스는 독성 물질로 완벽하게 사라진 새와 곤충의 부재가 낳은 완벽한 정적을 설명해줬다. 나는 내 피부색 때문에 내게 주어진 특권에 더러움을 느꼈다. 화석연료와 다른 광산산업의 자금이 어떻게 문화계로 흘러들어가고 있는지 보았다. 작게는 일상생활부터 크게는 정치권력까지,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다. 눈이 부실 정도다.

결론
우리는 균사체(mycelium)처럼 행동하며 자원을 교환하고 이것이 어떻게 상호유익한지를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함께 겪고 있다. 수십년에 걸친 식민지, 가부장제, 자원착취 및 자본주의 권력 시스템의 폐허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서로가 힘을 합쳐야 한다. 이러한 구조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 스스로 대체구조를 키워내야 한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집어갈 수 있도록 포자를 남겨두는 것 정도는 명심하자…



Precarity as the new (ab)normal

The book ‘Mushroom at the End of the World, on Life in Capitalist Ruins’ by Anna Tsing is a beautiful entanglement of theory (philosophy, anthropology) and stories of nature, –including humans– that takes the Japanese matsutake mushroom as a starting point. This mushroom is a symbol for resilience in our environmentally apocalyptic times in the book; a species that continues to grow in deforested areas, even being the first thing to grow back after the nuclear disaster in Japan. This book opened my eyes to precarity as a condition for creation in times of the climate crisis (and all sorts of connected crises, including Covid-19), understanding how species (including humans) finding each other for interconnected and collaborative survival will experience mutually beneficial exchange. In the light of the climate collapsing and more zoonotic diseases to come (because we keep on encroaching on the natural habitat of species -think of deforestation or large-scale meat-industry), I believe this pandemic is only the beginning. As artists, arts organisations we need to increase our flexibility and manoeuvrability to withstand the changes ahead of us. The arts and culture are our most important skills to do this: here we learn how to be creative and think of innovative solutions. In the arts we make, we improvise and tell a story, here we can use our imagination. Crucial survival skills for our future.

We need to decentralise to create space: improving peripheries, rural communities, alternative financial systems, alternative systems of living and working together (such as the co-ops) and the collective ownership of the commons. We need to think interdisciplinary, form strategic alliances. We are not each others competitor: we are co-dependent. There are possible ways of living and working, even to thrive, at the fringes of our capitalist system (which often seems impossible in a world that evolves so much about money and competition). Tsing provided the theory for what I had been trying to do since 2012. It was that year that we started growing our own network, called the Green Art Lab Alliance. We called our partnership a ‘knowledge alliance’ and we all wanted to learn about the potential of the arts, –often precarious in itself– to talk to audiences and work with artists on social and environmental issues. We were painfully aware of our own carbon impact, building exhibitions, lighting theatres, warming dance-studios, organising festivals and flying around the world visiting Biennales. How we should go about reducing our carbon footprint as cultural organisations? How do we create space for artists to engage with an issue as complex as the climate crisis? The alliance was our hook to start answering these questions.

Understanding Your Carbon Footprint
The first three years of the Green Art Lab were foundational years for the network where we did some incredible projects and became friends, and most importantly gained trust. But in 2015 I was still missing something, feeling more and more that my Western university education had failed me and kept me locked-up in a Eurocentric worldview. The more I understood how complex and all-encompassing the climate crisis is, the stronger I felt I needed to go beyond CO2, technology and innovations, and complement the science with something more abstract. For two years I did over 250 interviews in Asia with artists, curators and academics about anti-coloniality, ancestrality, spirituality and our relationship to the land.

Language and Coloniality
According to Vandana Shiva, monoculture of the language, leads to monoculture of the mind. At times we bashed against the walls of the restrictions of our capability to translate concepts; after all, language is not just representation, it shapes our understanding of the world surrounding us. To which extent is the language, or rather, the translation of concepts, responsible for this inability to see and react to the present environmental crisis? It’s a complex web of interrelationships that needs a holistic, multisensorial and multidimensional approach, including new images, concepts and other languages that can address these issues altogether. Terms such as global warming, the Anthropocene, sustainability, climate disaster, have all been attempts to create umbrella-terms that assist us to apprehend these concepts, some more successful in doing so than others.

South-America
The importance of indigenous knowledge of the natural world became more and more clear to me, parallel with the realisation of how political regimes, particularly in South-America, were structurally undervaluing these communities and cosmologies. Within a few months in Brazil I started to understand the word urgency. In August, I attended a residency programme (Labverde) in the Amazon during the time when the rainforest was on fire. It rained thick drops of black water all the way in São Paulo because of the smoke. In September a huge ongoing oil spill was polluting over 2250 km of coastline in the Northeast. Brazilian researcher Alexis Milonopoulos taught me the deafening silence of a monoculture: a complete lack of birds and insects due to agrotoxics. At times I felt dirty with the privileges that were given to me because of the colour of my skin. I saw how entangled the cultural sector is with the funding from fossil fuel and other mining industries. Everything was so complex, from the daily micro to the political macro, it was dazzling.

Conclusion
We need to act like a mycelium, exchanging resources and realising how this is mutually beneficial. We are in this together, we need each other in these capitalist ruins, a system which is the result of decades and decades of colonial, patriarchal, extractivist and capitalist systems of power. If these structures don’t serve us, we better start growing and building these alternative structures ourselves. Just don’t forget to leave some spores for others to pick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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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KOREAN CURATORS

DAY 09  2020.10.13 10 KOREAN CURATORS

독립 큐레이터
Independent Curator

(비)정상이 되버린 불안감

애나 칭의 책 ‘세상 끝의 버섯’은 일본 송이버섯을 출발점으로 삼는 이론(철학, 인류학)과 자연의 이야기간의 아름다운 얽힘에 관한 내용이다. 이 책에서의 버섯은 환경적으로 종말론적인 시기에 복원력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일본 원전 사고 이후 망가진 숲에서 가장 먼저 다시 자라는 종이다. 이 책은 기후 위기(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를 포함한 관련된 모든 종류의 위기) 시대에 창조를 위한 조건으로서, 상호 연결되고 협력적인 생존을 위해 어떻게 서로 유익한 교환을 해줄 종(種, 인간 포함)을 찾을 것인지에 대한 불안감을 이해하게 해주었다. 앞으로 무너질 기후와 다가올 동물성 질병들을 비추어 볼때, 나는 이 팬데믹이 시작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무분별한 삼림벌채나 대규모 육류 산업 등, 우리가 종의 자연 서식지를 계속해서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술가, 예술 단체로서 우리 앞에 놓인 변화를 견디기 위해 유연성과 기동력을 높여야만 한다. 예술과 문화는 이를 위한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 여기서 우리는 창의적인 방법을 배우고, 혁신적인 솔루션을 생각한다. 우리가 만드는 예술에서 우리는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하며 상상력을 사용할 수 있다. 이는 미래를 위한 중요한 생존기술이다.

공간을 만들려면 주변 지역, 농촌 공도체, 대체 금융 시스템, 협동조합 같은 생활과 협력의 대체 시스템, 공유지의 공동 소유권과 같은 분권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학제적으로 접근해야하고 전략적 동맹을 형성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 경쟁자가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의 변두리에서 살아가고 일할 수있는 방법 (돈과 경쟁을 중심으로 너무 많이 돌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이것이 종종 불가능해 보이지만)은 존재한다. 애나 칭은 2012년부터 내가 하고자 했던 것에 대한 이론을 제공해주었다. 당시는 우리 자체 네트워크인 그린아트랩 얼라이언스(Green Art Lab Alliance)를 시작한 해이다. 우리의 파트너쉽을 ‘지식 동맹’이라고 불렀고, 우리 모두는 그 자체로도 불안정한 예술의 잠재력에 대해 배워 관객과 이야기하고 예술가와 사회 및 환경문제에 대해 작업하고 싶었다. 우리는 건축 시공, 시네마 조명, 댄스 스튜디오 난방, 페스티벌 운영, 항공 운항 등 탄소 배출에 대한 고통스런 진실을 잘 알고 있다. 문화 단체로서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방법은 무엇이 있으까? 예술가들이 기후 위기만큼 복잡한 문제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어떻게 만들까? 우리의 동맹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시작하는 하나의 연결 고리였다.

탄소 발자국 이해하기
첫 3년간의 그린아트랩은 몇가지 굉장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되면서 신뢰를 얻게 되고, 친구들을 만들면서 네트워크의 기초가 되었다. 그러나 2015년에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고 느꼈고, 서양의 대학교육 과정이 나를 점점유럽중심적 세계관에 가두어두고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기후위기가 얼마나 복잡하고 포괄적인 문제인지 이해하면 할수록 이산화탄소, 테크놀로지 및 혁신을 넘어서 더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무엇으로 과학을 보완해야함을 느꼈다. 2년동안 나는 아시아에서 예술가, 큐레이터, 학계의 인사들과 함께 반식민지성, 선조성, 정신성 그리고 땅에 대한 우리의 관계에 대한 학문에 대해 250회 이상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언어와 식민지
반다나 시바에 따르면 특정 언어가 만든 하나의 문화는 획일화된 문화(monoculture)란 정신의 단일경작(monoculture of the mind)로 이어진다. 우리는 때때로 개념을 번역하는 능력의 한계에 부딪혔다. 결국 언어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이해를 형성한다. 현재 환경 위기를 보고 대응할 수 없는 이유는 언어 또는 개념의 번역 때문일까? 이것은 이런 문제들을 전부 짚어줄 수 있는 새로운 이미지, 개념 및 기타 언어를 포함한 다감각적, 다차원적인 접근방식이 필요한 복잡한 상호관계 그물망이라고 할 수 있다. 지구온난화, 인류세, 지속가능성, 기후재난과 같은 용어들 또한 우리가 이러한 개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포괄적 언어를 만들려는 시도였다.

남아메리카
남미의 정치체제가 어떻게 구조적으로 지역사회와 우주론을 낮게 평가했는지를 알게 되면서 자연계에 대한 현지 지식의 중요성은 나에게 점점 분명해졌다. 나는 브라질에서 몇달만에 ‘위급’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열대우림에 불이 났던 8월에는 아마존에 있는 레지던시 프로그램(Labverde)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연기 때문에 생성된 짙은 검은 빗물이 상파울루 전역에 쏟아져 내렸다. 9 월에는 여전히 진행중인 대규모 기름유출이 북동부 해안선 2250km 이상을 오염시켰다. 브라질 연구원인 알렉시스 밀로노폴로스는 독성 물질로 완벽하게 사라진 새와 곤충의 부재가 낳은 완벽한 정적을 설명해줬다. 나는 내 피부색 때문에 내게 주어진 특권에 더러움을 느꼈다. 화석연료와 다른 광산산업의 자금이 어떻게 문화계로 흘러들어가고 있는지 보았다. 작게는 일상생활부터 크게는 정치권력까지,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다. 눈이 부실 정도다.

결론
우리는 균사체(mycelium)처럼 행동하며 자원을 교환하고 이것이 어떻게 상호유익한지를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함께 겪고 있다. 수십년에 걸친 식민지, 가부장제, 자원착취 및 자본주의 권력 시스템의 폐허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서로가 힘을 합쳐야 한다. 이러한 구조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 스스로 대체구조를 키워내야 한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집어갈 수 있도록 포자를 남겨두는 것 정도는 명심하자…



Precarity as the new (ab)normal

The book ‘Mushroom at the End of the World, on Life in Capitalist Ruins’ by Anna Tsing is a beautiful entanglement of theory (philosophy, anthropology) and stories of nature, –including humans– that takes the Japanese matsutake mushroom as a starting point. This mushroom is a symbol for resilience in our environmentally apocalyptic times in the book; a species that continues to grow in deforested areas, even being the first thing to grow back after the nuclear disaster in Japan. This book opened my eyes to precarity as a condition for creation in times of the climate crisis (and all sorts of connected crises, including Covid-19), understanding how species (including humans) finding each other for interconnected and collaborative survival will experience mutually beneficial exchange. In the light of the climate collapsing and more zoonotic diseases to come (because we keep on encroaching on the natural habitat of species -think of deforestation or large-scale meat-industry), I believe this pandemic is only the beginning. As artists, arts organisations we need to increase our flexibility and manoeuvrability to withstand the changes ahead of us. The arts and culture are our most important skills to do this: here we learn how to be creative and think of innovative solutions. In the arts we make, we improvise and tell a story, here we can use our imagination. Crucial survival skills for our future.

We need to decentralise to create space: improving peripheries, rural communities, alternative financial systems, alternative systems of living and working together (such as the co-ops) and the collective ownership of the commons. We need to think interdisciplinary, form strategic alliances. We are not each others competitor: we are co-dependent. There are possible ways of living and working, even to thrive, at the fringes of our capitalist system (which often seems impossible in a world that evolves so much about money and competition). Tsing provided the theory for what I had been trying to do since 2012. It was that year that we started growing our own network, called the Green Art Lab Alliance. We called our partnership a ‘knowledge alliance’ and we all wanted to learn about the potential of the arts, –often precarious in itself– to talk to audiences and work with artists on social and environmental issues. We were painfully aware of our own carbon impact, building exhibitions, lighting theatres, warming dance-studios, organising festivals and flying around the world visiting Biennales. How we should go about reducing our carbon footprint as cultural organisations? How do we create space for artists to engage with an issue as complex as the climate crisis? The alliance was our hook to start answering these questions.

Understanding Your Carbon Footprint
The first three years of the Green Art Lab were foundational years for the network where we did some incredible projects and became friends, and most importantly gained trust. But in 2015 I was still missing something, feeling more and more that my Western university education had failed me and kept me locked-up in a Eurocentric worldview. The more I understood how complex and all-encompassing the climate crisis is, the stronger I felt I needed to go beyond CO2, technology and innovations, and complement the science with something more abstract. For two years I did over 250 interviews in Asia with artists, curators and academics about anti-coloniality, ancestrality, spirituality and our relationship to the land.

Language and Coloniality
According to Vandana Shiva, monoculture of the language, leads to monoculture of the mind. At times we bashed against the walls of the restrictions of our capability to translate concepts; after all, language is not just representation, it shapes our understanding of the world surrounding us. To which extent is the language, or rather, the translation of concepts, responsible for this inability to see and react to the present environmental crisis? It’s a complex web of interrelationships that needs a holistic, multisensorial and multidimensional approach, including new images, concepts and other languages that can address these issues altogether. Terms such as global warming, the Anthropocene, sustainability, climate disaster, have all been attempts to create umbrella-terms that assist us to apprehend these concepts, some more successful in doing so than others.

South-America
The importance of indigenous knowledge of the natural world became more and more clear to me, parallel with the realisation of how political regimes, particularly in South-America, were structurally undervaluing these communities and cosmologies. Within a few months in Brazil I started to understand the word urgency. In August, I attended a residency programme (Labverde) in the Amazon during the time when the rainforest was on fire. It rained thick drops of black water all the way in São Paulo because of the smoke. In September a huge ongoing oil spill was polluting over 2250 km of coastline in the Northeast. Brazilian researcher Alexis Milonopoulos taught me the deafening silence of a monoculture: a complete lack of birds and insects due to agrotoxics. At times I felt dirty with the privileges that were given to me because of the colour of my skin. I saw how entangled the cultural sector is with the funding from fossil fuel and other mining industries. Everything was so complex, from the daily micro to the political macro, it was dazzling.

Conclusion
We need to act like a mycelium, exchanging resources and realising how this is mutually beneficial. We are in this together, we need each other in these capitalist ruins, a system which is the result of decades and decades of colonial, patriarchal, extractivist and capitalist systems of power. If these structures don’t serve us, we better start growing and building these alternative structures ourselves. Just don’t forget to leave some spores for others to pick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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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것, 변하지 않는 것?

코로나19로 인한 급격한 물리적, 공간적 단절은 미술 전시를 만드는 일에도 큰 타격을 안겼습니다. 국경을 넘나드는 작품 운송은 위기 극복을 위한 자원의 이동과 분배에 비해 우선순위 상에서 뒤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작가들이 외국을 방문하거나, 반대로 외국 작가들이 한국을 방문하는데도 제약이 커졌습니다. 이미 예정된 전시들은 외국 작가들의 방문을 취소하고, 퍼포먼스나 현장 진행 작업은 디지털로 전송 가능한 영상 작업으로 교체하기도 합니다. 기획을 맡은 외국인 큐레이터의 입국이 어려워 한국 현지 어시스턴트와 코디네이터들이 큐레이터와 영상 통화를 주고받으며 공간 구성을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지 못한 불편입니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도 우리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편리한 물리적 교류를 누렸습니다. 불과 100년, 200년 전의 예술 교류를 상상해봅시다. 그때는 편지 한 통을 주고받는데도 몇 개월이 걸렸습니다. 작품을 직접 보고 작가와 만나기 위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기도 했죠.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서로에 대한 ‘신뢰’가 아닐까 합니다.

물리적 거리두기가 강제되는 지금, 예술 감상을 위한 공간은 디지털과 비대면을 거부하는 마지막 보루로 남아있는 게 아닐지 생각하게 됩니다. 비물질성을 기반으로 한 예술 감상 활동이 점차 활발해지고 있지만, 많은 경우 물리적 공간에서 이미 예술 감상을 겪은 경험을 가정하고 이뤄지는 듯합니다. 심지어, 결과적으로는 평면 화면을 통해 감상하게 되는 가상 공간 안에 물리적 전시 공간을 ‘재연’하려는 시도가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생산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보다 생산적인 시도라면 물리적인 것을 비물질로 재연하는 대신, 비물질적인 것에 대한 감각에서부터 출발하는 무언가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확산될 ‘개인화된 경험’이 마냥 좋은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현대 미술은 그저 감동적인 작품으로만 이뤄진 게 아니라 예술의 가치에 대한 암묵적 합의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 지구를 대상으로 하는 포털 서비스와 SNS가 제공하는 ‘개인화된’ 입장들의 편파성 덕분에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에서의 우선순위도 변화를 겪고 있는 걸까요? 그전에, 애초에 예술에서의 우선순위는 무엇이었을까요? 반동적이고 보수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예술을 향유하고 감상하는 방식과 예술을 창조하고 보여주는 방식이 변하더라도 거기에 내재한 우선순위는 변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외려, 일시적인 (어쩌면 영속적인) 현실적 제약으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표면적 변화들을 내재적 우선순위의 변화와 혼동하지 않도록 애써야 하지 않을까요. 또한, 예술 창작과 감상, 유통의 우선순위 변화 가운데서도 크게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팬데믹 시대에 정부의 역할과 정책, 기업의 사회적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여러 선진국에 비해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예술 창작에 대한 공공 기금 지원은 풍족한 편입니다. 다만 우려되는 점은 코로나19 상황에 직면한 지금, 예술이 재난 상황에서 자신의 즉각적 효용을 증명하도록 요구받고 있지는 않는지에 대한 걱정입니다. 기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이 단발성 홍보나 장기적 연구 개발에 투여하는 자본의 크기 비하면 예술에 대한 지원은 그 규모에 비해 결코 작지 않은 성과를 안겨줍니다. 다만, 이를 수행함에 있어 예술 지원 활동이 즉각적 성과를 산출해야 하는 홍보 행위가 아니라 새로운 자동차나 플랫폼, 반도체를 개발할 때처럼 장기적 차원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연구 혹은 개발이라고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What changes, what doesn’t change?

Swift physical and spatial disconnection as a result of Covid-19 has dealt a severe blow to the work of creating art exhibitions. Inevitably, transportation and distribution resources for beating the crisis have taken precedence over the transport of works of art across borders. The restrictions with regard to Korean artists visiting foreign countries and vice versa have significantly increased. Visits by international artists to planned exhibits have been cancelled, while performances and site-specific works have been replaced with videos that can be digitally transmitted. When it became difficult for international curators to enter Korea, local assistants and coordinators occasionally had to finish the spatial configuration of a show by communicating via video calls with the curators. This was an inconvenience that couldn’t be imagined prior to the pandemic. Until just a short while ago, we were able to enjoy the most convenient level of physical exchange in history. Just imagine the level of artistic interaction one or two hundred years ago—it took months even to exchange a letter. People had to sail across oceans to see artworks and meet artists. Certainly, there’s one thing that hasn’t changed, then or now; perhaps it’s the trust we have for each other.

I believe spaces for artistic appreciation are the last bastion for refusing digital and impersonal, non-face-to-face spaces at a time when physical distancing is being enforced. Although art activities based on immateriality are increasingly on the rise, there often seems to be an assumption of prior experience of appreciating art in physical spaces. There even seem to be frequent attempts at reproducing physical exhibition spaces within virtual spaces, which are ultimately viewed on flat screens. Can these attempts be considered productive? If they were productive, it might be thanks to sensibilities involving the immaterial, rather than attempting simply to reproduce physical sensations from the immaterial. In any case, I don’t believe that ‘personalized experiences’ resulting from such a process would be terribly good. Contemporary art is based on an implicit agreement on the value of art, not just artworks that are emotionally moving. We are well aware of what is happening as a result of biases arising from ‘personalized’ positions provided by globally-operated portal services and social media.

In such circumstances, are the priorities of art changing too? Furthermore, what are the priorities of art in the first place? This may seem like a reactionary, conservative take, but I believe that even if the way art is enjoyed, appreciated, created, and displayed changes, the priorities inherent in art won’t change. On the contrary, we must strive not to mistake superficial changes (which necessarily occur out of temporary—or perhaps permanent— restrictions) for changes in art’s inherent priorities. In addition, we must examine what isn’t changing drastically, despite the present challenges to artistic creation, appreciation, and distribution.

Lastly, in a time of pandemic, the role and policies of government and the social role of corporations have become more important than ever before. Although Korea still lacks infrastructure in comparison with several other developed countries, public funding for artistic creation tends to be abundant. Nonetheless, what’s worrisome is that now, with Covid-19, art may be required to prove its immediate utility. The same applies to corporations. Although corporate support for the arts might be small relative to the size of capital invested in one-off promotions or long-term research and development, it produces results far greater than the size of the investment. My hope is that activities supporting the arts are considered like research or development aimed at creating value in the long term, similar to what’s done for new vehicles, platforms, or semiconductors, rather than as promotional activities for producing immediate resul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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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것, 변하지 않는 것?

코로나19로 인한 급격한 물리적, 공간적 단절은 미술 전시를 만드는 일에도 큰 타격을 안겼습니다. 국경을 넘나드는 작품 운송은 위기 극복을 위한 자원의 이동과 분배에 비해 우선순위 상에서 뒤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작가들이 외국을 방문하거나, 반대로 외국 작가들이 한국을 방문하는데도 제약이 커졌습니다. 이미 예정된 전시들은 외국 작가들의 방문을 취소하고, 퍼포먼스나 현장 진행 작업은 디지털로 전송 가능한 영상 작업으로 교체하기도 합니다. 기획을 맡은 외국인 큐레이터의 입국이 어려워 한국 현지 어시스턴트와 코디네이터들이 큐레이터와 영상 통화를 주고받으며 공간 구성을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지 못한 불편입니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도 우리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편리한 물리적 교류를 누렸습니다. 불과 100년, 200년 전의 예술 교류를 상상해봅시다. 그때는 편지 한 통을 주고받는데도 몇 개월이 걸렸습니다. 작품을 직접 보고 작가와 만나기 위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기도 했죠.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서로에 대한 ‘신뢰’가 아닐까 합니다.

물리적 거리두기가 강제되는 지금, 예술 감상을 위한 공간은 디지털과 비대면을 거부하는 마지막 보루로 남아있는 게 아닐지 생각하게 됩니다. 비물질성을 기반으로 한 예술 감상 활동이 점차 활발해지고 있지만, 많은 경우 물리적 공간에서 이미 예술 감상을 겪은 경험을 가정하고 이뤄지는 듯합니다. 심지어, 결과적으로는 평면 화면을 통해 감상하게 되는 가상 공간 안에 물리적 전시 공간을 ‘재연’하려는 시도가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생산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보다 생산적인 시도라면 물리적인 것을 비물질로 재연하는 대신, 비물질적인 것에 대한 감각에서부터 출발하는 무언가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확산될 ‘개인화된 경험’이 마냥 좋은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현대 미술은 그저 감동적인 작품으로만 이뤄진 게 아니라 예술의 가치에 대한 암묵적 합의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 지구를 대상으로 하는 포털 서비스와 SNS가 제공하는 ‘개인화된’ 입장들의 편파성 덕분에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에서의 우선순위도 변화를 겪고 있는 걸까요? 그전에, 애초에 예술에서의 우선순위는 무엇이었을까요? 반동적이고 보수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예술을 향유하고 감상하는 방식과 예술을 창조하고 보여주는 방식이 변하더라도 거기에 내재한 우선순위는 변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외려, 일시적인 (어쩌면 영속적인) 현실적 제약으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표면적 변화들을 내재적 우선순위의 변화와 혼동하지 않도록 애써야 하지 않을까요. 또한, 예술 창작과 감상, 유통의 우선순위 변화 가운데서도 크게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팬데믹 시대에 정부의 역할과 정책, 기업의 사회적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여러 선진국에 비해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예술 창작에 대한 공공 기금 지원은 풍족한 편입니다. 다만 우려되는 점은 코로나19 상황에 직면한 지금, 예술이 재난 상황에서 자신의 즉각적 효용을 증명하도록 요구받고 있지는 않는지에 대한 걱정입니다. 기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이 단발성 홍보나 장기적 연구 개발에 투여하는 자본의 크기 비하면 예술에 대한 지원은 그 규모에 비해 결코 작지 않은 성과를 안겨줍니다. 다만, 이를 수행함에 있어 예술 지원 활동이 즉각적 성과를 산출해야 하는 홍보 행위가 아니라 새로운 자동차나 플랫폼, 반도체를 개발할 때처럼 장기적 차원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연구 혹은 개발이라고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What changes, what doesn’t change?

Swift physical and spatial disconnection as a result of Covid-19 has dealt a severe blow to the work of creating art exhibitions. Inevitably, transportation and distribution resources for beating the crisis have taken precedence over the transport of works of art across borders. The restrictions with regard to Korean artists visiting foreign countries and vice versa have significantly increased. Visits by international artists to planned exhibits have been cancelled, while performances and site-specific works have been replaced with videos that can be digitally transmitted. When it became difficult for international curators to enter Korea, local assistants and coordinators occasionally had to finish the spatial configuration of a show by communicating via video calls with the curators. This was an inconvenience that couldn’t be imagined prior to the pandemic. Until just a short while ago, we were able to enjoy the most convenient level of physical exchange in history. Just imagine the level of artistic interaction one or two hundred years ago—it took months even to exchange a letter. People had to sail across oceans to see artworks and meet artists. Certainly, there’s one thing that hasn’t changed, then or now; perhaps it’s the trust we have for each other.

I believe spaces for artistic appreciation are the last bastion for refusing digital and impersonal, non-face-to-face spaces at a time when physical distancing is being enforced. Although art activities based on immateriality are increasingly on the rise, there often seems to be an assumption of prior experience of appreciating art in physical spaces. There even seem to be frequent attempts at reproducing physical exhibition spaces within virtual spaces, which are ultimately viewed on flat screens. Can these attempts be considered productive? If they were productive, it might be thanks to sensibilities involving the immaterial, rather than attempting simply to reproduce physical sensations from the immaterial. In any case, I don’t believe that ‘personalized experiences’ resulting from such a process would be terribly good. Contemporary art is based on an implicit agreement on the value of art, not just artworks that are emotionally moving. We are well aware of what is happening as a result of biases arising from ‘personalized’ positions provided by globally-operated portal services and social media.

In such circumstances, are the priorities of art changing too? Furthermore, what are the priorities of art in the first place? This may seem like a reactionary, conservative take, but I believe that even if the way art is enjoyed, appreciated, created, and displayed changes, the priorities inherent in art won’t change. On the contrary, we must strive not to mistake superficial changes (which necessarily occur out of temporary—or perhaps permanent— restrictions) for changes in art’s inherent priorities. In addition, we must examine what isn’t changing drastically, despite the present challenges to artistic creation, appreciation, and distribution.

Lastly, in a time of pandemic, the role and policies of government and the social role of corporations have become more important than ever before. Although Korea still lacks infrastructure in comparison with several other developed countries, public funding for artistic creation tends to be abundant. Nonetheless, what’s worrisome is that now, with Covid-19, art may be required to prove its immediate utility. The same applies to corporations. Although corporate support for the arts might be small relative to the size of capital invested in one-off promotions or long-term research and development, it produces results far greater than the size of the investment. My hope is that activities supporting the arts are considered like research or development aimed at creating value in the long term, similar to what’s done for new vehicles, platforms, or semiconductors, rather than as promotional activities for producing immediate resul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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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0     2020.10.14 10 GLOBAL CURATORS

DAY 10  2020.10.14 10 GLOBAL CURATORS

서펜타인 갤러리 최고기술 책임자
Chief Technology Officer
of the Serpentine galleries in London

선진 기술들이 예술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서펜타인의 미래 예술 생태계 보고서에서 도출한 3가지 핵심 인사이트


COVID-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휩쓴 이래로, 예술 조직들은 디지털 영역으로의 강제 이주 문제와 씨름하는 동시에 새로운 현실의 요구에 맞추려고 자신들의 내부 운영을 재편성하고 있다. 예산은 동결되고, 직원은 휴가를 떠나고, 프로그램과 전시는 연기되거나 취소됐으며, 비즈니스 계획 및 기금조성 캠페인은 심각하게 쇠퇴해버렸다.

현대 예술 분야가 물리적 공간에 크게 의존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개인적 네트워크화, 국경의 횡단, 봉쇄령은 예술의 굉장한 붕괴를 시사한다. 하지만 COVID-19는 전례가 없는 것인 동시에 근본적 문제들을 표면화시켜 왔으며 우리가 예술 부문의 미래에 관한 일련의 불편한 현실 및 심각한 문제들에 직면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7월에 서펜타인 갤러리는 전략 스튜디오인 Rival Strategy와 협력해 작성한 “미래 예술 생태계: 예술 X 선진 기술들”이란 보고서를 발표했으며, 여러 기술들이 예술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것은 가까운 미래에 예술 부분을 재건하기 위한 대안적 제안들을 제시했다..

디지털 공간 즉, 일시적으로 유일한 가용 공간을 수용하려는 쟁탈전을 통해, 오프라인 프로그래밍을 온라인에 반영하는 전략이 위험하며, 반드시 질 좋은 결과 및 바람직한 수준의 참여를 유도하지는 못한다는 점이 밝혀졌다. 예술이 일반적으로 다른 부분들에 비해, 투자 부족 및 디지털계에 대한 느린 적응 문제에 시달려온 것은 분명하며 물리적인 갤러리의 일시적인 분산화만으로, AR와 VR 같은 선진 기술들이 예술의 경험에 대한 대안적 경로를 형성하는 데 주된 역할을 한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여러 갤러리들은 현재 재개장 중이지만, 신뢰할 만한 백신과 치료법이 없고봉쇄령이 반복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장기적인 생존과 타당성을 위해 진지한 변화가 필요함은 분명한 사실이다. 여러 전시들과 아트 페어들이 디지털화되고 문화적 경험들이 평면화됨에 따라, 당면한 도전과제는 넥플릭스, 포트나이트, 애니멀 크로싱 같은 부류의 것들과 관객의 관심을 끌려고 경쟁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 조직의 입장을 전환할 필요성은 실존적 필수 사항이 되었다. 어떤 기관도 아직 힘(과 예산)을 모아서 공유되는 온라인 프로그래밍으로 트래픽(소통량)을 몰지 않는다는 사실은 예술 부문에 필요한 전략적 사고의 부재에 대한 하나의 예일 뿐이다.

지난 몇 년 간, 예술 산업 안팎에서 예술을 위한 신기술들 즉, 애플의 아트 워크(AR]T Walks, Hauser & Wirth의 아트랩(ArtLab), teamLab Borderless 박물관, 그리고 그룹전과 비엔날레에서 집중 소개된 다양한 VR 예술 작품들의 개발에 대한 참여와 투자가 빠르게 증가해 왔다. 이번에 달라 보이는 점은 조율되고 있는 인프라의 변화와 ‘기술 제일주의’ 접근법으로 인한 여러 산업들에 걸친 중첩된 변화이다.

우리가 우리 예술계들의 모든 층들이 적극적, 필수적인 개정에 직면한 역사적 순간에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술가들에 의한 선진 기술의 이용 및 고유의 현대 예술 인프라 개발 면에서 기술 부문에 대한 관심의 증가로, 우리가 알고 있던 (그리고 아마도 당연한 것으로 여겼을) 예술의 체계가 불안정해지고 있다.

아래에서 우리는 우리의 보고서가 예술과 선진 기술간의 인터페이스(접촉면)이 향후 10년 간 어떻게 형성될지에 대해 제시한 세 가지 비독점적 모델들과 그 모델들이 현재의 상황에 제기하는 심각한 의문점을 요약한다.


1. 예술은 기술 부문을 위한 기회의 원천일 수 있었다.
오늘 날, 기술 관련 회사들이 자신들의 시장 지분을 확대하고 중기 수익 전망을 충족하기 위해 기존의 산업을 흡수하려 함에 따라, 기술 부분은 금융, 의료, 교육으로 확장되고 있다. 가령, 아마존은 내년에 의료 분야로 진입할 입장이며, 이런 사실은 뉴욕대 마케팅학과 교수인 Scott Gallowy가 디지털-라이프-디자인 회의인 ‘코로나 이후 네 명의 기수’에서 했던 최근 발언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문화 부문, 특히 역사적 지식의 저장소이자 현대의 틈새 경험들의 생산자인 문화유산 기관들의 통합을 보게 될 것으로 예측한다. 선진 생물공학의 시대에, 가령, 자연사 박물관들은 사라진 종의 관리부터 방대한 생물학적 데이터 창고까지 동일한 중심축(pivot)에 직면하며, 이 중심축으로부터 적극적인 과학적 탐구와 생물공학 스타트업이 발전할 수 있다. 아마존의 영국 및 아일랜드 지점장인 David Gurr가 런던 내 국립 역사 박물관의 소장으로 임명된 것은 보다 탄탄한 연대와 잠재적 중심축들의 방향으로 지향하는 한 걸음으로 볼 수 있다.

아니면 기술은 그것인 엔터테인먼트부문을 배경으로 고유의 문화 인프라를 구축할까? 구글, 애플, 삼성, HTC는 모두 맞춤형 문화 프로그램이나 기관들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 왔다. 하지만 문화 프로그램들이 성공하려면, 상업적 가치 명제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매입을 해야 한다. 거대 기술에 대한 대중의 의심이 증가하는 점을 감안하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가능하다. 대중 예술 조직들 및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위상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작업을 지속할 현실성 있는 전략들을 떠올릴 수 있을까?


2. 야심 찬 대규모 예술 프로젝트들은 곧 돈을 지불하는 대중을 직접 따르게 될 수 있다.

우리의 보고서를 통해, 예술-기술 지평 상에서 새로운 유형의 활동 기관 (actor) 즉, 아트 스택(예술 더미)를 식별한다. 아트 스택은 수직으로 통합된 아틀리에로서, 전통적인 아틀리에보다는 기업을 닮아 있다. 전문 인력을 고용하고, 맞춤형 기술들과 비즈니스 모델들을 개발하는 아트 스택들은 대다수 전통적인 예술 기관보다 더 나은 민첩성과 자본을 보유한 매력적인 혼종(하이브리드)에 해당한다. 이런 예로는 Pace X를 곧 재분지화해(rearticulate) 공표될 teamLab, Acute Art, Refik Anadol’s 와Jakob Kudsk Steensen’s 같은 예술적 관습들의 초기 단계의 잠재적인 것들이 있다.

예술적 관습과 제도적 제공품(offering)의 스케일링(규모 조정)은 아트 스택 모델의 핵심이다. 스케일링은 기술 산업과의 보다 수평적 관계를 위해 요구되기도 하지만, 스케일링은 좋은 예술이 일반적으로 인정받는 세련됨과 뉘앙스를 축소할 위험을 수반한다. 창조적 스케일링은 예술 조직과 예술가들이 그 자체로 추구할 대상이 될 수 있을까?


3. 예술은 전략적 문화 자산이다.

대중 예술 분야의 역사적 가치를 이처럼 변화가 가속화되는 순간에 어떻게 보존하고 강화할까? 한 가지 경로는 경제학자이자 런던 대학의 혁신 및 대중 목적 연구소의 설립자인 Marianna Mazzucato 등이 지지하는, 혁신과 대중의 이익에 대한 보다 전체론적이고 목표 지향적 접근법에서 예술의 역할을 고려하는 것이다. 창의적 연구 및 개발을 위한 예술의 잠재성을 사회적으로 파괴적인 기술들을 중심으로 한 가치에 대한 보다 체계적 이해의 필요성에 조합하면, 두 세계를 이을 다리로서 예술에 대한 새로운 전망이 열린다.

역사적으로, 예술 분야는 영향을 측정하기 위한 측정 기준을 토대로 작품을 평가하는 것을 경계해 왔으며, 이러한 거부로 인해 국가 및 민간 기금 단체들이 예술의 틀을 잡고 이행하는 데 대한 여러 말들도 감소했다. 만일 문화 인프라가 변형될 것이라면, 측정 체계는 그 자체로 혁신의 영역이 되어야 한다. 보다 전체론적 방식으로 측정의 영향을 이해하는 것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통해, ‘측정 기준’이라는 긴장감이 팽배한 문제를 결국 정면으로 맞서 해결해야 한다. 이는 사실상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겉모습만 바꾸는 상식을 피하기 위함이다.

21세기에 완전한 기능을 갖춘 문화 인프라를 지향하는 경로는 암묵적 가설, 내재적 편향성, 결정적으로 기존 예술계의 실질적 투자와 변화에 대한 정직한 의문제기를 요한다. 여러 나라들이 자신들의 문화 산업에 대한 상당한 구제 기금을 발행하고 있는 순간에 보다 선경지명적인 한 가지 질문이 있다. 즉, 재건에 투자해야 하는가 아니면 구제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아마도 가장 중요한 선택 사항일 것이다.

이런 개발 중 어떤 개발을 통해서도, 예술 업계가 필연적으로 힘든 역사의 시기를 거치기 시작하는 동안 직면하는 여러 도전과제에 대해 바로 이행 가능한 해법은 제시하지 못한다. 하지만 선진 기술이 예술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이런 질문 과정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오늘 날 예술 분야가 운영되는 토대가 되는 기본 인프라와 플랫폼들이 중장기적인 예술의 궤적과 잠재성을 정의하는 데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여러 시스템들을 재정의 및 구축하는 다른 산업들과 ‘외부 요인’들이 존재하며, 적극적 입장을 취하기 위한 협의된 조치가 없다면, 예술 분야는 다른 산업 및 외부 요인에 의해 재구성될 것이다. 오늘 날 존재하는 예술 생태계는 이런 개발에 대한 그런 조치를 보고, 이해하고, 판단해야 하며, 그래야만 예술 생태계에 맞는 판단이 내려질 것이다.



How Will Advanced Technologies Impact the Art World?
3 Takeaways From the Serpentine’s Future Art Ecosystems Report


Since the COVID-19 pandemic swept the world, arts organizations have been grappling with a forced migration to the digital realm, while simultaneously reorganizing their internal operations to meet the demands of a new reality. Budgets were frozen, staff put on furlough, programs and exhibitions postponed or canceled, and business plans and fundraising campaigns were severely undermined.

Given the contemporary art field’s heavy reliance on physical spaces, in-person networking, and crossing of borders, lockdown presents a devastating disruption. But while COVID-19 may be unprecedented, it has brought to the surface underlying issues and forced us to face a series of uncomfortable realities and big questions concerning the future of the sector.

In July, the Serpentine Galleries launched the “Future Art Ecosystems: Art x Advanced Technologies” report, produced in collaboration with the strategy studio Rival Strategy, and focused on technologies’ impact on the arts. It offers alternative propositions for rebuilding the sector in the near future.

The scramble to embrace the digital space as—temporarily—the only site available has made clear that a strategy of mirroring offline programming online is risky, and doesn’t necessarily yield quality results or the desired levels of engagement. It’s clear that the arts have generally suffered from underinvestment and slow adaptation to the digital world in comparison to other sectors, even as the temporary de-centering of the physical gallery has made it obvious that advanced technologies such as AR and VR have a major role to play in shaping alternative pathways to experiencing art.

Galleries are now reopening, but without a reliable vaccine or treatment and with the specter of repeat lockdowns looming, it’s clear that a serious change is necessary for longer-term survival and relevance. As exhibitions and art fairs go digital and cultural experiences flatten, the immediate challenge is in competing for audience attention with the likes of Netflix, Fortnite, and Animal Crossing. The need to reposition the art organization within this landscape is an existential necessity. The fact that no institutions have yet joined forces (and budgets) to drive traffic to shared online programming is just one example of a lack of necessary strategic thinking in the sector.

Over the course of the last few years there has been a rapidly increasing engagement and investment in the development new technologies for art, both within the art industry and outside of it: Apple’s [AR]T Walks, Hauser & Wirth’s ArtLab, teamLab Borderless museums, and a rash of VR artworks peppered across group shows and biennales. What seems different this time is the infrastructural change that is being orchestrated, and the overlapping transformation across industries as a result of a “technology first” approach.

It’s no exaggeration to say that we are in a moment of history in which all layers of our art systems face active and necessary revision. The use of advanced technologies by artists—and the increasing interest of the tech sector in developing its own contemporary art infrastructure—are destabilizing the systems of art as we have known them (and perhaps taken for granted).

Below, we summarize the three non-exclusive models our report offers for how the interfaces between art and advanced technologies are likely to be shaped over the next decade and the big questions that they leave for the present moment:


1. Art Could Be a Source of Opportunity for the Technology Sector
Today, the tech sector is expanding into finance, healthcare, and education as tech companies require absorption of existing industries in order to expand their market share and meet mid-term revenue projections. For example, Amazon is poised in the next year to make a major push into healthcare, as highlighted by New York University marketing professor Scott Galloway in his recent talk for the Digital-Life-Design conference, “The Four Horsemen Post-Corona.”

We should expect to see an integration of the cultural sector, specifically those heritage institutions that are either repositories of historical knowledge or producers of niche contemporary experiences. In the age of advanced biotech, for example, natural history museums face a coincidental pivot from custodians of lost species to vast biological data warehouses, from which active scientific enquiry and biotech startups can build. The recent appointment of David Gurr, the head of Amazon’s UK and Ireland operations, as the director of the National History Museum in London may be seen as a step in the direction of tighter ties and latent pivots.

Or will tech build out its own cultural infrastructure on the back of its entertainment wing? Google, Apple, Samsung, and HTC have all shown aspirations for bespoke cultural programs or institutions. However, for cultural programs to succeed, they require a buy-in that isn’t based on a commercial value proposition. Given the growing public suspicion toward big tech, the question is: Can public arts organizations and artists come up with viable strategies to keep their work going without undermining their own integrity?


2. Ambitious Large-Scale Art Projects Can Soon Be Brought Directly to the Paying Public

Our report identifies a new type of actor on the art–tech horizon: the art stack. An art stack is a vertically integrated art studio that resembles more a corporation than it does a traditional artist studio. Employing specialized staff, developing bespoke technologies and business models, art stacks present a fascinating hybrid that has more agility and capital than most traditional art institutions. Examples are teamLab, the likely soon to be announced re-articulation of Pace X, Acute Art, and the early stage potential of artistic practices such as Refik Anadol’s and Jakob Kudsk Steensen’s.

Scaling artistic practice and art institutional offerings is at the heart of the art stack model. Scaling is also what is required for a more leveled engagement with the tech industry, yet scaling carries a risk of reducing sophistication and nuance that good art is generally credited with. Could creative scaling then become a pursuit in and of itself for arts organizations and artists?


3. Art Is a Strategic Cultural Asset

How should the historical value of the public art field be preserved and strengthened in this moment of accelerated change? One path might be to consider the role of art in a more holistic and mission-oriented approach to innovation and public good, advocated by the likes of Marianna Mazzucato, an economist and the founder and director of the University College London’s Institute for Innovation and Public Purpose. Aligning art’s potential for creative research and development with the need to develop a more systemic understanding of value around societally disruptive technologies opens up a new vista for art as a bridge between worlds.

While, historically, the art field has been wary of having its work evaluated on the basis of metrics for measuring impact, this rejection is also what has led to reduced say in their framing and implementation by national and private funding bodies. If cultural infrastructure is to be transformed, systems of measurement must become an area of innovation in and of themselves. With new approaches to understanding the impact of measurement in a more holistic way, the highly charged matter of “metrics” needs to be finally tackled head on in order to evade another wave of cosmetic changes that don’t actually address the foundations.

The path toward a fully functioning 21st-century cultural infrastructure requires an honest questioning of implicit assumptions, underlying biases, and, crucially, substantial investment and transformation of existing systems of art. A question becomes ever more prescient in a moment when countries are issuing significant bailout funds to their cultural industries. Perhaps this is the biggest choice of all: to bailout or invest in rebuilding?

None of these developments represent quick-to-implement solutions to the myriad of challenges that now face the art industry as it begins to move through a necessarily challenging period of history. But what this process of interrogating the impacts of advanced technologies on the arts has shown us, is that the underlying infrastructure and the platforms on which the art field runs today are what is at stake in defining its mid- to long-term trajectory and potential.

At present, there are other industries and “outliers” that are redefining and building systems, and should there be no concerted action to take a proactive stance, the art field will be remade by them. Arts ecosystems as they exist today must either learn to see, understand, and make decisions that act on these developments, or these decisions will be made for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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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KOREAN CURATORS

DAY 10  2020.10.14 10 KOREAN CURATORS

계원예대 융합예술과 교수
Professor at Kaywon School
of Art & Design

선진 기술들이 예술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서펜타인의 미래 예술 생태계 보고서에서 도출한 3가지 핵심 인사이트


COVID-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휩쓴 이래로, 예술 조직들은 디지털 영역으로의 강제 이주 문제와 씨름하는 동시에 새로운 현실의 요구에 맞추려고 자신들의 내부 운영을 재편성하고 있다. 예산은 동결되고, 직원은 휴가를 떠나고, 프로그램과 전시는 연기되거나 취소됐으며, 비즈니스 계획 및 기금조성 캠페인은 심각하게 쇠퇴해버렸다.

현대 예술 분야가 물리적 공간에 크게 의존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개인적 네트워크화, 국경의 횡단, 봉쇄령은 예술의 굉장한 붕괴를 시사한다. 하지만 COVID-19는 전례가 없는 것인 동시에 근본적 문제들을 표면화시켜 왔으며 우리가 예술 부문의 미래에 관한 일련의 불편한 현실 및 심각한 문제들에 직면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7월에 서펜타인 갤러리는 전략 스튜디오인 Rival Strategy와 협력해 작성한 “미래 예술 생태계: 예술 X 선진 기술들”이란 보고서를 발표했으며, 여러 기술들이 예술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것은 가까운 미래에 예술 부분을 재건하기 위한 대안적 제안들을 제시했다..

디지털 공간 즉, 일시적으로 유일한 가용 공간을 수용하려는 쟁탈전을 통해, 오프라인 프로그래밍을 온라인에 반영하는 전략이 위험하며, 반드시 질 좋은 결과 및 바람직한 수준의 참여를 유도하지는 못한다는 점이 밝혀졌다. 예술이 일반적으로 다른 부분들에 비해, 투자 부족 및 디지털계에 대한 느린 적응 문제에 시달려온 것은 분명하며 물리적인 갤러리의 일시적인 분산화만으로, AR와 VR 같은 선진 기술들이 예술의 경험에 대한 대안적 경로를 형성하는 데 주된 역할을 한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여러 갤러리들은 현재 재개장 중이지만, 신뢰할 만한 백신과 치료법이 없고봉쇄령이 반복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장기적인 생존과 타당성을 위해 진지한 변화가 필요함은 분명한 사실이다. 여러 전시들과 아트 페어들이 디지털화되고 문화적 경험들이 평면화됨에 따라, 당면한 도전과제는 넥플릭스, 포트나이트, 애니멀 크로싱 같은 부류의 것들과 관객의 관심을 끌려고 경쟁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 조직의 입장을 전환할 필요성은 실존적 필수 사항이 되었다. 어떤 기관도 아직 힘(과 예산)을 모아서 공유되는 온라인 프로그래밍으로 트래픽(소통량)을 몰지 않는다는 사실은 예술 부문에 필요한 전략적 사고의 부재에 대한 하나의 예일 뿐이다.

지난 몇 년 간, 예술 산업 안팎에서 예술을 위한 신기술들 즉, 애플의 아트 워크(AR]T Walks, Hauser & Wirth의 아트랩(ArtLab), teamLab Borderless 박물관, 그리고 그룹전과 비엔날레에서 집중 소개된 다양한 VR 예술 작품들의 개발에 대한 참여와 투자가 빠르게 증가해 왔다. 이번에 달라 보이는 점은 조율되고 있는 인프라의 변화와 ‘기술 제일주의’ 접근법으로 인한 여러 산업들에 걸친 중첩된 변화이다.

우리가 우리 예술계들의 모든 층들이 적극적, 필수적인 개정에 직면한 역사적 순간에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술가들에 의한 선진 기술의 이용 및 고유의 현대 예술 인프라 개발 면에서 기술 부문에 대한 관심의 증가로, 우리가 알고 있던 (그리고 아마도 당연한 것으로 여겼을) 예술의 체계가 불안정해지고 있다.

아래에서 우리는 우리의 보고서가 예술과 선진 기술간의 인터페이스(접촉면)이 향후 10년 간 어떻게 형성될지에 대해 제시한 세 가지 비독점적 모델들과 그 모델들이 현재의 상황에 제기하는 심각한 의문점을 요약한다.


1. 예술은 기술 부문을 위한 기회의 원천일 수 있었다.
오늘 날, 기술 관련 회사들이 자신들의 시장 지분을 확대하고 중기 수익 전망을 충족하기 위해 기존의 산업을 흡수하려 함에 따라, 기술 부분은 금융, 의료, 교육으로 확장되고 있다. 가령, 아마존은 내년에 의료 분야로 진입할 입장이며, 이런 사실은 뉴욕대 마케팅학과 교수인 Scott Gallowy가 디지털-라이프-디자인 회의인 ‘코로나 이후 네 명의 기수’에서 했던 최근 발언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문화 부문, 특히 역사적 지식의 저장소이자 현대의 틈새 경험들의 생산자인 문화유산 기관들의 통합을 보게 될 것으로 예측한다. 선진 생물공학의 시대에, 가령, 자연사 박물관들은 사라진 종의 관리부터 방대한 생물학적 데이터 창고까지 동일한 중심축(pivot)에 직면하며, 이 중심축으로부터 적극적인 과학적 탐구와 생물공학 스타트업이 발전할 수 있다. 아마존의 영국 및 아일랜드 지점장인 David Gurr가 런던 내 국립 역사 박물관의 소장으로 임명된 것은 보다 탄탄한 연대와 잠재적 중심축들의 방향으로 지향하는 한 걸음으로 볼 수 있다.

아니면 기술은 그것인 엔터테인먼트부문을 배경으로 고유의 문화 인프라를 구축할까? 구글, 애플, 삼성, HTC는 모두 맞춤형 문화 프로그램이나 기관들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 왔다. 하지만 문화 프로그램들이 성공하려면, 상업적 가치 명제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매입을 해야 한다. 거대 기술에 대한 대중의 의심이 증가하는 점을 감안하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가능하다. 대중 예술 조직들 및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위상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작업을 지속할 현실성 있는 전략들을 떠올릴 수 있을까?


2. 야심 찬 대규모 예술 프로젝트들은 곧 돈을 지불하는 대중을 직접 따르게 될 수 있다.

우리의 보고서를 통해, 예술-기술 지평 상에서 새로운 유형의 활동 기관 (actor) 즉, 아트 스택(예술 더미)를 식별한다. 아트 스택은 수직으로 통합된 아틀리에로서, 전통적인 아틀리에보다는 기업을 닮아 있다. 전문 인력을 고용하고, 맞춤형 기술들과 비즈니스 모델들을 개발하는 아트 스택들은 대다수 전통적인 예술 기관보다 더 나은 민첩성과 자본을 보유한 매력적인 혼종(하이브리드)에 해당한다. 이런 예로는 Pace X를 곧 재분지화해(rearticulate) 공표될 teamLab, Acute Art, Refik Anadol’s 와Jakob Kudsk Steensen’s 같은 예술적 관습들의 초기 단계의 잠재적인 것들이 있다.

예술적 관습과 제도적 제공품(offering)의 스케일링(규모 조정)은 아트 스택 모델의 핵심이다. 스케일링은 기술 산업과의 보다 수평적 관계를 위해 요구되기도 하지만, 스케일링은 좋은 예술이 일반적으로 인정받는 세련됨과 뉘앙스를 축소할 위험을 수반한다. 창조적 스케일링은 예술 조직과 예술가들이 그 자체로 추구할 대상이 될 수 있을까?


3. 예술은 전략적 문화 자산이다.

대중 예술 분야의 역사적 가치를 이처럼 변화가 가속화되는 순간에 어떻게 보존하고 강화할까? 한 가지 경로는 경제학자이자 런던 대학의 혁신 및 대중 목적 연구소의 설립자인 Marianna Mazzucato 등이 지지하는, 혁신과 대중의 이익에 대한 보다 전체론적이고 목표 지향적 접근법에서 예술의 역할을 고려하는 것이다. 창의적 연구 및 개발을 위한 예술의 잠재성을 사회적으로 파괴적인 기술들을 중심으로 한 가치에 대한 보다 체계적 이해의 필요성에 조합하면, 두 세계를 이을 다리로서 예술에 대한 새로운 전망이 열린다.

역사적으로, 예술 분야는 영향을 측정하기 위한 측정 기준을 토대로 작품을 평가하는 것을 경계해 왔으며, 이러한 거부로 인해 국가 및 민간 기금 단체들이 예술의 틀을 잡고 이행하는 데 대한 여러 말들도 감소했다. 만일 문화 인프라가 변형될 것이라면, 측정 체계는 그 자체로 혁신의 영역이 되어야 한다. 보다 전체론적 방식으로 측정의 영향을 이해하는 것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통해, ‘측정 기준’이라는 긴장감이 팽배한 문제를 결국 정면으로 맞서 해결해야 한다. 이는 사실상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겉모습만 바꾸는 상식을 피하기 위함이다.

21세기에 완전한 기능을 갖춘 문화 인프라를 지향하는 경로는 암묵적 가설, 내재적 편향성, 결정적으로 기존 예술계의 실질적 투자와 변화에 대한 정직한 의문제기를 요한다. 여러 나라들이 자신들의 문화 산업에 대한 상당한 구제 기금을 발행하고 있는 순간에 보다 선경지명적인 한 가지 질문이 있다. 즉, 재건에 투자해야 하는가 아니면 구제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아마도 가장 중요한 선택 사항일 것이다.

이런 개발 중 어떤 개발을 통해서도, 예술 업계가 필연적으로 힘든 역사의 시기를 거치기 시작하는 동안 직면하는 여러 도전과제에 대해 바로 이행 가능한 해법은 제시하지 못한다. 하지만 선진 기술이 예술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이런 질문 과정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오늘 날 예술 분야가 운영되는 토대가 되는 기본 인프라와 플랫폼들이 중장기적인 예술의 궤적과 잠재성을 정의하는 데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여러 시스템들을 재정의 및 구축하는 다른 산업들과 ‘외부 요인’들이 존재하며, 적극적 입장을 취하기 위한 협의된 조치가 없다면, 예술 분야는 다른 산업 및 외부 요인에 의해 재구성될 것이다. 오늘 날 존재하는 예술 생태계는 이런 개발에 대한 그런 조치를 보고, 이해하고, 판단해야 하며, 그래야만 예술 생태계에 맞는 판단이 내려질 것이다.



How Will Advanced Technologies Impact the Art World?
3 Takeaways From the Serpentine’s Future Art Ecosystems Report


Since the COVID-19 pandemic swept the world, arts organizations have been grappling with a forced migration to the digital realm, while simultaneously reorganizing their internal operations to meet the demands of a new reality. Budgets were frozen, staff put on furlough, programs and exhibitions postponed or canceled, and business plans and fundraising campaigns were severely undermined.

Given the contemporary art field’s heavy reliance on physical spaces, in-person networking, and crossing of borders, lockdown presents a devastating disruption. But while COVID-19 may be unprecedented, it has brought to the surface underlying issues and forced us to face a series of uncomfortable realities and big questions concerning the future of the sector.

In July, the Serpentine Galleries launched the “Future Art Ecosystems: Art x Advanced Technologies” report, produced in collaboration with the strategy studio Rival Strategy, and focused on technologies’ impact on the arts. It offers alternative propositions for rebuilding the sector in the near future.

The scramble to embrace the digital space as—temporarily—the only site available has made clear that a strategy of mirroring offline programming online is risky, and doesn’t necessarily yield quality results or the desired levels of engagement. It’s clear that the arts have generally suffered from underinvestment and slow adaptation to the digital world in comparison to other sectors, even as the temporary de-centering of the physical gallery has made it obvious that advanced technologies such as AR and VR have a major role to play in shaping alternative pathways to experiencing art.

Galleries are now reopening, but without a reliable vaccine or treatment and with the specter of repeat lockdowns looming, it’s clear that a serious change is necessary for longer-term survival and relevance. As exhibitions and art fairs go digital and cultural experiences flatten, the immediate challenge is in competing for audience attention with the likes of Netflix, Fortnite, and Animal Crossing. The need to reposition the art organization within this landscape is an existential necessity. The fact that no institutions have yet joined forces (and budgets) to drive traffic to shared online programming is just one example of a lack of necessary strategic thinking in the sector.

Over the course of the last few years there has been a rapidly increasing engagement and investment in the development new technologies for art, both within the art industry and outside of it: Apple’s [AR]T Walks, Hauser & Wirth’s ArtLab, teamLab Borderless museums, and a rash of VR artworks peppered across group shows and biennales. What seems different this time is the infrastructural change that is being orchestrated, and the overlapping transformation across industries as a result of a “technology first” approach.

It’s no exaggeration to say that we are in a moment of history in which all layers of our art systems face active and necessary revision. The use of advanced technologies by artists—and the increasing interest of the tech sector in developing its own contemporary art infrastructure—are destabilizing the systems of art as we have known them (and perhaps taken for granted).

Below, we summarize the three non-exclusive models our report offers for how the interfaces between art and advanced technologies are likely to be shaped over the next decade and the big questions that they leave for the present moment:


1. Art Could Be a Source of Opportunity for the Technology Sector
Today, the tech sector is expanding into finance, healthcare, and education as tech companies require absorption of existing industries in order to expand their market share and meet mid-term revenue projections. For example, Amazon is poised in the next year to make a major push into healthcare, as highlighted by New York University marketing professor Scott Galloway in his recent talk for the Digital-Life-Design conference, “The Four Horsemen Post-Corona.”

We should expect to see an integration of the cultural sector, specifically those heritage institutions that are either repositories of historical knowledge or producers of niche contemporary experiences. In the age of advanced biotech, for example, natural history museums face a coincidental pivot from custodians of lost species to vast biological data warehouses, from which active scientific enquiry and biotech startups can build. The recent appointment of David Gurr, the head of Amazon’s UK and Ireland operations, as the director of the National History Museum in London may be seen as a step in the direction of tighter ties and latent pivots.

Or will tech build out its own cultural infrastructure on the back of its entertainment wing? Google, Apple, Samsung, and HTC have all shown aspirations for bespoke cultural programs or institutions. However, for cultural programs to succeed, they require a buy-in that isn’t based on a commercial value proposition. Given the growing public suspicion toward big tech, the question is: Can public arts organizations and artists come up with viable strategies to keep their work going without undermining their own integrity?


2. Ambitious Large-Scale Art Projects Can Soon Be Brought Directly to the Paying Public

Our report identifies a new type of actor on the art–tech horizon: the art stack. An art stack is a vertically integrated art studio that resembles more a corporation than it does a traditional artist studio. Employing specialized staff, developing bespoke technologies and business models, art stacks present a fascinating hybrid that has more agility and capital than most traditional art institutions. Examples are teamLab, the likely soon to be announced re-articulation of Pace X, Acute Art, and the early stage potential of artistic practices such as Refik Anadol’s and Jakob Kudsk Steensen’s.

Scaling artistic practice and art institutional offerings is at the heart of the art stack model. Scaling is also what is required for a more leveled engagement with the tech industry, yet scaling carries a risk of reducing sophistication and nuance that good art is generally credited with. Could creative scaling then become a pursuit in and of itself for arts organizations and artists?


3. Art Is a Strategic Cultural Asset

How should the historical value of the public art field be preserved and strengthened in this moment of accelerated change? One path might be to consider the role of art in a more holistic and mission-oriented approach to innovation and public good, advocated by the likes of Marianna Mazzucato, an economist and the founder and director of the University College London’s Institute for Innovation and Public Purpose. Aligning art’s potential for creative research and development with the need to develop a more systemic understanding of value around societally disruptive technologies opens up a new vista for art as a bridge between worlds.

While, historically, the art field has been wary of having its work evaluated on the basis of metrics for measuring impact, this rejection is also what has led to reduced say in their framing and implementation by national and private funding bodies. If cultural infrastructure is to be transformed, systems of measurement must become an area of innovation in and of themselves. With new approaches to understanding the impact of measurement in a more holistic way, the highly charged matter of “metrics” needs to be finally tackled head on in order to evade another wave of cosmetic changes that don’t actually address the foundations.

The path toward a fully functioning 21st-century cultural infrastructure requires an honest questioning of implicit assumptions, underlying biases, and, crucially, substantial investment and transformation of existing systems of art. A question becomes ever more prescient in a moment when countries are issuing significant bailout funds to their cultural industries. Perhaps this is the biggest choice of all: to bailout or invest in rebuilding?

None of these developments represent quick-to-implement solutions to the myriad of challenges that now face the art industry as it begins to move through a necessarily challenging period of history. But what this process of interrogating the impacts of advanced technologies on the arts has shown us, is that the underlying infrastructure and the platforms on which the art field runs today are what is at stake in defining its mid- to long-term trajectory and potential.

At present, there are other industries and “outliers” that are redefining and building systems, and should there be no concerted action to take a proactive stance, the art field will be remade by them. Arts ecosystems as they exist today must either learn to see, understand, and make decisions that act on these developments, or these decisions will be made for them.

+ CV more

우리가 겪는 팬데믹은 백 년 전 스페인에서 일어났던 팬데믹 등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물리적인 연결이 불가피하게 단절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팬데믹은 세계가 단순히 연결된 상태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초연결’된 상태에서 일어났다. 처음 겪어보는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기존의 분업화된 협업에서 나아가 보다 통합적인 협업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예술계 내부에서뿐 아니라 예컨대 기술, 비즈니스, 미디어, 지역 정부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과 프로젝트들이 출발되어야 하며 이러한 협업은 언어와 거리의 장벽을 넘어 자연스럽게 타지역들로 공유되고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팬데믹 시대의 예술 속에서도 가상현실, 증강현실, 온라인 거래 등의 비대면 기술을 기반의 콘텐츠들이 점점 더 핵심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질문이 남아있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물질성, 고유성, 현재성을 필요로 하며, 관람자의 신체와 예술적 대상 사이의 직접적 조우 및 경험이 불가결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예컨대, 원본성에 대한 문제가 해결된다면 물질성과 고유성에 대한 이슈는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예술적 저작권과 에디션에 대한 새로운 관행이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영상 분야에서 시작되었지만 수준 높은 출력 기술, 즉 초고해상도 프린팅 및 3D 프린팅 기술이 각 지역에 보급된다면 많은 콘텐츠들이 ‘파일’의 형태로 유통될 것이다. 새로운 관행은 새로운 정책과 기획, 그리고 시장을 만들어낼 것이다. 원본의 개념은 그것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로 바뀌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예술의 비물질화보다 더 현실적인 이슈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예술은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예술적 향유란 이러한 개별적 경험들이 공공의 공간으로 유통되고 순환하는 과정을 의미하며, 우리가 예술의 역사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수많은 개인들의 탁월하고도 예외적인 노력이 인류에게 커다란 의미를 가져다주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핵심은 그러한 노력의 결과들을 우리가 어떻게 더 잘 접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들을 잘 기획하고 조직해야 한다는 점이다. 팬데믹 시대의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멀어진 물리적 거리는 더 이상 결정적 장벽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예술가 개개인들이 처한 상황도 과거에 비해 절망적이지 않다. 기획자들은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아졌고, 단지 상상력을 필요로 할 뿐이다. 게다가 사회적 거리 역시 현실적으로 완전한 물리적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전략이 요구될 뿐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혹자는 많은 것들의 우선순위가 바뀌며, 이는 예술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의 우선순위는 바뀌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창의적 노력과 그것을 수용하는 관객의 경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이고 관행적인 가치들, 예컨대 반드시 물리적 대면이나 신체적 이동을 전제로 하는 일들까지도 더욱 친절하고 상세한 비대면 콘텐츠와 신속한 전송 및 운송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물론 직접적 만남의 중요성을 상쇄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인류가 인간의 핵심적 즐거움과 가치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를 알아보는 것은 미래의 예술을 예측하는 매우 흥미로운 기준이 될 것이다.

팬데믹 시대 문화예술의 이 모든 역할과 기능의 지속을 위한 정부의 핵심적 관심은 첫 번째로 많은 시민들이 우수한 문화예술 콘텐츠에 접근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핵심가치로 지니는 정부의 우선순위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문화예술 생산과 소비가 지속적인 생태계의 형태로 발전되고 확산되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관심사가 될 것이며, 마지막으로는 문화예술이 지역을 넘어 전 세계로의 교류로 이어지고 인류의 중요한 가치와 자산을 형성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 모든 관심사항들이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정부는 많은 공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인프라와 환경의 조성에 필요한 정책들을 담당해야 할 것이며, 여기에는 디지털/비-디지털 인프라 구축, 인력 양성, 법제적 지원, 시스템에 대한 기초 연구/개발 지원 등이 포함될 것이다. 민간에서는, 특히 기업들은 초과이익의 사회환원 및 기업 홍보에 있어 더욱 효과적인 포맷들을 개발할 필요를 갖게 된다. 문화예술은 그중 매우 높은 순위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기업의 참여가 문화예술의 발전에 핵심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정부와 기업, 기획자들과 예술가들은 다가오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어떤 내용들로 채워질지에 대해 함께 연구하고 경험을 공유할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일들이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The pandemic we’re experiencing is essentially different from the pandemic that happened in Spain 100 years ago. Even though physical connection has been unavoidably severed, the current pandemic has occurred at a state of ‘hyper-connectivity’ rather than a state of the world being simply connected.

In such a novel situation, we need to go beyond current specialized collaboration toward an integrated form of collaboration. Platforms and projects must be launched collaboratively not only within the art world, but also with the worlds of technology, business, media, and local government. Collaborations of this kind will naturally be shared with other regions and will spread beyond the barriers of language and distance.

Furthermore, there’s no doubt that non-face-to-face technology-based content such as virtual reality, augmented reality, and online transactions will gradually become the core even for art in the pandemic era. Nevertheless, there remains an important question. Art intrinsically requires materiality, uniqueness, and contemporaneity, with many maintaining the view that a direct encounter between the body of the viewer and the artistic object is essential. For example, if the question of originality is resolved, the issue of materiality and uniqueness will reach a new phase. What’s important is the fact that a new practice regarding artistic copyright and editions could arise. This has already begun in the field of video, but if high-level video output technologies (such as ultra-high-definition printing and 3D printing) are distributed in each region, a lot of content will be distributed in the form of ‘files’. New practices will create new policies, planning, and markets. The concept of original work is changing to the degree of how such a concept is established, which is a more realistic issue than the non-materialization of art.

Furthermore, art is fundamentally based on personal experience. Artistic enjoyment refers to the process wherein individualized experiences are distributed and circulated as public spaces. What we’ve realized throughout the history of art is that the exceptional endeavors of numerous individuals have brought about tremendous meaning for humanity as a whole. Therefore, the gist is that we must plan to experience the fruits of such labor more effectively. Thanks to social distancing during a pandemic, physical proximity can no longer be treated as critical. The circumstances facing each individual artist aren’t as hopeless as they once were. Planners can do more; they just need imagination. In addition, social distancing doesn’t realistically mean complete physical separation. It just requires a more detailed and systematic strategy.

Facing these changes, some say the priorities of many things have changed and that these priorities seem to apply to art as well. However, the most important values of art do not change. These are creative human endeavors and the experience of the audience in accepting such endeavors. Nevertheless, traditional and conventional values—for instance, things necessarily based on physical encounter and bodily experience—will be replaced by much friendlier and more detailed non-face-to-face content, swift transfers, and shipping. Certainly, nothing can offset the importance of direct meetings. Examining how humanity protects core human pleasures and values will be an extremely interesting standard by which to predict the future of art.

In the pandemic era, the government’s key interest in sustaining the role of culture and art is about encouraging people to access and enjoy excellent content. This is a priority for a government whose core values are democratic. Next, the government is interested in developing and spreading the production and consumption of art and culture to support a sustainable ecosystem; lastly, there is motivation to generate exchange across and beyond the region so as to build important values and assets for humanity. All of these interests are in the process of encountering a new phase. The government will be in charge of policies necessary for the formation of infrastructure and environments which require a lot of public support. These policies will include digital/non-digital infrastructure building, personnel training, legislative support, and basic research and development with regard to systems. Private sector corporations, in particular, must develop a much more effective approach in terms of giving surplus profits back to society as well as corporate promotions. We know from experience that corporate participation plays a critical role in the advancement of culture and art. The government and corporations, planners and artists need to research what kind of content will occupy the new paradigm. They also need to share their experiences. Our hope is that such tasks are continuously and systematically carried out.

+ CV more

우리가 겪는 팬데믹은 백 년 전 스페인에서 일어났던 팬데믹 등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물리적인 연결이 불가피하게 단절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팬데믹은 세계가 단순히 연결된 상태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초연결’된 상태에서 일어났다. 처음 겪어보는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기존의 분업화된 협업에서 나아가 보다 통합적인 협업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예술계 내부에서뿐 아니라 예컨대 기술, 비즈니스, 미디어, 지역 정부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과 프로젝트들이 출발되어야 하며 이러한 협업은 언어와 거리의 장벽을 넘어 자연스럽게 타지역들로 공유되고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팬데믹 시대의 예술 속에서도 가상현실, 증강현실, 온라인 거래 등의 비대면 기술을 기반의 콘텐츠들이 점점 더 핵심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질문이 남아있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물질성, 고유성, 현재성을 필요로 하며, 관람자의 신체와 예술적 대상 사이의 직접적 조우 및 경험이 불가결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예컨대, 원본성에 대한 문제가 해결된다면 물질성과 고유성에 대한 이슈는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예술적 저작권과 에디션에 대한 새로운 관행이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영상 분야에서 시작되었지만 수준 높은 출력 기술, 즉 초고해상도 프린팅 및 3D 프린팅 기술이 각 지역에 보급된다면 많은 콘텐츠들이 ‘파일’의 형태로 유통될 것이다. 새로운 관행은 새로운 정책과 기획, 그리고 시장을 만들어낼 것이다. 원본의 개념은 그것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로 바뀌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예술의 비물질화보다 더 현실적인 이슈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예술은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예술적 향유란 이러한 개별적 경험들이 공공의 공간으로 유통되고 순환하는 과정을 의미하며, 우리가 예술의 역사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수많은 개인들의 탁월하고도 예외적인 노력이 인류에게 커다란 의미를 가져다주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핵심은 그러한 노력의 결과들을 우리가 어떻게 더 잘 접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들을 잘 기획하고 조직해야 한다는 점이다. 팬데믹 시대의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멀어진 물리적 거리는 더 이상 결정적 장벽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예술가 개개인들이 처한 상황도 과거에 비해 절망적이지 않다. 기획자들은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아졌고, 단지 상상력을 필요로 할 뿐이다. 게다가 사회적 거리 역시 현실적으로 완전한 물리적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전략이 요구될 뿐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혹자는 많은 것들의 우선순위가 바뀌며, 이는 예술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의 우선순위는 바뀌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창의적 노력과 그것을 수용하는 관객의 경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이고 관행적인 가치들, 예컨대 반드시 물리적 대면이나 신체적 이동을 전제로 하는 일들까지도 더욱 친절하고 상세한 비대면 콘텐츠와 신속한 전송 및 운송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물론 직접적 만남의 중요성을 상쇄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인류가 인간의 핵심적 즐거움과 가치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를 알아보는 것은 미래의 예술을 예측하는 매우 흥미로운 기준이 될 것이다.

팬데믹 시대 문화예술의 이 모든 역할과 기능의 지속을 위한 정부의 핵심적 관심은 첫 번째로 많은 시민들이 우수한 문화예술 콘텐츠에 접근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핵심가치로 지니는 정부의 우선순위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문화예술 생산과 소비가 지속적인 생태계의 형태로 발전되고 확산되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관심사가 될 것이며, 마지막으로는 문화예술이 지역을 넘어 전 세계로의 교류로 이어지고 인류의 중요한 가치와 자산을 형성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 모든 관심사항들이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정부는 많은 공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인프라와 환경의 조성에 필요한 정책들을 담당해야 할 것이며, 여기에는 디지털/비-디지털 인프라 구축, 인력 양성, 법제적 지원, 시스템에 대한 기초 연구/개발 지원 등이 포함될 것이다. 민간에서는, 특히 기업들은 초과이익의 사회환원 및 기업 홍보에 있어 더욱 효과적인 포맷들을 개발할 필요를 갖게 된다. 문화예술은 그중 매우 높은 순위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기업의 참여가 문화예술의 발전에 핵심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정부와 기업, 기획자들과 예술가들은 다가오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어떤 내용들로 채워질지에 대해 함께 연구하고 경험을 공유할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일들이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The pandemic we’re experiencing is essentially different from the pandemic that happened in Spain 100 years ago. Even though physical connection has been unavoidably severed, the current pandemic has occurred at a state of ‘hyper-connectivity’ rather than a state of the world being simply connected.

In such a novel situation, we need to go beyond current specialized collaboration toward an integrated form of collaboration. Platforms and projects must be launched collaboratively not only within the art world, but also with the worlds of technology, business, media, and local government. Collaborations of this kind will naturally be shared with other regions and will spread beyond the barriers of language and distance.

Furthermore, there’s no doubt that non-face-to-face technology-based content such as virtual reality, augmented reality, and online transactions will gradually become the core even for art in the pandemic era. Nevertheless, there remains an important question. Art intrinsically requires materiality, uniqueness, and contemporaneity, with many maintaining the view that a direct encounter between the body of the viewer and the artistic object is essential. For example, if the question of originality is resolved, the issue of materiality and uniqueness will reach a new phase. What’s important is the fact that a new practice regarding artistic copyright and editions could arise. This has already begun in the field of video, but if high-level video output technologies (such as ultra-high-definition printing and 3D printing) are distributed in each region, a lot of content will be distributed in the form of ‘files’. New practices will create new policies, planning, and markets. The concept of original work is changing to the degree of how such a concept is established, which is a more realistic issue than the non-materialization of art.

Furthermore, art is fundamentally based on personal experience. Artistic enjoyment refers to the process wherein individualized experiences are distributed and circulated as public spaces. What we’ve realized throughout the history of art is that the exceptional endeavors of numerous individuals have brought about tremendous meaning for humanity as a whole. Therefore, the gist is that we must plan to experience the fruits of such labor more effectively. Thanks to social distancing during a pandemic, physical proximity can no longer be treated as critical. The circumstances facing each individual artist aren’t as hopeless as they once were. Planners can do more; they just need imagination. In addition, social distancing doesn’t realistically mean complete physical separation. It just requires a more detailed and systematic strategy.

Facing these changes, some say the priorities of many things have changed and that these priorities seem to apply to art as well. However, the most important values of art do not change. These are creative human endeavors and the experience of the audience in accepting such endeavors. Nevertheless, traditional and conventional values—for instance, things necessarily based on physical encounter and bodily experience—will be replaced by much friendlier and more detailed non-face-to-face content, swift transfers, and shipping. Certainly, nothing can offset the importance of direct meetings. Examining how humanity protects core human pleasures and values will be an extremely interesting standard by which to predict the future of art.

In the pandemic era, the government’s key interest in sustaining the role of culture and art is about encouraging people to access and enjoy excellent content. This is a priority for a government whose core values are democratic. Next, the government is interested in developing and spreading the production and consumption of art and culture to support a sustainable ecosystem; lastly, there is motivation to generate exchange across and beyond the region so as to build important values and assets for humanity. All of these interests are in the process of encountering a new phase. The government will be in charge of policies necessary for the formation of infrastructure and environments which require a lot of public support. These policies will include digital/non-digital infrastructure building, personnel training, legislative support, and basic research and development with regard to systems. Private sector corporations, in particular, must develop a much more effective approach in terms of giving surplus profits back to society as well as corporate promotions. We know from experience that corporate participation plays a critical role in the advancement of culture and art. The government and corporations, planners and artists need to research what kind of content will occupy the new paradigm. They also need to share their experiences. Our hope is that such tasks are continuously and systematically carried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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